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삼류 밴드가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 일곱으로 시작해 지금 막 네 번째 맴버를 떠나보내고 세 명이 남았습니다. 불경기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고추아가씨 선발대회나 시골 칠순잔치에서 연주를 합니다. 떠돌다가 그토록 가기 싫었던 수안보의 나이트클럽으로 가게됩니다.

그곳은 밴드 리더인 성우의 고향으로 친구들과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20년 전에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를 꿈꾸던, 송골매의 '세상만사'를 부르던 그 곳에 삼류밴드가 되어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세상은 이미 가라오케와 노래방이 점령해버렸고, 노래는 춤추고 술마시는데 흥을 돋우는 양념일 뿐인 현실 앞에서 성우는 자꾸 위축됩니다. 고교 때 같이 밴드하던 친구들은 약사로, 환경운동가로, 시청 건설과 공무원으로 나이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인희는 억척스런 아줌마가 되어 채소를 팔러다니고 있고요.

초라한 무대 위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성우는 표정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여자와 관련된 문제를 만드는 키보드 정석은 결국 크게 다치고 정석에게 자꾸 여자를 뺏기는 우직한 드러머 강수는 팀을 떠나 서울 변두리의 마을버스를 몹니다.

임순례 감독은 잔인합니다. 별 것 아니게 끼워 넣은 듯 한 성우의 고교시절로 인해 이 남자들의 현재는 더욱 초라하고 쉰내가 납니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건 너뿐인데, 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성우가 멈칫, 술잔을 들다 마는 것도 서로의 쉰내를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장례식에 갔다 온 날, 발가벗고 노는 술판에서 자신도 벗고 노래하는 상우 옆 모니터에 고교시절 바닷가로 놀러가 친구들과 발가벗고 달리던 영상이 겹치면 가슴이 턱 막힙니다. 더 이상 굴러 떨어질 데가 또 있을까.

바닥을 친 영화는 조심스럽게 수면위로 떠오르려고 합니다. 인희가 성우의 연주에 맞춰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를 때, 목구멍으로 치솟는 것을 희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남은 것이 무엇일까요.

".....당신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사랑밖에 난 몰라."

덧붙이는 글 |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했을까?"
(.............)
"깡통. 말이라고 해? 끔찍한 소릴? 부지런히 사랑했을 거야. 미치도록. 그 밖에 뭘 할 수 있었겠어."
                           최인훈의 <구운몽>

2001-11-17 14:04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했을까?"
(.............)
"깡통. 말이라고 해? 끔찍한 소릴? 부지런히 사랑했을 거야. 미치도록. 그 밖에 뭘 할 수 있었겠어."
                           최인훈의 <구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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