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영구'와 함께 20년이 넘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 남자, 할리우드의 초대형 영화인 <킹콩>에 뒤지지 않는 괴수 영화를 연출하겠다고 호언해온 남자, 그 시절 어린이들의 영원한 형이자 오빠였던 그 남자, 그는 심형래다.

심형래는 김정식, 이창훈 등과 함께 어린이 영화의 영원한 상징으로 통하는 배우다. 어른들은 그들이 나온 영화를 유치하다고 무시했지만,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형래형'은 영원한 영웅이자, 스타였다. 국내에서 어린이 영화의 명맥이 끊기면서 이제는 사람의 냄새를 느끼기 힘든 할리우드의 대자본 어린이 영화가 어린이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어 심형래는 더욱 그립다.

지난 1월 13일에 '김정식 아저씨'의 <슈퍼 홍길동2> 이야기를 쓰면서 심형래의 이야기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형래, 그리고 심형래의 어린이 영화들을 제외한다면 '국딩 세대'들에게는 어린 날의 추억을 반절 이상 떼놓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유명 영화와 유행에 관한 기발한 패러디

@IMG1@영화 출연 초창기의 심형래는 어린이 영화의 양대산맥인 김청기 감독과 남기남 감독의 영화에 주로 출연했다.

그 당시에는 <유머 1번지>의 '영구'보다는 감독들이 만든 캐릭터 자체에 열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데뷔작인 <각설이 품바 타령>이나 <탐정 Q> 등의 영화들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들은 웬만한 '심형래 마니아'가 아니라면 기억조차도 하기 어려운 영화들이다.

그와 더불어 심형래가 본격적으로 '영웅'이 된 영화는 그 당시에는 보기 드문 대작 어린이 영화인 <우뢰매> 시리즈였지만, 그를 '각성'시킨 영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영구'의 전성시대를 선포한 <영구와 땡칠이>다. <영구와 땡칠이>는 자리가 없어 스크린 앞에 돗자리까지 깔면서 봤다는 그 영화다. <영구와 땡칠이>의 비공식 흥행기록이라는 270만이라는 숫자는 영화시장의 규모가 커졌다는 지금도 쉽게 볼 수 없는 숫자다.

일련의 '영구' 시리즈는 이때부터 롱런하게 된다. <영구 람보> <영구와 부시맨> <영구 홀로 집에> 등, 개인적으로 심형래가 출연한 영화는 웬만큼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미처 보지 못했던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이렇듯 심형래가 분신 '영구'를 앞세워 출연했던 영화들을 살펴보면,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 당시의 '유행 아이콘'에 대한 패러디가 돋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람보>와 <부시맨>, 그리고 <나 홀로 집에> 등은 그 당시에 절정에 달하는 인기를 달렸던 영화들이며, 또 다른 어린이 영화 <심비홍>은 리롄제(이연걸)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계기가 된 <황비홍> 시리즈를 패러디한 영화다.

이 영화들은 그 당시 어린이 영화의 주된 경향을 확실하게 이끌게 된다. 급조된 엉성함 속에서 '몸으로 웃기는 개그'의 진수를 보여주며, 기발한 재치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재치와 재미로 따지자면, 그 시절에 심형래가 출연한 어린이 영화들은 최근 제작되는 영화들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이런 영화들이 우리 시대의 '초딩'들에게도 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 시절의 '국딩'에게는 이 이상 재미있는 영화들은 없었다.

그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괴수 시리즈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의 많은 출연작 목록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영구와 공룡 쮸쮸>다. 그 이후 <디-워>까지 연결되는 그의 일관된 괴수 시리즈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구와 공룡 쮸쮸>는 그 당시의 기술력을 감안하더라도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로 엉성하기 그지없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괴수 시리즈의 시초라는 점 외에도 심형래가 <영구와 흡혈귀 드라큘라>에 이어 본격적으로 연출에도 눈을 뜬 영화라는 사실이 의미가 크다.

<영구와 공룡 쮸쮸>는 그 당시의 기술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쮸쮸'의 인형 안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쮸쮸'가 불을 토해내는 장면은 인형 안에 있던 사람이 '갈빗집 라이터'로 직접 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심형래는 모 TV 토크쇼에서 촬영이 끝나면 인형 안에 있던 사람이 그 가스 냄새 때문에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는 에피소드를 공개한 적도 있다.

@IMG2@그 당시의 어른들은 "이게 뭐냐"면서 이 영화를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심형래는 이 <영구와 공룡 쮸쮸>를 계기로 "스타 배우에 의존하기보다 괴수 캐릭터를 창작해 투자하는 편이 훨씬 부가가치가 높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심형래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넘어 존경에 가까운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열악한 여건이나 실패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공룡 쮸쮸'는 <디-워>까지 발전하고 있다. <디-워>는 특히 <용가리>가 집중됐던 관심에 비해 엉성한 그래픽과 빈약한 각본으로 받아야 했던 실망을 극복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는 영화라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심형래, 그를 왜 존경하느냐고?

물론 그는 어린이와 괴수에 대한 치열한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모범이 될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된 이유를 다른 부분에서 찾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용가리>로 '신지식인'에 선정되면서 한창 매스컴에 주목받던 그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만으로도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그가 당시 일요일 낮에 방영했던 TV 코미디 프로에 꾸준히 출연했던 것이다. 빨래터를 무대로 아줌마 분장을 하며, 열심히 빨래를 밀던 그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자신이 영화감독으로서 대성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개그맨이며, 코미디라고 말이다. 인간이란 소위 말하는 '출세'라는 것을 하게 되면 자신의 과거를 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는 영화감독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충분히 존경할 만 하다고 본다.

특유의 '몸으로 웃기는 개그'는 보기만 해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은근히 안쓰럽게 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보통 열정이 아니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유명해진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바보'로 보이면서 매일 맞는 이미지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심형래에게 집중되는 많은 관심과 응원은 단순히 할리우드에도 진출한 영화감독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가 그토록 맞아가며 선사했던 웃음과 기발한 괴수 캐릭터들의 향연을 통해 어린이와 코미디, 그리고 목표에 대한 장인 정신과 겸손한 자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겸손'과 '진정'이라는 미덕 앞에서는 늘 약해지기 마련인 동물이다. 그의 그런 '겸손'과 '진정'이 앞으로도 여전하기를 기대해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