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불후의 명작이라구요? 꼽아보려니 참 부질도 없는 노릇입니다. 영화 감상이라고 철든 후 고작 손꼽을 정도. 그마저도 큰애가 태어난 이후는 기억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좋은 영화로 남아버린 영화가 한 편은 있군요.

▲ 영화 '알렉산더'의 티저포스터
ⓒ Warner Bros.
거장 올리버 스톤이 메가폰을 잡고 나로서는 처음 존재를 알게 된 배우 콜린 파렐과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등 익숙한 배우들이 출연한 2004년 작 <알렉산더>입니다. 그로부터 우리 부부 영화보기도 물올랐으니 불후의 명작 반열이 이유 있습니다. 고작 100만 관객의 이 엉뚱한 영화가 불후의 명작이 된 에피소드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벌써 재작년이 되어버린 2004년을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옆지기와 8년 만의 영화보기 외출을 하였습니다. 영화 한 편 보는데 8년이라니, 이 부부 사는 모습 참 한심도 합니다. 옆지기의 고운(?) 마음 때문이라고 위안하고 변명해 봅니다만 별반 위안이 되지는 않는군요. 실상은 이렇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7살, 3살로 어리다 보니 맡겨야 하는데 우리 친절한 지연씨, 영화보기로 아이를 어른들에게 맡기는 것은 도무지 용납하지 않았지요. 그 마음 존중한 세월이 어언 8년이고 보니 그도 차츰 익숙함의 대상이고 말더군요. 없고도 없던 시절의 결혼 생활로 부부간의 알콩달콩한 재미에 허기진 삶을 살아온 어머니가 이런 우리 부부를 헤아리신 듯, 아이 하루 데리고 있고 싶다 하시며 콕 집어 '영화나 한편 보러 가라' 하십니다.

옆지기 선택한 영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습니다. 그새 영화라는 문화도 강산이 변할 세월을 더한지라 딴에는 신경을 쓰느라 동료 직원의 자문을 받아 예약을 하고 모 복합상영관을 찾았지요.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 길게 늘어선 티켓 구매의 장사진을 보며 사전 예약한 나의 준비성을 옆지기에게 으스대며 티켓 교환 부스에서 기분 좋게 예약권을 내밀었는데 아가씨 답답하게도 몇 분씩이나 이리 저리 확인해 보고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더니 드디어 딱하다 말하기를… "저~ 이거 12월 30일 예약표네요." 아이쿠, 이럴 수가!

8년 만의 영화 외출로 얼굴 가득 웃음인 옆지기 저만치 서 있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꼭 보고 싶은 영화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이미 매진된 터이고 다른 영화도 거의 매진이니 옆지기에게 미안하고 당황스러운데 영화관 직원이 마침 환불된 티켓이 2장 있는데 구입하겠느냐 합니다. <알렉산더>였습니다.

잘못하면 8년 만의 영화보기 물 건너 갈 듯 하니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감사하다 하고 급히 받아 영문도 모르는 옆지기의 손을 끌고 상영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 예약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상영 전 시간이 충분하여 미리 분위기 좋게 식사도 하려했는데 <알렉산더>는 고작 10분도 안 남았으니 급한대로 그냥 팝콘 한 봉지 사서 입장하였지요.

딱하기로 러닝타임도 어찌나 긴지 세 시간동안 쫄쫄 굶고 봤네요. 영화 초반까지 옆지기 눈치보기와 그로 인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란 어느 극적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기분이었구요.

▲ 영화 <알렉산더>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그렇게 시작된 8년 만의 영화는 불행 중 다행으로 좋았습니다. 옆지기와 봐서도 좋았고 또 전쟁과 영웅의 이야기를 인간의 이야기로 조명한 올리버 스톤의 시각이 <태극기 휘날리며>(이 영화는 우연한 기회가 있어 개인적으로 보았습니다. <실미도>도 보지 않은 문화 미개인이 이 영화마저 보지 않으면 완전히 우주인이 될 것 같은 염려가 들던 차 일정이 되었지요)에서 강제규 감독이 보여준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인간의 이야기와 오버랩 되며 공감 되는 바 적지 않았거든요.

유쾌하지 않게 앉은 옆지기도 영화가 좋았던 까닭에 그나마 얼굴이 폈구요. 세 시간이 흐른 후 입가에 잔잔한 미소 머금어 나의 팔짱을 살짝 껴안는 옆지기의 체온이 따뜻하고, 아이들 보느라 힘드실 어른들 생각에 급하게 허기를 채운 포장마차 우동 국물이 더없이 구수하고 시원하여, 그렇게 2004년을 행복하게 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포시 손잡고 집으로 가는 길. 토요일 조조라면 큰 아이 학교간 사이 둘째 유정이는 안고서라도 간혹 보자 약속하였으니 우리 부부에게 새해의 선물로 이만하기도 훌륭하였지요.

실제 2005년 한해 우리 부부 수차 영화관 찾았기로 아이 문제로 관람의 장르엔 일정한 한계가 있었지만 제법 여러 편을 감상하며 부부간 정을 키웠습니다. 기억에도 또렷하여 꼽아보면 2월의 <말아톤>을 시작으로 5월 <스타워즈 에피소드3>, 6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7월 <아일랜드>, 8월 <웰컴 투 동막골>, 9월 <애프터 썬셋>, 12월 <태풍>과 <왕의 남자>까지 무려(?) 8편을 보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린 것이다 할만도 합니다.

여하간 8년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던 우리 부부의 8년 만의 영화보기 그 에피소드는 실제 대중적 인기몰이에는 실패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잊지 못할 영화로 우리 부부의 기억 속에 자리하게 하였으니 이로써 우리 부부만의 불후의 명작으로 꼽아봅니다.

덧붙이는 글 | [남들에겐 졸작, 내게는 불후의 명작?] 응모기사입니다~

2006-01-24 20:0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남들에겐 졸작, 내게는 불후의 명작?] 응모기사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