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장면
ⓒ 김보성
지난 10월 6일 <쓰리 타임즈>(허우샤오시엔 감독)로 화려한 첫문을 열고, 14일 <나의 결혼원정기>(황병국 감독)로 마지막을 장식하기까지, 9일간 부산을 축제의 한마당으로 뒤덮었던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한 성공을 뒤로 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탄생 10주년을 맞이해 '관객과 함께하는 영화제' '지난 10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10년을 위한 전기를 마련하는 영화제'를 표방한 이번 영화제는 공식 집계로 약 19만297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종전 최고기록은 3회 영화제의 19만2547명).

그러나 이런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이제는 흥행에만 도취되기보다 영화제의 비대해진 몸집을 추스르고 본연의 정체성에 대해서 냉철하게 점검해 봐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열정적인 관객들의 성원이 오늘의 부산 영화제를 만들었다.
ⓒ 김보성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남긴 눈부신 성공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한 성공은 이미 개막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탄생 10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지역 영화제를 넘어 아시아 영화 시장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거듭난 부산영화제. 63개국 264편의 영화가 선보였던 작년에 비하여 올해는 73개국 307편의 영화가 초청되어 더욱 풍성해졌고, 그 중 무려 61편이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개봉)일 정도로 따끈따끈한 작품들이 많았다.

세계 굴지의 영화제에서 검증 받은 수작들을 비롯해 재능 있는 아시아 감독들의 참신하고 실험적인 영화, 국내외에서 개봉하여 많은 사랑을 받은 대중적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이 균형 있게 포진한 영화 프로그램은 대중성과 작가주의의 적절한 안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영관 수도 작년의 17개에서 31개로 대폭 늘어났고, 인터넷 예매의 비중을 늘려 관객이 좀더 쉽게 티켓을 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엄격한 정시 상영 제도의 확립은 일부 관객의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바람직한 영화제 관람 문화 수립을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제의 각종 이벤트 및 프로그램도 '10주년 행사'의 타이틀을 걸고 한층 다채로워졌다. 종래의 문화행사 이벤트가 대개 일방적인 '보여주기' 식이었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관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이벤트를 시도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대표하는 코너인 '관객과의 대화(GV, Guest Visit)가 총 161회로 대폭 확충됐고, 15회의 야외무대인사, 오픈 토크와 마스터 클래스, 야외 상영장에서의 오픈 콘서트, 학술세미나에 이르기까지 영화 이외에도 풍성한 프로그램들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 화려한 스타들의 면면은 영화제의 흥행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제가 상업적으로 너무 악용되었다는 비판도 따랐다.
ⓒ 김보성
높아진 영화제의 위상을 반영하듯 초빙된 게스트의 면면도 질과 양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아시아의 거장 허우샤오시엔(AFA 초대교장)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뉴 커런츠 심사위원장)이 올해 영화제의 핵심 인사로 초빙된 것을 비롯,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디테 코슬릭 베를린 집행위원장 같은 굵직한 해외 영화계 인사들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여기에 국제적인 스타 청룽과 장첸, 일본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정수문, 비비안 수같은 해외 스타들과 김희선, 수애, 정우성, 전지현, 장진영, 강동원, 이병헌 같은 굵직한 한류 스타들이 잇달아 부산을 방문해 영화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추진한 핵심 현안이던 PPP(부산 프로모션 플랜)과 AFA(아시아 필름 아케미)의 성공도 눈여겨 볼만하다. PPP는 98년 첫 출범해 우수 아시아 영화에 대한 제작 지원과 배급망 확충을 위한 프리 마켓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올해는 10일부터 3일간 아시아 27편의 영화가 참가해 제작-투자간 600여 건의 미팅을 성사시킬 정도로 대대적인 성황을 이루며 내년부터 통합 신설되는 부산필름마켓(BFM)의 전망을 한층 밝게 했다.

재능 있는 아시아 영화인들의 체계적인 육성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 인력을 양성하고 인력간 네트워크 구축을 표방한 AFA도 허우샤오시엔 감독을 초대 교장으로 초빙하여 강의, 실습의 교육을 통하여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등 순조로운 첫 발을 내디뎠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학생들이 이미 기본 수준을 넘어선 세미프로"라고 평가하며 "앞으로 이들이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중추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탄생 10주년을 맞아, 행사 자체의 흥행을 넘어서 아시아와 한국영화의 미래 지향적 비전을 제시하는 영화제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기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 다양한 이벤트와 의미있는 행사들이 올해 부산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야외행사에서 두드러진 안전의식의 불감증은 반드시 수정되어야할 단점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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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식의 부재, 상업주의에 치우쳐

