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개국, 307편의 작품이 쏟아져나오는 영화의 홍수 속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관객은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 마련일 터. 관객은 어떤 기준으로 볼 영화를 선택할까. 미디어나 잡지에서 호평한 영화? 물론 그런 것도 참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는 저마다 다를 수 있기에, 자신만이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고르는 노하우는 필수이다.

실제로 극장가를 돌아니면서 현장의 반응을 체크하다보면, 화려한 스타가 출연하거나, 거장 감독들의 작품 그리고 언론의 호평을 받았던 걸작이라도 할지라도, 일단 공개되고 나면 그것이 반드시 관객들의 반응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난 6일 영화 개막 이후부터 10일까지, 영화제 상영작들이 개봉되고 있는 부산 남포동과 해운동 일대 거리와 극장가를 중심으로 1편 이상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관객들을 만나, 감상을 들어보았다(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관객들의 경우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영화에 대한 찬사와 신랄한 비평, 때로는 예상을 뒤집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들을 들어보자.

▲ 쓰리 타임즈 - 허우샤오시엔 감독
ⓒ PIFF
1. <쓰리 타임즈>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개막작. 부산이 사랑하고 세계 각지의 국제 영화제가 지지한 중화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의 신작이기도 하다. 1966년, 1911년, 2005년의 세 가지 시대를 오가며 그 시대 젊은이들만의 사랑 풍속과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그늘을 잔잔히 회고하는 허우 샤오시엔 특유의 스타일로 가득한 영화다.

연애몽, 자유몽, 청춘몽으로 나누어진 각기 다른 형식의 세 가지 에피소드에서 장첸과 서기가 각각 1인 3역을 연기하며 세 가지 커플을 모두 소화해냈다. 영화 공개 이후, 언론과 시네필들은 허우 샤오시엔의 작가주의에 찬사를 보냈고, 잠시 자신의 영화 인생을 반추하는 중간 점검 같은 영화라는 공통된 호평을 보냈다.

관객들의 관람 소감

A씨: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별다른 이야기도 없고 인물들도 모두 표현을 잘 하지 않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전되겠다 싶으면 끝나버리니까 조금 허탈했다."

이형삼(학생): "그동안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들을 총정리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 청춘몽에서 서기의 모습을 보니 금방 <밀레니엄 맘보>가 생각나더라.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올드팝들(Smoke get in your eyes / Rain and Tears)도 너무 좋았다. 영화가 끝나도 그 멜로디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임진영(직장인): "개막작과 폐막작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작년에도 개막작이 중화권 영화 왕가위의 <2046>이었는데, 개막작이 유명 감독들 이름에 많이 치중되어 있는 것 같다. 또 폐막작은 너무 상업영화에 편중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윤상국(카피라이터): "장첸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세 가지 전혀 다른 배역을 연기했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하나 하나에 잘 스며들어가더라. 근데 두 번째 무성영화처럼 나온 이야기(자유몽)는 사극 분위기인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고 좀 지루하더라."

▲ 러브토크-이윤기 감독
ⓒ PIFF
2. <러브 토크>

주목할 만한 데뷔작 <여자, 정혜>에서 상처받은 여성의 고독한 일상을 서정적인 화면 속에 담아내 주목받았던 이윤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러브토크>. 이 영화에 눈에 띄는 스타급 배우는 없지만, TV에서 꾸준히 주체성 강한 여성상을 소화한 중견 여배우 배종옥과 연극배우 출신의 박희순, <연애술사>로 최근 재기에 성공한 박진희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개성 있는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

<러브토크>는 저마다 소통의 장애를 겪는 현대인들의 소외감과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고찰해내는 이윤기 감독의 시선이 한결 더 깊어진 영화다. 전작에서 주인공의 일상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이외에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던 전편에 비해, 이번에서는 중심인물들의 숫자가 많아진 만큼, 좀 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충돌과 갈등구조를 담아낸다.

관객들의 관람 소감

이명주(직장인): "가슴 속에 찬 바람이 부는 듯 휑하면서도 왠지 쓸쓸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외로운 정서에 많이 공감이 된다. 특히 배종옥씨는 역시 이렇게 쿨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동구(학생): "<여자,정혜> 때와는 또 다른 것 같다. 사실 전작에서는 대사도 없고, 주인공도 좀 답답하고 그래서 좀 지루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 구조가 한결 탄탄해진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B씨(영화팬): "<여자,정혜>는 꽤 괜찮게 봤는데 전작에 비해서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때보다 인물들 머릿수가 늘었을 뿐이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비슷한 것 같다. 뭔가 좀 새로운 것을 기대했는데 약간은 실망스럽다."

