이 영화는 6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신상옥 감독의 특기인 화려한 비주얼의 사극이지요. 이 영화에선 최은희 씨 대신 윤정희 씨를 여주인공으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부산국제 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정희 씨가 이 영화에서는 아주 어린 얼굴로 나오네요.또 전작들에 비해 우리 나이 또래 사람들이 알만한 옛날 배우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젊은 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조선 문종시절, 당상관의 딸인 자옥(윤정희)은 왕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녀에겐 오래전부터 사랑을 키워온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쇠락한 집안의 자제인 종호(신성일)가 그이지요. 둘은 도망치다 붙잡혀와 자옥은 궁으로, 종호는 자옥의 아버지에 의해 거세되어 내시로서 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궁에 들어간 자옥은 다행히 왕(남궁원)의 간택을 받지 않지만, 일단 궁에 들어온 여자는 왕의 여자가 되어 일생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종호와 다시 탈출을 기도하던 자옥은 이번에도 붙잡혀 궁 후미진 곳에 갇히게 되지요. 이미 사내구실을 할 수 없게 된 남자를 계속 사랑할 수 없다는 내시감의 말을 부정하는 자옥을 본 왕은 '몸은 내게 주되 마음은 그 놈(종호)에게 주겠다? 그렇게 하라'며 자옥을 침실로 들입니다. 그리고 입직내시로 종호를 들이게하여 자옥과 섹스하는 소리를 그에게 듣게 하지요.영화 속 궁은 이상한 장소입니다. 그 안에서 사는 모든 남녀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궁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는 자옥을 덮치려는 민 상궁(도금봉), 대비와 자옥의 아버지인 당상관을 모욕하려고 자옥의 몸종을 취하는 왕, 음양사(점쟁이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와 놀아나 아이를 가지게 되는 대비, 마누라를 다섯이나 얻었지만 여자들이 육체적 쾌락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곁을 떠나 언제나 혼자인 내시감 등.그리고 왕족들은 자신의 추악한 비밀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궁인들을 파리목숨 앗듯 죽입니다. 한마디로 비인간적인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곳인거지요.하긴, 왕이 찍는 여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옷을 벗어야 하며, 왕의 허튼 명령 하나 거스르지 못하고 섹스하는 순간에도 사방에 입직상궁과 내시들을 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무엇을 찾기는 힘들었겠죠.내시감의 오랜 친구였던 약방내시(허장강)가 대비의 회임을 알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자, 왕실의 극단을 달리는 타락과 목적을 위해 궁인들을 함부로 죽이는 왕가에 질린 내시감은 자옥과 종호를 도망가게 하고 다른 경호내시들과 겨루다 처참하게 죽습니다.도망쳤던 자옥과 종호는 자옥이 왕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종호는 유산을 종용하나 자옥은 거부합니다. 이에 화를 내던 종호는 자옥과 섹스를 시도하나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자신의 몸을 깨닫고 괴로워하지요. 그 순간, 왕실에서 들이닥친 사람들로 인해 종호는 죽고 자옥은 다시 끌려갑니다.왕의 수청을 들며 교태를 부리는 자옥은 왕에게 입직상궁와 내시를 거두어달라고 하고, 왕과 섹스하던 도중 입에 숨겼던 뒤꽂이로 왕의 목을 찔러 죽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수습하는 과정 역시 비인간적입니다. 궁 안에서는 왕실가족 이외의 사람이 죽을 수 없기 때문에 궁 안에서 죽은 왕가 이외의 사람은 마치 산 것처럼 위장해 궁을 빠져나가 버려지듯 매장되는거죠.왕조를 이어가기 위해 벌어지는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과 비밀들은 궁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합니다. 그 비밀을 백성이 알게 되면 더이상 왕에게 복종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죠. 모든 왕조가 왜 그렇게 비밀이 많은건지, 모든 독재정권이 왜 백성의 눈과 귀를 막는건지에 대한 대답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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