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와 단편영화계를 대표하는 실무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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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진행 중인 10일 오후 2시 해운대에 위치한 극장 메가박스 상영관에서는 <한국의 단편영화-무엇을 꿈꾸는가>라는 주제의 조촐한 세미나가 열렸다.

'단편영화의 장르화 경향에 대한 분석'을 부제로 내세운 이 세미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단편영화제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와 한국에서 단편영화의 존재 의의, 또한 단편영화-독립영화 개념의 모호한 경계 같은 민감한 이슈를 둘러싸고 초반부터 신경전이 벌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홍효숙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진행된 이 세미나에는 이현승 미쟝센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노경 인디포럼 프로그래머, 이상용 영화평론가,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그러나 한국 단편영화의 비전을 탐색하는 의미있는 세미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쇼와 이벤트에 편중된 주류 언론과 영화계의 무관심으로 세미나는 다소 쓸쓸한 모습을 연출했다. 수용 인원이 많지 않은 아담한 상영관에서 열렸음에도 객석은 빈 자리가 훨씬 많을 정도였던 것. 세미나를 주최한 영화제 측의 안일한 준비와 홍보 부족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를 상징하는 인디포럼의 김노경 프로그래머와 미장센의 이현승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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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만 있고 대안이 없다

단편영화의 장르화에 대한 우려는, 궁극적으로 단편 영화가 본연의 창의성을 잃고 주류 상업영화의 복제나 아류로 귀속되는 것이다.

홍효숙 프로그래머(사회자)는 "최근 한국의 단편영화를 보면, 과연 이 영화가 무엇을 생각하면서 만든 것인지, 어떤 부분에서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집에서 혼자 보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노경 인디포럼 프로그래머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임을 지적하며 "100명의 사람이 만들어낸 영화는 각기 다른 100가지의 종류의 영화"이고 "영화제에 등장하는 단편영화가 수적으로는 많은데, 그 속에서 정말 단편영화다운 다양성과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영화는 별로 없다"고 따끔하게 비판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최근 한국영화의 다양성이라는 화두에 대해 지적했다. "장르로 대변되는 다양성이라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공식에 따라 만들어지는 장르라는 표현 속에 이미 다양성은 없다. 최근 한국 영화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장르화된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국한된 다양성일뿐, 단편 영화나 독립 영화 같은 비주류 영화를 포괄하는 의미의 다양성에는 맞지 않은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단편 영화의 장르화에 대해서도 "최근 일부 단편영화제에 출품 기준에 맞추어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장르의 인위적으로 구분하려는 의도와 상업영화의 공식을 따라가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반 관객의 참여도가 다소 저조한 가운데 추상적의 논의에서만 맴돈 세미나에 대해서 실망하는 관객들도 일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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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기도 한 이현승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최근 단편영화의 추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던 다른 패널들과 달리, '변화의 가능성'에 좀 더 주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현승 감독은 1년에 무려 500편 이상의 영화를 접수하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정체성에 대해 "단편영화를 보여주기 위한 창구로서 의의가 있다"며, "위원장으로서 출품되는 영화의 다양성면에서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고 밝혔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류승완이나 박찬욱 같은 스타 감독들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가 단편영화에서 주류 상업영화의 스타일을 무분별하게 복제하는 아류작이 되어가는 경향을 지적하며, "제작자가 보기에 잘 만든 시나리오보다 그 사람의 연출력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단편영화가 더 시선을 끄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해마다 한국영화의 35% 이상이 신인 감독의 작품으로 채워지는 등 전세계를 봐도 한국영화만큼 신인감독의 비중이 높은 곳은 없다"면서도 매년 배출되는 신인감독들로 인하여 감독간에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속에서, 상업영화의 장르 가운데서 창의성이 실종되어 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는 쉽게 도달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이나 미래지향적인 합의점의 도출없이 원론적인 개념의 문제에서만 의미없이 맴돌다가 마무리지으며, 추상적인 토론에 그쳤다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이상용 평론가의 지적처럼 '지금 여기서 하는 이야기가 다소 이상적인 면에만 국한되어 경향'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독립영화 단편영화 사이의 애매한 정체성 문제, 단편영화의 창의성이 주류영화에 종속되어가는 현실은 끊임없이 논의되어야할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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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 참여한 일부 관객들은 '단편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의 재정적인 어려움' 같은 현실적 문제를 언급하며 "우선 해당 영화제 취향의 출품기준에 맞춘 작품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면, 그 다음에 또 한 번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는 유혹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어떤 관객은 "장르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선택과 관련한 문제"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장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때 창의력이 빛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반적으로 세미나에 대한 사전에 좀 더 치밀한 준비와 함께 현장에 종사하는 영화계 인사들의 시선에서 현실적인 대안에 관한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 세미나였다. 최근 상업영화의 시장적 측면이 강조되기 위한 영화제 분위기에서, 진정 영화제라는 커다란 축제를 기회삼아 보다 활성화되고 주목받아야 할 논제는 오히려 이런 부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다시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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