백승연(주부): "LA 같은 대도시를 무척 황량하게 그려내는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드라마에서는 뉴욕 같은 대도시가 굉장히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그려지지 않나. 그런데 같은 카메라라도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 그렇게 삭막한 느낌을 줄 수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의 고립된 심리가 마음에 잘 와닿는 느낌을 받았다."

▲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 / 당계례 감독
ⓒ PIFF
3.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

중화권을 대표하는 톱스타 성룡과 한류스타 김희선을 비롯하여 중국배우 양가휘와 우영광, 한국의 액션 스타 최민수처럼 아시아권에서 중량감 있는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하여 만든 화제작. 성룡이 진시황 시대의 대장군 몽이와 현대의 고고학자 잭의 1인 2역을 맡아 열연했다.

국제 시장 공략을 노리는 중화권의 야심찬 프로젝트에 걸맞게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한 서사 액션 대작이다. 성룡이 그동안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코믹 액션 일변도의 연기에서 탈피하여 사극에 도전하는 등 오랜만에 진지한 정극 연기와 멜로 드라마까지 연출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의 평가는 전형적인 영화가 성룡표 코믹 액션과 정극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걸쳐 있다는 반응이다.

관객들의 관람 소감

김광길(학생): "역시 성룡 형님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액션 연기에 관하여 성룡 형님의 센스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특히 끈끈이가 흐르는 컨테이너 벨트 위에서 악당들과 벌이는 추격전은 정말 배꼽을 쥐고 웃을 정도로 최고였다."

박제운(포토그래퍼): 진시황릉이 나온다길래 <진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용형호제>더라.ㅡ.ㅡ"

서원모(영화팬): "성룡의 진지한 연기가 너무 안 어울린다. 자식 뻘인 김희선 하고 평소에도 안 하던 멜로 연기를 하는데 어색하지 그지 없더라. 사극 분장도 안 어울리는 판국에 진지한 장면에서 어이없이 웃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 마차에서 추락하는 장면도 그렇다. 나같으면 최민수랑 둘이 말다툼할 시간에 공주부터 구했겠다."

김인섭(학생): "중화사상을 앞세워서 은근히 역사왜곡 하는 영화 아닌가? 고조선 공주가 진나라 후궁으로 들어간다는 설정도 짜증나는데 한국 배우인 최민수가 성룡 손에 죽는 장면은 더 어이없다. 나같으면 몸에다 밧줄 묶을 시간에 공주부터 끌어내겠다."

우동혁(직장인): "뭐, 대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오락영화 아닌가?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보고 즐기면 그만인 영화같다."

▲ 봄의 눈 -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 PIFF
4. <봄의 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통해 낭만적인 신파 멜로의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유키시다 이사오 감독의 신작. 일본에서 주목받는 꽃미남 배우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마부키 사토시,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청순한 매력을 뽐낸 다케우치 유코가 남녀 주연을 맡았다.

일본 메이지 유신 시대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감성과 열정, 그리고 한순간의 실수가 연인들의 운명을 바꾸어놓는 과정을 쫓아간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방한하여 이병헌과 오픈 토크를 펼치기도 한 츠마부키 사토시의 인기로 인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 영화는, 150분이나 되는 러닝 타임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사토시와 유코의 선남선녀 커플과 정열적인 사랑이야기에 호감이 있는 관객이라면 좋아할 만한 영화다.

관객들의 관람 소감

한윤정(교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하고는 또 다른 츠마부키 사토시의 매력이 너무 좋았다. 다소 이기적이고 반항적이던 키요가 사토코의 순정을 깨닫고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동주(미디어업체): "신파도 이 정도면 엽기다. 처음엔 분위기가 음산한 게 공포영화처럼 시작해서는, 로맨스 영화로 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불륜 드라마로 엇박자를 타더니 사토코의 하녀가 유서를 남기는 장면에서는 완전히 사이코 스릴러가 되더라. 감독이 정신상태가 이상한 게 아닌가 싶다."

