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나 큰 액션보다 웅얼거림, 어떤 일상적인 조그만 움직임으로 더 많은 말을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난 아크나스 감독은 수줍게, 조용히, 그러면서도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의 분노에 차서 영화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사막지대에서 어머니 벨리안과 둘이 사는 다야는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여자아이입니다.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이름처럼 강하고 독선적인 어머니 벨리안의 간섭이 싫은 다야는 항상 아버지가 돌아오길 꿈꿉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녀를 버리고 도망친 무책임한 남자일 뿐이란 걸 잘 아는 어머니는 딸에게 아버지를 기다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도 다야는 아버지가 오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란 상상을 멈추지 않죠. 어쩌다 들린, 자신과 마음이 잘 통하는 이모가 떠나고 나면 놀 친구 하나 없는 마을 모래언덕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다지요.

오랜 가뭄으로 뒤숭숭하던 마을에 큰불이 나고, 다야 모녀는 사막을 건너 파세르 프티라는 곳으로 갑니다. 어머니는 이 곳에서도 여전히 식당을 열고 간단한 약들을 팔며 생계를 꾸리지요. 새로 온 마을에서 또래의 친구 수크마를 찾은 다야는 오랜만에 생기 있는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앞에 아버지가 나타납니다.

사실, 이야기의 밀도는 떨어지는 편입니다. 중간중간 무슨 의도로 삽입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잔가지들도 있고요. 수크마의 할아버지가 일본 군가를 부르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너무 엉뚱해서 도대체 저게 무슨 의미일까 유추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야가 끝도 없을 것 같은 모래언덕 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나 수크마가 바위언덕에서 노래하는 모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웅얼거리는 듯한 노랫소리는 그것 자체로도 아름답습니다.

평생을 한국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제 눈에는 외계의 행성처럼 보이는 그 사막에는 불모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끝없이 부는 바람과 어디에나 있는 회갈색 모래는 영화를 이루는 또 다른 배우들입니다.

딸에 대한 사랑을 간섭과 무뚝뚝한 명령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반항하며 점차 정체성에 눈 떠가는 딸은 그 불모의 땅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작은 삶의 공간을 망가뜨리고 그 속에 사는 여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건 언제나 남자들이지요. 바람에 날려 집을 잠식해 들어오는 모래더미 같이, 영화 속의 남자들은 물러갔다가도 돌아와 귀중한 것을 부숴 놓습니다.

아크나스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제가 머릿속으로 열심히 재고 있을 때, 제 양 옆에 앉은 두 중년 여성관객은 가늘게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무엇을 그분들은 진작에 느끼신 거겠죠.
2001-11-16 12:5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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