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혈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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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혈전>은 대단히 신기한(?) 영화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지 무려 13년의 세월이 흘렀고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복수혈전>이라는 영화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냥 제목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감독과 주연배우의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에게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복수혈전>이었어"라고 말하면 십중팔구는 그냥 크게 웃어 버린다. 그저 <복수혈전>을 감명 깊게 봤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웃기는 농담이 될 정도로 <복수혈전>은 지난 13년 간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해 왔다.

나는 그런 <복수혈전>을 극장에서 두 번이나 봤다. 그리고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철없는 사춘기 소년이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되어 버린 지금까지도 <복수혈전>은 여전히 내 삶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1992년, 나는 <몰래 카메라>로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던 개그맨 이경규씨를 상당히 좋아했다. 그의 개그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1981년 제1회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개그맨이 된 이 후에 10년에 가까운 무명 생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그러던 이경규씨가 갑자기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경규씨가 어렸을 때부터 액션 배우를 꿈꾸던 '이소룡 키드'였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개그맨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는데 왜 이제 와서 위험부담이 큰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복수혈전>은 코미디 영화도 아닌 정통 액션 영화가 아니던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개그맨들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납자루떼>(1986년, 서세원 감독), <신사동 제비>(1989년, 박세민 감독), <칙칙이의 내일은 챔피언>(1991년, 전유성 감독)까지 개그맨들이 만든 영화가 성공한 사례는 전무했다.

이경규씨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지만 이경규씨는 직접 기획, 각본, 주연, 감독을 맡는 1인 4역을 자처하며 영화 제작을 강행했다.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왜 위험 부담을 안고 영화를 만들었나?"라는 질문에 이경규씨는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이며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거든요"라고 대답했고, 별거 아닌 그 대답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뒤흔들고 말았다.

 이경규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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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10일에 모습을 드러낸 <복수혈전>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그리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다. 주먹세계를 떠나 착하게 살려고 하는 두 형제와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폭력 조직간의 대결을 그린 <복수혈전>은 비디오용 성인영화를 연상시키는 촌스런 화면과 지나치게 단순한 스토리로 일관하고 있는 영화다.

TV에서 보여 지던 이경규씨의 친숙하고 유쾌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가 맡은 '태영'이라는 캐릭터는 지나치게 진지했고, 손지창, 김찬우, 임백천 등 카메오들이 등장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영화 속에서 웃음 코드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복수혈전>은 그렇게 관객들의 외면을 받으며 초라하게 극장에서 사라졌고,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그저 이경규씨의 지나친 욕심이 낳은 해프닝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의사, 만화가게, 오락실 주인까지. 어린 시절에 누구나 '장래희망'을 쓰는 자리에 한 번쯤 이런 근사한 '꿈'을 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에 바빠 꿈을 잃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복수혈전>을 만든 이경규씨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실패가 보장(?)되어 있는 곳으로 온 몸을 내던졌다. 비록 그 실패로 인해 세상 모두가 <복수혈전>이라는 영화를 비웃을 지라도 이경규씨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낸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이경규씨는 최근 <복수혈전>에서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다시 영화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어느덧 40대를 훌쩍 넘겼지만 이경규씨의 '꿈'과 그것을 위한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나 역시 마음 속에 작은 꿈을 품고 자라 왔고, 애석하게도 그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 비록 30년 가까이 살아왔고 앞으로 다가올 삶의 그림도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 꿈을 이루게 되는 그 날이 온다면 나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가르쳐 준 '내 생애 최고의 영화' <복수혈전>이 다시 보고 싶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남들에겐 졸작, 내게는 불후의 명작?' 응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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