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국 액션 영화를 대표하는 연출자로 입지를 굳힌 류승완 감독은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가 높은 스타 감독이기도 하다. <주먹이 운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류승완 감독이 10일 저녁 8시 해운대 메가박스 8층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부산의 영화팬들과 만났다. 젊은 감독답게 류승완은, 남성적인 그의 영화스타일 만큼이나 시종일관 거침없고 솔직하면서도 때로는 어록을 연상시킬 만큼 위트 있는 답변을 해 눈길을 끌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초기작에서 부터 <주먹이 운다>에 이르기까지 작품 세계의 변화 과정과 자신의 영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류승완 감독은 패기만만하면서도 위트있는 답변으로 관객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 PIFF
"동생 류승범은 감수성이 뛰어난 배우" - 자신의 연출작에서 부터 항상 동생인 류승범과 함께 했다. 류승범을 자주 기용하는 이유와 언제부터 배우로 써도 되겠다고 확신했는지 "류승범이 연기를 잘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다찌마와 리> 같은 작품에서 조역으로 기용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배역을 잘 소화해는 걸 보고 이후에도 계속 함께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류승범은 그 또래의 배우들 가운데서 가장 감수성이나 캐릭터에 대한 해석력이 뛰어난 배우라고 생각한다." - 좋아하는 배우나 작품에 대한 지론이 있다면? "어렸을 때 이소룡보다는 성룡을 더 좋아했다.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 성룡을 만났는데 어렸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인데 직접 만나보니 별 느낌이 없더라. 70년대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미국 범죄물이나 샘 페킨파의 영화도 좋아한다. 연출자로서 배우들의 연기는, 최민식 같이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형도 좋지만, 아주 무성의하게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면 오달수처럼(웃음) 겉보기에는 굉장히 성의없이 하는 것처럼 보여도 묘하게 느낌이 전달되는 연기가 좋다." - 주로 아웃사이더에 관련된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 같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찍던 시절에서 <주먹이 운다>까지 오는 동안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5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변했다. <주먹이 운다>를 찍으면서 신파성에 대한 공격을 많이 예상했지만, 적어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내 생각을 속이며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주먹이 운다>는 마지막에 두 주인공에게 웃는 모습을 안겨주고 싶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웃는 두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지막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주로 폭력성이 강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왔고 등장인물은 항상 많이 맞는다 "일단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해두고 싶다. 두 시간 동안 남녀가 사랑하는 이야기는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고, 베드 신보다는 액션 신이 더 편하다.(웃음) 다만 같은 액션영화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액션의 톤이나 스타일은 각기 다르고 점점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이 항상 많이 맞는 이유는, 원래 처음에 많이 맞아둬야 나중에 때릴 때 더욱 통쾌하니까.(웃음)"
 류승완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가장 힘들었던 영화로 기억하며 무술감독 정두홍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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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든다" - 최근의 작품보다는 초기작이 더 신선하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액션이 그리운 분은 DVD로 소장하셔서 계속 보시면 된다.(웃음) 감독 입장에서는 이미 했던 걸 반복하는 건 재미없다. 결국 취향의 문제인데, 영화가 공산품이 아닌 이상 수많은 대중의 취향에 일일이 맞추기란 불가능하다. 결국은 그때그때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재밌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에 충실한 게 중요한 것 같다." - <오아시스>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배우로도 출연했는데 연기에 대한 생각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중국집 배달부로 한 컷 출연했는데, 사실 삭제된 장면이 하나 더 있다. 극중 처음 배달와서 초인종을 누르고 송강호가 문을 열면 서로 마주 쏘아보는 상태에서 클로즈업 되는 장면이 있는데, 내 눈빛이 워낙 강렬해서 주인공 캐릭터가 압도된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삭제됐다. <친절한 금자씨>의 흥행에는 내가 크게 기여를 했다. 내가 어느 장면에 나오는지 찾으려고 영화를 두 번 본 분이 많다더라.(폭소)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 제작 단계와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안좋은 영화를 보는 것은 몸시 괴롭다. 캐스팅은 결국 나와 영화를 함께할 '동지'를 찾는 작업이기에 가장 중요하다." - 영화마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유머감각이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진지한 걸 별로 안좋아한다. 또한 코미디에 관심이 많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에서 최양락 아저씨에 이르기까지.(웃음) 특히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최고다. 겉보기엔 메시지도 없고 단순해보여도 그저 뛰어다니는 모습만으로도 다음 장면이 기다려지게 만든다. 키튼의 영화 세계를 본 이후로 좋아하던 성룡도 시들해졌다.(웃음) - <주먹이 운다>에서 무언가 사연을 간직한 듯한 우동집 주인(천호진)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주변을 보다보면 가끔 말 못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지 않나. 인물에 구체적인 사연을 설정해 놓은 것은 아니고, 일단 그 배역에 천호진이라는 배우를 기용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다른 설명없이도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영화에서 그가 최민식에게 말했던 "이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은 너뿐만이 아니다"라는 대사를 관객들도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더라."
 동생 류승범의 재능이나 <주먹이 운다>의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하면서도 류 감독은 시종일관 확실한 소신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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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잊혀지는 영화가 될까봐 두렵다" - 자신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제일 먼저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쉽게 잊혀지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매번 내 인생의 몇 퍼센트씩을 지옥 같은 현장에서 바치면서 영화를 찍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항상 관객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생각한다. 가끔 새벽에 케이블 TV를 보다보면 질 낮은 싸구려 영화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어느 순간 그런 영화로 기억될까봐 두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람들도 똑같이 고생스럽게 영화를 찍었는데 완성된 결과물이 무의미하게 눈과 귀를 괴롭히는 영화로 남는 것 만큼 공포스러운 일도 없을 것 같다." -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이 독특했는데, 어떻게 영화감독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하게 됐는지 "일단 말해두고 싶은 건 나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경제력, 인맥, 학벌. 정말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영화를 너무 만들고 싶어서 무작장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도 배제할 수 없어서 여러 직업을 전전한 게 30가지가 넘는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평생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영화 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가끔 내게 영화 감독이 된 과정을 물어보는 질문 속에는, 과연 무슨 행운을 만나 지금까지 왔는지 나를 표본으로 자신에게 대입할 어떤 경우의 수를 찾아보려는 듯한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행운 같은 건 절대 오지 않는다. 생각이 있다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서 영화를 찍어보거나, 시나리오 한줄 제대로 써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가 있을 때 과감히 행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나이만 먹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에겐 행운이 없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 속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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