반면 부산국제영화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부정적인 의견 중의 하나는, 영화제가 영화 축제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스타와 이벤트에 치중하는 상업적인 쇼케이스로 변질되어 간다는 우려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제 영화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를 포괄하는 종합예술 축제로서의 위상을 정립했고, 올해 야외 상영장에 열린 헤드윅 쇼케이스, 씨네마틱 러브, 와이드 앵글 파티 같은 이벤트들이 '관객과 함께하는 축제'이자 영화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이벤트로 호평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제에 대한 관심과 화제가 스타와 '쇼' 적인 이벤트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것은 문제다.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에는 그 어느 해보다 화려한 스타들과 굵직한 영화계 인사들이 부산을 찾았고, 이들이 언론과 팬들의 높은 관심을 유발하며 영화제의 흥행에도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업적인 이슈만을 찾는 언론의 속성이, 영화제의 본연의 가치를 왜곡하여 영화보다는 이벤트에 치중한 스타들의 가십적인 면면을 뒤쫓는 데만 치중했다는 비판적인 여론이 제기되었다.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 기간동안 열린 '오픈 토크'나 '야외무대 인사', <태풍> <야수> <청연> <데이지> 등으로 이어지는 대작 상업영화들의 잇단 대규모 홍보행사 등은 영화제가 표방한 '관객들에 대한 배려'도 영화제 본연의 정체성과도 무관한, 한마디로 영화제 기간을 이용하여 철저히 스타들의 네임 밸류를 앞세운 상업적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 폐막작 <나의 결혼원정기>.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들의 성원은 한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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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영화제 기간 동안이라도 정당히 주목 받아야 할 독립영화나 새로운 실험 영화들에 대한 관심, 영화제 자체의 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나 한국영화의 비전에 대한 화두 등은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로,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에 묻혀서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야외무대에서의 안전 문제에 대한 불감증은 10년 영화제의 위상에 먹칠을 할 정도로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특히 스타들이 출연하는 야외무대 인사의 경우, 1000~2000명 단위의 관객들을 수용하기도 벅찬 남포동 PIFF 광장에 열렸다. 협소한 지역 안에 스타들을 보러 수많은 관객들이 일시에 운집할 경우, 자칫 대형 참사가 벌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음에도 안전 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아서 실제로 몇 차례나 아찔한 순간을 맞이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현장에 배치된 경찰력이나 자원봉사자의 인력으로는 수많은 군중을 통제하는 데 무리가 있는데도 행사 주최 측은 오히려 관객들의 질서의식 문제로만 돌리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남포동-해운대로 영화제 진행이 이원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축제의 중심은 남포동 쪽에 쏠려 있고, 해운대 일대는 한산할 정도로 이원화의 요소를 살리지 못한 단조로운 진행으로 빈축을 샀다.

관객 수로는 크게 흥행에 성공했지만, 내실 면에서도 과연 성공한 영화제인가 하는 점은 좌석점유율 수치에서 나타난다. 약 16만 6천의 관객을 동원한 전년도 영화제가 84.8%의 좌석 점유율을 보여준 데 비하여 올해 영화제는 31개관으로 개봉관을 대폭 확대했음에도 실질적인 좌석 점유율은 68%에 그쳤다.

개·폐막작과 유명한 화제작에 편중된 관심에 비하여 '아시아 걸작선'이나 '작가영화' 혹은 '독립영화'에 이르러서는 좌석 점유율이 대부분 60%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섹션 별로 큰 격차를 나타냈다. 또한 종합적인 티켓 판매수는 높았어도 막상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빈 자리가 적지 않은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지나치게 엄격한 정시 상영 제도와 자원봉사자들의 융통성 없는 대처로 손해를 본 관객들도 있었겠지만, 표만 끊어 놓고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는 평가다.

▲ 부산의 10년은 눈부신 성장의 연속이었다.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더큰 미래를 준비할때다
ⓒ 김보성
해마다 되풀이되는 행사 운영의 미숙에 관한 지적도 어김없이 나왔다. 크고 작은 사고와 잦은 일정 변동도 혼란을 주었던 요소였다. 일부 극장에서는 <새장>이나 <풍운아 기에> 같은 작품이 관람 중 사고를 일으켜 상영이 중단되고 나중에 추가 상영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카르멘>과 <나비의 꿈>같은 영화는 아예 상영이 1회 취소되기도 했다.

관객 참여도가 높은 GV가 갑작스럽게 일정이 바뀌거나 취소되어서 관객들이 혼선을 빚는 일이 잦았다, 초청 받았던 피터 그리너웨이, 클로드 클루슈 같은 해외 영화인들의 갑작스런 불참으로 핸드프린팅와 마스터클래스 같은 굵직한 행사가 갑자기 취소되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성공이 검증된 아시아 최대의 문화 이벤트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지만, 이제 10년을 넘어서 서구의 영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영화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질적인 측면에서 대한 보완이 좀더 필요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언론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검증된 영화제라는 평가에도 여전히 매년 예산확보의 어려움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각론적으로는 남포동과 해운대로 이원화된 영화제의 교통정리, 야외행사의 안전대책과 행사추진에 관한 신뢰성의 증대, 관객중심의 바람직한 영화 관람 문화 확립 등이 필수적인 보완 과제로 꼽힌다.
2005-10-15 19:4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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