지은영(직장인): "남자들의 환상으로 사랑을 왜곡하는 이야기 아닌가. 사고는 같이 쳤는데 왜 여자만 무거운 짐을 져야 하나.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결국 남자가 얄랑한 자존심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 아닌가. 뒤늦게 찾아와서 만나달라고 사정하는 게 구차해 보인다."

이민정(학생): "벚꽃이 날리는 일본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게 그려진 것 같다. 마치 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C씨(뮤지션): "러닝타임의 압박. 이게 무슨 타이타닉이냐? 간단한 이야기를 한없이 잡아늘리는데 나중엔 짜증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

▲ 브로큰 플라워 - 짐 자무쉬 감독
ⓒ PIFF
5. <브로큰 플라워>

2005년 칸국제영화제 그랑프리에 빛나는 짐 자무쉬 감독의 수작. 주변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아가던 고집불통 독신남 던 존스턴이 자신의 옛 연인과 숨겨진 아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소동극을 통해 차츰 주변과의 소통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작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이는 작품들 가운데 두드러지는 특징은 유난히 소통장애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많다는 것. 던 존스턴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주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으로 인해 타인과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장애를 겪는 인물이지만, 감독은 오히려 그런 인물에게 연민과 동정을 시선을 던진다.

관객들의 관람 소감

한수현(프로그래머): "주인공의 약간 심술궃으면서도 억울한 표정이 압권이다. 처음엔 얄밉다가 나중에는 연민이 느껴지더라."

최도경(학생): "영화가 뭔가 있는 듯 감춰두다가 자꾸만 예상을 깨고 빗나간다. 계속 뭔가 벌어질 듯하다가 결국 모든 일이 다 수포로 돌아가고 다끝났다 싶을 때 작은 깨달음 같은 걸 얻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지성(군인): "원래 보려던 영화를 보지 못하게 돼서 우연히 보게 된 작품인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영화 속에 숨겨진 의미가 많은 이야기인 것 같은데, '관객과의 대화' 같은 시간이 없는 게 아쉽다. 여기다 신청하면 대신 물어봐주나?"

정연우(운송업): "영화? 모르겠다. 중간쯤은 본 것 같은데, 잠깐 눈을 감았다 떼니까 자막(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더라. 어제 과음을 너무 해서 ㅡ.ㅡ"

▲ 연애 - 오석근 감독
ⓒ PIFF
6. <연애>

무능한 남편을 대신하여 두 아이를 키우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진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직장주부. 막막한 현실에서 돈을 벌기 위해 어진은 퇴폐 전화방의 상담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유흥업소에 파견되어 술과 몸을 파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는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의 폭력화된 사회구조속에 사회적 아웃사이더로 살아갈수밖에 없는 변방의 인물들을 조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아직 삶에 대한 절절한 낭만과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연애의 목적>에 이어지는 싸이더스의 또 한편의 쿨한 연애 이야기로서, <살인의 추억>의 전미선이 데뷔 이후 첫 영화 주연을 맡고, <백한번째 프로포즈>의 오석근 감독이 오랜만에 현장 연출에 복귀했다.

관객들의 관람 소감

주영인(학원 강사): "영화 속 여진을 보다가 처음에는 답답했고, 나중에는 불쌍하다가 마지막에는 격려하고 싶어지게 되더라. 극중 중심 인물들이 대부분 여자고, 여성적인 시선이 많은 것 같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나 상황의 여자들이지만,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을 잘 담아낸 것 같다."

D씨(코디네이터): "굳이 필요없는 노출 장면이나 성적 수치심을 안겨주는 장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여진의 베드 신은 정말 눈을 감고 싶었다. 요즘 우리 나라 영화는 굳이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장면들을 억지로 보여주려고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절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강성묵(영화인): "노출 장면이 많은데 그런 게 퇴폐적이거나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고 참 슬프게 묘사된 것 같다. 주연배우(전미선)를 TV에서 자주 봤는데, 그 당시에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

백승태(회사원): 여자 주인공들 중심으로 남자를 너무 비하하는 것 같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인가? 영화 속에서 나오는 남자들은 죄다 이기적이고 속물들인데 반해 여자들은 항상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어디 남자만 그런가? 이유없이 남자들을 적대시하는 영화는 정말 싫다."

E씨(학생): "이 영화 잘 알지 못하고 그냥 친구 따라서 봤는데 정말 의외로 기대 이상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왔다가 마음 속에 뭔가 묵직한 것을 담아가는 기분이다."
2005-10-12 09:01 ⓒ 2007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