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이나 인터넷 영화동호회, 혹은 채팅 영화퀴즈방에 들어가면 가끔 듣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영화를 안 볼 수가 있어요?" "그 영화도 안보고 영화 본다고 말해요?" 저는 그런 분들 만나면 일단 좀 어이가 없습니다. 세상에 영화가 얼마나 많고도 많은데, 또 쉽게 구할 수 없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영화들을 들고 와서 그거 안봤으면 말도 하지 말라니. 그럼 전 입 꼭 다물어야죠. 세상 영화를 다 보는 사람은 없다는 걸 그분들도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오늘, 제가 그런 억지를 좀 써야겠습니다. 아니, 이건 억지가 아니라 안타까운 외침입니다. 어떻게 <고양이를 부탁해>를 안보실 수가 있는 겁니까. 어떻게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여자 조폭의 가위칼에 밀려나도록 그냥 두실 수가 있는 겁니까. 어떻게 이 따뜻한 이야기를 단 며칠만에 저만큼 밀쳐내실 수 있는 겁니까. 짤막한 인트로, 교복 입고 사진 찍으러 인천의 어느 바닷가를 찾아 나온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로 충분히 즐거운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한부 행복이었던 학교생활은 곧 끝나고 아이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서로 멀어져감을 느낍니다. 그렇죠. 고등학교까지는 비슷합니다만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공유할 무엇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매일 예닐곱 시간을 얼굴 마주보고 살면서도 못 다한 말이 있어 휴대폰 문자를 날려대는 일도 없어지고, 쪽지를 써 보내거나 학교 앞 떡볶이집에 들어가 군것질 접시 위에 같이 코를 박을 일도 없어집니다. 삶의 방향이 갈리고,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줄고, 그런 변화를 느끼며 서운해하지만 정작 어떤 식으로든 회복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죠. 그렇게 멀어지는 것이고 이제는 다른 일상을 살게 되었으니까. 정재은 감독은 기억력이 특히나 좋은 사람이거나 관찰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둘 다이거나 셋 중 하나이지 싶습니다. 정감독의 다섯 아이들은 세상이 모든 스무 살 여자아이들입니다. 집이 행복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장소인 아이들.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지도 못한 스무 살. 처음 나온 세상의 찬바람에 밀려 서로의 작은 등뒤에 몰려 서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스무살의 여자아이들.






▲ 고양이를 부탁해 ⓒ 마술피리

딱히 나빠보이진 않지만 다감하고 섬세한 너를 감싸기엔 너무나 딱딱한 부모를 둔 태희야, 이미 오래 전부터 깨져서 일찌감치 가족에 대한 감정을 버린 혜주야, 넌 "왜 부모가 이혼을 했는데도 하나 슬프지 않을까?"라고 묻지. 철들기 전부터 무너진 가족 속에서 남은 조부모와 잘 살아보고 싶지만, 디자인 공부도 하고 싶지만 주저앉는 지붕은 그런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하는구나, 지영아. 그리고 비류와 온조야. 이 지독한 단일민족의 나라에서 너희는 참 밝고도 낙천적이구나. 이젠 잊혀진 옛 왕족의 이름을 단 너희들은 정말 이 나라가 좋은 거니? 여기서 살고 싶니? 너희들이 돌아다니는 곳들은 하나같이 너희들이 쉬기엔 지나치게 복잡하고 시끄럽거나, 너무 황폐하거나, 가난하고 어지럽구나. 너희들이 일없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그 어느 곳에도 올라앉아 따뜻하게 햇살 쬘 담벼락 하나 없구나. 혜주 넌 그 높은 빌딩 속에서 '저부가가치 인간'일 수밖에 없는 자신이 곧 싫어질테고, 태희 넌 숨쉬기 위해서라도 그 집을 뛰쳐나와야 할테지. 지영아. 넌 원하지 않더라도 이미 길 위에 서버렸어. 비류야, 온조야. 너희들의 집은 다른 친구들을 위한 따뜻한 기지가 되어주겠지. 일단은 고양이 티티를 보낼게. 고양이를 부탁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여행을 위해 태희 너는 짐을 챙겼지. 일하고 받았을 만큼의 돈, 옷, 라디오 한 대, 책 한 보따리, 탐조등, 접이칼과 밧줄 한 타래. 지영이가 나오길 기다리며 분류심사원 앞에 앉아 탐조등 불빛에 의지에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는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나중에 지영이와 어떻게 나빠지더라도 난 지금 네 마음이 진심이란 걸 믿는다. 나중에 너희들이 다른 곳에서 다른 방향을 본다 하더라도 지금 너희들 마음이 진짜란 걸 믿어. 영화 내내 난 그 속의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떠나온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을 바라보며, 내가 아직도 다 떠나지 못한 그곳을 돌아보며 그 애들에게 말을 걸고 그 애들 보다 먼저 울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고양이를 부탁한다는 그 애들의 손길을 매정하게 외면하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저 어린 고양이들의 초대장을 찢어버리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의 스무살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귀를 막으실 수 있습니까.

덧붙이는 글 '고양이를 살려줘' 모임의 홈페이지 주소를 아시는 분, 제발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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