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 병장 태정이 있는 내무반에 어느 날 중학교 동창 승영이 들어온다. 승영은 군대의 부조리한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태정은 친구라는 이유로 승영을 감싼다. 그러나 그 때마다 자신까지 곤란해지기 일쑤다. 승영은 자신이 고참이 되면 내무반을 바꾸겠다고 큰소리다. 승영 또한 지훈을 후임으로 받아들인다. 고참들의 질책 속에서도 지훈을 감싸지만 그럴수록 더 따돌림만 받는 승영. 인간적으로 대한 지훈도 제 멋대로다. 그리고 승영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IMG1@남자로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윤종빈 감독)를 경험하는 건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영화 속에 죽었다 깨어나도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민감한 부분이 통째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꼬깃꼬깃 접어서 애써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부분을, 영화는 마수(魔手)를 뻗어 제멋대로 휘젓는다. 그리고는 '과거'라는 거대한 입을 벌려 삼켜버릴 기세로 강하게 빨아들인다. 그 순간, 스크린은 더 이상 영상이 아니라 '과거'가 돼 버렸다.

제대해서 밖에서 보낸 시간이 군대에서 보낸 시간과 맞먹을 정도가 되니 지금은 이곳(사회)이 제법 익숙하지만, 제대 후 한동안은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군대 안에서 길들여진 생활습관의 질긴 생명력은 사회에서도 스스로를 닦달했다. 지금은 빛이 바랜 낡은 버릇이 됐지만, 가끔 발작적으로 '불가능은 없다'라는 태도가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군대를 겪지 못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지만 어쩌랴. 그것이 그들과 우리들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인 것을.

나에게 아니 군대를 경험했던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에게 군대라는 곳은 복합적인 의미로 채워진 공간이다. 정체성 따윈 되도록 희미한 게 유일한 생존전략처럼 취급되는 그 곳에서 '군계일학'은 터부(taboo)시 되기 일쑤다. 군대를 정의하는 수많은 용어 중에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는 가치 중에 하나가 그래서 '양비론(兩非論)'적인 사고방식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어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숭배의 대상이다.

나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영화'보다는 '기억'에 가까웠다. 내가 과거에 걸었던 길을 되돌아가서 그 때 겪었던 일들을 똑같이 반복하는 고통.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늘어진 과거의 한복판에 뚝 떨어진 기분이랄까. 극중 이승영 상병은 비록 소수에 가까운 캐릭터였지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물로 변화해 가면서 군대의 생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상징하는 건, 신념조차도 군대에서는 퇴색해간다는 것이다. 첫 번째 눈물을 흘린 이유다.

현실이 꿈이고 영화가 마치 현실인 것 같은...

@IMG2@내 기억에 강하게 뿌리박힌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가 남다른 이유는 단지 군대에 대한 회상을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뭐랄까, 지금 내가 속한 현실이 꿈이고 영화 화면이 마치 진짜 현실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난 화면 구성 덕에 암울했던 시절로 편입했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유례 없는 자세로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 속 인물인 이승영에게 몰입하면서 어느새 나 자신이 그에게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하면서 영화를 본 건 아마 이 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억 될 것 같다.

한편으로 <용서 받지 못한 자>는 남성의 심기를 꽤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다. 실감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내 기억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있어 군대라는 조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긴 군대가 내세우는 제1원칙이 바로 '사회와의 분리된 구조'임을 감안해 볼 때, 군대의 고립화가 못마땅한 것은 아니다. 종종 군대가 상상 속에서 패기, 젊음 등으로 미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다.

@IMG3@군대를 포괄하는 더 큰 그릇은 '권력'이다. 극중 이승영 상병처럼 소수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결국 다수에 편입됨으로써 권력의 그늘에 자신을 맡긴다. 그건 바로 우리 모두의 얘기였다.

아직도 누군가 나에게 압력을 가하려고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움츠려들기 마련이지만 곧 정신을 차린다. 제대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군대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친화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보곤 한다.

차라리 꿈을 꾼 것이라면 속 편하겠다. 꿈에서 일단 깨면 현실은 금방 나를 에워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그래서 그 과거로부터 모질게 휘둘린다는 건 현실에 적응하는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여놓는다. 그것이 군대의 경우처럼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면.

이승영 상병이 느낀 감정의 진폭은 내 호흡과 고스란히 포개졌다. 이 영화를 본 후 나 역시 '용서 받지 못한 자' 중 한 명이었다고 생각했다. 육체적 파국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던 이승영 상병의 고통스러웠던 군 생활이 더 안쓰러운 이유다. 눈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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