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전미선을 비롯하여 연극배우 출신의 김지숙, 장영남, <강원도의 힘>의 오윤홍까지 여배우들의 앙상블이 매우 뛰어나다.
ⓒ PIFF

관련사진보기


그녀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어진과 윤정. 어진이라는 이름이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평범한 일상에서의 진짜 이름이라면, 윤정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만들어낸 가면의 이름이다. 극중에서 그녀는 어진으로 불리우는 시간보다 윤정으로 불리우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녀의 일상은 기묘한 이중생활의 연속이다. 무능한 남편을 대신하여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의 현실은 고단하기만 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진은, 남정네들의 음담패설을 받아주는 전화방 도우미에서 시작하여, 룸에서 술을 따르고 몸을 파는 일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선 일이기는 해도, 그녀는 이런 비루한 일상에 적응하기에는 완벽하게 독하고 모질지도, 그렇다고 아주 순진하지도 못하다. 그 혼란스러움에 그녀의 비극이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그녀는 강해지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삶은 더욱 사면초가에 빠져든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봉되어 의외의 수작이라는 호평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영화 <연애>는 문성근과 김희애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백한번째 프로포즈> 이후 12년만에 세 번째 영화를 내놓은 오석근 감독의 신작이다. 오석근 감독과 주연배우 전미선은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 충무로에서 그렇게 주목받는 주류 영화인은 아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 감독은 오랜 공백이 있고, 전미선은 영화와 TV를 오가며 활동했지만 항상 조연급이었다. 그러나 <연애>는 오석근 감독과 전미선의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와 노출이 심한 자극적인 설정 속에서,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는 폭력성과 그 안에서 고립되고 소모되는 여성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조금씩 삶의 결핍에 시달린다. 주인공 어진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살지 않는 평범한 여성이지만, 의외로 내면에는 당돌하고 도발적인 욕망이 숨어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어진에 비하여 강하고 풍족한 조건을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김여사(김지숙)나 은주(장영남)도, 각각 전 남편의 폭력과 아이가 없다는 인생의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인물들이다. 어진은 현실의 비루함과 공허감을 뒤늦게 찾아온 '연애'라는 감정을 통해 메우려고 하지만 상황은 자꾸 엇나가기만 하다. 완벽한 스위트 가이처럼 보였던 남자 민수(장현성) 역시 그녀의 공허감을 채워주는 존재는 아니었다. 영화는 어진의 삶이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유린 당하는 과정을 섬세한 연출 속에서 담담하게 관조한다. <연애>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연애의 목적> 같은 영화에서 도발적이고 냉소적인 도시의 연애담을 그려왔던 싸이더스의 연애 시리즈 완결편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의 영어 원제가 '연애는 미친 짓이다(Love is crazy thing)'임을 감안하면 영화의 분위기를 대강 짐작할 수 있을 듯.
 오석근 감독 - 시원시원한 말투와 넉넉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 김보성

관련사진보기


오석근 감독과 배우 김유석을 만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연애>는 부산에서 모든 제작과 촬영이 진행된 전형적인 부산 영화라는 특징이 있다. 저예산으로 찍은 이 영화를 통해 오석근 감독이라는 이름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일 관객과의 대화가 열린 부산 해운대 메가박스에서 만난 오석근 감독은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영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이 자리에는 마침 영화 속에서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하늘 역의 배우 김유석도 동행하여 같이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 <연애>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하여 처음 공개됐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어떤가? 오석근 감독(이하 오): "글쎄. 뭐, 다들 좋다고 말씀해주시기는 하는데 아직은…(웃음)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다. 지금 영화제 기간이니 그러는 건지, 정말 공감을 하는 건지…(웃음) 반응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완전한 평가는 정식 개봉 이후까지 지켜봐야겠지." - <백한번째 프로포즈> 이후로 오랜만에 연출로 복귀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오: "오랜만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서로 손발이 잘 맞아서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던 것 같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이 프로젝트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영화를 보셨겠지만 배우들이 모두 연기를 잘해줬다. 특히 김유석씨가 맡은 하늘 역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목소리만으로 영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잘 소화해주었다."
 영화속에서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하늘'역을 맡은 김유석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찬사로 일관했다.
ⓒ 김보성

관련사진보기


- 말씀하신 대로 하늘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어진과 전화로만 소통하는 인물인데, 존재감이 독특하다 김유석(이하 김): "개인적으로 오늘 이 영화의 완성본을 처음 봤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오석근 감독을 바라보며) 감독님, 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드셨어요?(웃음) 목소리만 출연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등장하는 장면은 없어도 비중있는 역할이었고, 이 영화가 뭔가 의미있는 역할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좋았다." - 소재 자체는 무겁고, 다소 파격적인 설정이 많은데 통속적이지 않게 다가온다 오: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고 이야기라고 봤다. 영화 속에서 인물묘사라든지, 노출문제라든지 다소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어찌됐든 인물들의 진심과 상황이 왜곡되지 않고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느낌을 강조하려고 했다." -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연애의 목적>에 이은 삼부작의 완결편처럼 알려지고 있는데, 영화에서 어떤 전작과의 연결성을 고려해본 적이 있나 오: "그런 것은 없다. 물론 그 영화들을 보기는 했지만 연출을 하면서 특별히 영향을 받거나 이어지는 느낌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삼부작이니 뭐니하고 연결지어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연애> 그 자체일 뿐, 독립된 주제를 이야기한 영화이다."
 오석근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 김보성

관련사진보기


-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좋았다. 특히 주연을 맡은 전미선씨의 연기가 좋았는데 TV나 영화에서 조연급으로 오래 활동해온 배우를 영화를 이끌어가는 단독 주연으로 덜컥 캐스팅한 게 의외였다 오: "캐스팅 문제는 사실 전적으로 차승재 대표의 생각이었다.(웃음)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차승재 대표가 이 프로젝트를 권유할 때부터 같이 생각을 많이 교환했고 배우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확신이 있었다. 촬영하면서 전미선씨의 연기를 보고 인물에 대한 성격이라든가 디테일에 많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배우가 누구든 그 사람의 현재의 연기가 중요하지 과거에 어떤 인물을 했는지, 과거에 TV에서 활동했던 영화에서 활동했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오석근 감독님과 전미선씨를 새롭게 발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오랜만에 연출작에 복귀하셨고, 전미선도 예전과 다른 작품을 통해 다른 연기를 보여주셨다. 여기서 두 분이 예전에 어떤 작품을 연출하셨건, 어떤 매체에서 활동을 하셨건, 혹은 이 작품의 전작들이 어떤 내용이건 그런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연애>로 인해서 두 분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셨다는 것이다.(웃음)" - 이 작품은 부산에서 모든 제작과 촬영이 진행된 '부산 영화'였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오: "부산의 영화 인프라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도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속에서 나 역시 또 다른 어떤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뭐 <연애>를 끝낸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당장 어떤 구체적인 새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