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살인장면도 없고 그렇다고 붉은 피로 스크린을 도배하지도 않은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운명'이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운명을 향해 흘러간다면 오싹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만화에서 미래를 알려주는 신문을 갖게 된 한 수험생이 시험전날 내일자 신문에서 자신이 다리붕괴 사고로 죽는다는 기사를 보고 매일 이용하던 다리를 지나지 않고 시험장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그 다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길로 가려고 그 날 아침 일찍 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통사고가 나고 앰뷸런스에 실려 시험장으로 가는데 이 앰뷸런스가 바로 그 붕괴다리로 가다 결국은 죽는다는 내용의 것이다. 난 이 만화를 보면서 정말 아찔했다. 정말 이러한 운명이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소름'이란 영화도 이러한 운명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30년 전 한 아파트에서 옆집 여자와 눈이 맞은 사내가 부인을 죽이고 갓난 아이을 남겨둔 채 그 여자와 도망쳐 버렸고 곧 화재가 발생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고아원에서 성장하여 다시 이 아파트로 돌아왔고 그 아파트에는 그가 들어오기 얼마 전 한 작가가 화재로 죽은 사건이 있었던 아파트다. 여기서 영화는 이 아파트에 30년 죽은 이 아이의 어머니의 설움과 한이 맺혀 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아들과 다시 함께 살려고 그 전에 살던 작가를 죽였다는 상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용현이란 인물이 바로 이 주인공인데 왜 그가 이빠진 계단과 낡고 더러운 유리창, 항상 어둡고 으스시한 복도, 그리고 벽의 괴기한 낙서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는가의 궁금증이 풀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용현이 햄스터 한 마리를 데리고 이 아파트에 이사온 날 방에서 느끼는 친근함이나 낯이 익다는 느낌, 그리고 복도나 벽에서 들어오는 음산한 소리 등도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즉 이 운명이라는 공포와 소름을 무너질 듯한 아파트라는 공간과 그 속의 소리와 빛을 섬세하게 배치함으로써 그 공포를 더욱 극대화시킨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현이란 인물은 30년 전 아버지 바람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한을 바람피워 낳은 딸을 죽임으로써 어머니의 한을 달래준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스터리 소설의 작가의 생각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소설에 잘 맞아 떨어진다. 이야기는 용현이 택시기사로 일을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선영과 마주치게 된면서부터 운명은 결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물론 용현은 운명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선영이란 여자는 501호에 살고 있고 항상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다. 비오는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는 용현은 우연히 흙탕물을 뒤집어쓴 선영을 차에 태우면서 서로 친밀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이 대목도 마지막엔 용현이 선택이 아니고 용현과 선영의 공동운명으로 느껴졌다. 자식을 잃고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살고 있던 선영에게 용현은 삶을 버텨나가는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영과 동생의 말 다툼소리를 듣고 용현은 선영이 자신을 이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은 살해까지 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오싹함과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을 가지게 한다. 이 영화는 운명의 실타래에 숨어 있는 저주를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어둠이란 빛은 처음에는 짜증이 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그러나 조금 뒤부터는 서서히 이 어둠에 익숙해지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어둠의 빛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함께 더욱 더 공포를 빛나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보통의 공포영화에서 보여주는 엽기적인 살인이나 피 튀기는 장면, 관객을 놀하게 하는 사운드와 트릭 없이도 사람에게 뼈속부터 전해오는 오싹한 소름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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