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고 이만희 감독은, 최근의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 <귀로> <만추> 등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주옥같은 걸작들을 통해 이만희 감독은 한국 고전영화의 형식미를 완성시킨 걸출한 스타일리스트로 인정받았다.

1961년, <주마등>으로 감독 데뷔를 한 이래, 1975년 <삼포가는 길> 작업 중 편집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무려 15년간 무려 50여편의 작품을 연출했을 만큼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만희 감독. 그는 대중적 성향이 강한 장르 영화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동시대의 사회 정서를 고찰해내는 작가주의적 시선을 조화롭게 엮어낸 연출자이기도 했다.

▲ 형식미에서 시대를 앞선 이만희의 작품은 한국영화 역사 발전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 PIFF
이만희 감독이 오늘날 한국 고전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재조명된 것은, 사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다. 검열이 횡행하고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받지 못하던 시대. 그의 영화는 당시 사회통념상으로는 파격적인 가치관과 영화적 표현으로 인하여 잦은 제재를 받아야만 했다.

'밤의 시인'이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이야기하는 영화 속 무대는 주로 밤이 지배하는 어둡고 습한 세계이자, 인물들은 종종 길을 잃고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만희는 주로 닫힌 공간이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을 가두어놓고, 잘못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 과정을 추격하는 것을 즐긴다. 그의 스릴러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종종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폐쇄적인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그 공간 안에는 유난히 정상적인 소통에 애를 먹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의 결핍과 갈증은 대개 주변이들과의 정상적인 소통이 결여되어 있는 데서 기인한다. 부부간의 사랑이나 가족간의 형제애, 전우들의 우정 같은 인간 소통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감정들은 종종 외적인 환경에 의해 왜곡되고 장애를 겪는다.

너나 할 것 없이 일종의 결핍과 갈증을 안고 있는 이만희 감독의 페르소나들은, 시대에 대한 우회적인 냉소와 조롱을 담아낸다. 그의 영화 속에는 60년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온 혼돈과 시대의 흐름속에서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비판적인 풍자가 있다.

▲ <마의 계단> 이만희 감독은 대중성 강한 장르 영화속에서 자신만의 분명한 작가주의적 색채를 더했다.
ⓒ PIFF
또한 이만희 감독이 높이 평가 되어야 할 부분은, 다양한 형식미의 탐구다. 당시 한국영화의 여건상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와 장르에 대한 고민 속에서도 대중성과의 조화도 포기하지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필모그래피의 대부분이 스릴러와 전쟁물로 채워질 정도로 장르적 성향이 강한 그의 작품은,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성격 대비와 미묘한 갈등 구조, 다양한 영화적 형식미의 실험을 통해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훨씬 이전, 현 주류의 아버지 세대에 이처럼 훌륭한 영화인들의 존재했다는 것은, 한국영화 발전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지기 쉬운 역사의 연속성을 입증해주는 유의미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번 회고전에서 선보인 작품 10편은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이자 그의 장르적 취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전쟁·액션물과 스릴러 위주의 라인업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국 전쟁영화의 전범을 제시했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이미 TV 등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옛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년의 액션스타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쇠사슬을 끊어라>나 <검은 머리>는 요즘 관객의 눈으로 보자면 다소 황당하고 과장이 심한 활극물이지만, 이만희 감독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 <휴일> 다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지만, 60년대 한국 사회의 음지를 차분하게 관조하는 시선이 돋보인다.
ⓒ PIFF
개인적인 추천작은 이만희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개성을 가장 선명하게 발휘한 작품인 <원점>과 <마의 세계>이다. 인간의 욕망과 복수극의 플롯을 공포·스릴러의 공식을 통해 풀어내는 두 영화는, 기존에 알려진 이만희 감독의 작가주의 계열의 영화와는 또다른 완숙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뭐니뭐니 해도 이만희 감독의 최고작은 단연 <귀로>이다. 고전 마니아라면 모두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작품은, 전장의 망령에 갇혀 살고 있는 남자와 그런 남자가 만들어낸 자장 안에 강제로 갇혀있는 아내의 자아 찾기를 통해,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구조 속에서 전쟁이 인간에게 남겨준 상처를 조명하는 수작이다.

덧붙여 이번 회고전에서 처음 공개되는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하여 새롭게 발굴된 이만희 감독의 숨겨진 유작 <휴일>이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로서는 흔치않은 멜로 드라마인 <휴일>은 어느 가난한 연인들의 쓸쓸하고 황량한 일상을 추격하며 60년대의 음지에서 바라본 어둡고 음울한 시대상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제작 당시 우울하고 퇴폐적인 영화의 분위기 때문에 당국의 검열로 끝내 개봉하지 못한체 창고에 묻히는 비운을 맞이하기도 했다.
2005-10-11 08:4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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