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2년만에 다시 그의 작품을 만났다. 2년전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품으로,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끝나감을 아쉬워하며 폐막식 전 마지막 영화로...

장이모우, 아마 여기 부산영화제를 찾은 분이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국제영화제에서 경력만으로도 그 명성은 자자하다. 베를린, 칸, 베니스영화제는 물론이고 아카데미에서까지 그의 영화는 매년 주목을 받았다.

그는 89년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했다. 초기의 작품들을 보면 문화혁명의 혼란적 시대배경을 붉은빛의 영상미로 표현한 '붉은 수수밭', 중국의 한 염색공장을 배경으로 한 '국두', 그리고 중국전통가옥을 배경으로 중국봉건사회의 폐습의 하나인 여자들의 인권문제을 다루었던 '홍등'. 이 세 편의 영화는 장이모우의 초기작품 성향을 볼 수 있다. 붉은빛의 영상미을 중요시한 형식적인 측면과 어둡고 닫혀진 중국의 역사의 우울함을 그려냈다.

이러한 작가적 경향은 92년 '귀주이야기'에서부터 서서히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친 형식미를 강조하기 보다는 리얼리티에 더 초점을 맞춘다. 또 우울한 시각으로 바라보던 중국사회도 낙관주의적 시각으로 중국인의 삶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그후 한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인생', 중국 산간 벽지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책상서랍속의 동화', 첫사랑과 이별을 그린 '집으로 가는 길'의 작품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행복한 날들'도 아주 소박하고 진솔함이 돋보이는 평범한 중국인의 삶을 담은 영화이다.

은퇴한 노동자 차오는 변두리에서 불법 러브호텔을 하고 있다. 어느날 뚱뚱하고 심술 많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에게 청혼하려고 큰 호텔의 지배인이라 거짓말을 하게 된다. 물론 이 거짓말이 악의가 있는 거짓말은 결코 아니다. 차오의 본래 심성은 순박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정말 차오가 부자인줄 알고 결혼지참금을 요구하고 이 돈을 벌기 위해 버려진 버스을 개조해서 간이여관을 하기로 하지만 버스가 폐차되어 버린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여자의 앞 못 보는 딸까지 그에게 맡겨진다. 호텔에 안마사로 취직시켜 준다고 했기에 친구들까지 동원해 연극을 시작한다.

앞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친구들에게 부탁해 그녀에게 돈 많은 고객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착각을 들게 한다. 이 과정에서 이 두 사람은 정이 쌓이고 되고 이 때부터 라오 차오와 친구들과의 연극은 거짓말이 아닌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한다.

라오 차오가 맹인인 의붓딸에게 자신의 머리을 만지게 하고 "머리가 왜 이리 짧은지" 물어보는 장면과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에서는 조용한 감동이 몰아쳤다. 라오 차오와 의붓딸은 마치 정말 부녀관계처럼 정이 들고 서로를 위해준다.

감독은 이 두 사람의 모습에서 '돈이 최고다'라는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는 현대 중국사회에 돈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사람을 위하는 마음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삶이 아름다운 행복이라는 조그만한 희망을 주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01-11-17 00:2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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