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금지된 사랑>이다. 원제는 <겨울의 심장(Un coeur en hiver)>으로 프랑스 영화이다. 93년으로 기억되는데 불문학을 전공하던 친구가 아름다운 영화 한편 보았다면서 ‘금지된 사랑’ 어쩌구 저쩌구 하였다.

"제목이 영화와는 진짜 거리가 멀어. 누가 지었는지 원래는 ‘겨울의 심장’이라고 해야 맞을 거야. 그리고 이 영화 하나도 야하지 않아. 배경음악도 끝내줘. 라벨의 곡이라고 하는데 뭔지는 모르겠어."

라벨의 음악이 나온다는 말에 최종적으로 이끌려 극장으로 갔다. 구체적으로 라벨의 어떤 곡인지 궁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너무 빨리 올라가는 바람에 게다가 프랑스어라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 궁금증은 지금도 살아있다. 지금도 궁금하다. 라벨의 어떤 곡이었는지.)

<금지된 사랑>은 2본 동시 상영하는 곳에서 보았다. 동시상영의 파트너는 <와일드 오키드3>인가였다. 두 영화가 번갈아 가면서 상영되었기에 <금지된 사랑>을 한 번 더 보려면 <와일드 오키드3>을 보아야 했다. <와일드 오키드3>는 무지 야한영화였다.

물론 당시는 야한 영화 좋아하던 시절이라 얼씨구나 하고 <와일드 오키드3>를 보고 난 후 <금지된 사랑>을 한 번 더 보고 나왔으면 ‘이다지도’ 아쉽지 않을 것인데 그때는 그리 못했다.

<와일드 오키드3>를 보고 있을 때 가끔씩 화면이 환해 질 때면 극장 안의 객석 또한 훤했는데 아뿔싸 한 스무 명 쯤 앉았는데 여자는 나 혼자 뿐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더라면 꾸역꾸역 보았을 것이지만 젊은 나는 웬 결벽증인지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이라면 스무 명이 아니라 백 명(?)이 앉아 있어도 전혀 동요 없을 것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토록 자리를 뜨기 싫은 영화였다면 다음날 <금지된 사랑>이 상영되는 시간에 맞춰가서 다시 한번 더 보았어도 될 터인데 아쉽게도 그땐 그런 '융통성'마저 없었다. 다만 아쉬워하면서 생각하고 떠올릴 뿐이었다.

말없이 스테판을 응시하던 아름답던 그녀

오랜 친구 사이인 스테판(다니엘 오떼이유)과 맥심(앙드레 뒤솔리에)은 악기를 만들고 파는 동업자 사이이기도 했다. 맥심은 어느 날 스테판에게 자신의 연인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까미유(임마뉴엘 베아르)를 소개하였다.

그 후론 스테판을 만나러 올 때마다 까미유를 대동하고 나타났는데 까미유는 늘 별 말 없이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타입이었다. 머리모양도 지금처럼 금발이 아닌 검은 톤이었고 옷 또한 검은 실루엣이었다. 검정색이 어쩌면 그리도 잘 어울리던지. 영화는 안 보고 옷만 봤나 할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차림은 스테판을 향한 '조용한 응시'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기에….

무엇보다 이따금씩 바이올린 활을 유려히 움직이며 바이올린 소나타 혹은 삼중주 같은 것을 연주할 때면 음악은 음악대로 그녀의 연주모습은 연주 모습대로 절창, 절경이었다. 그 영화를 본 후 어디선가 읽으니 임마뉴엘 베아르가 <금지된 사랑>을 찍기 위하여 1년 동안 바이올린 연습을 하였다는 것이 아닌가.

흔히 연주장면을 보여줄 경우 손 부분이나 뒷모습을 보여주며 대역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임마뉴엘 베아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무슨 실내악단이 연습하는 꼭 그 모양으로 연습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비브라토도 능숙하게 되는 것이 진짜였다.

아니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이올린도 수준급이라니. 나는 그녀의 바이올린 연주 솜씨에 넋을 잃었다. 당시 나는 ‘절대음’이 뭔지도 터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싼 바이올린을 사서 조카에게 도레미파~~만 배운 채 혼자 나름대로(?) 활을 당기고 있었었다. 그러했기에 그녀의 바이올린 켜는 모습이 더욱 특별해 보였다.

노천카페 같은 데서 차를 마시다가 맥심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묘하게 흐르던 정적. 그 정적의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까미유는 스테판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데 스테판은 시종 관심 없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스테판은 그러하였고 그럴수록 까미유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 듯 때론 눈시울이 붉어져 보이기도 하였다. 저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두고 무시해도 유분수지 스테판은 너무(?) 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스테판의 무관심이 오히려 더 '강한 긍정'으로 느껴짐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어쩌면 까미유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에 계속 무언의 눈빛으로 간절히 호소한 게 아니었을까. 확인한다 해서 맥심의 연인이라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므로. 그냥 서로의 눈빛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완성되는 그런 사랑도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심증이 물증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까미유는 끝내 스테판에게서 아무런 답도 받지 못한 채 맥심과 사랑의 완성이라 할 단계로 접어들었는데, 그리고 영화가 끝이 났는지 스테판이 한 번 더 등장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스테판이 끝까지 모르쇠하는 표정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떠나감으로 인해 비로소 마음 놓고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금지된 사랑>찾아 삼만 리

요즘 숙제하듯 지난 비디오들을 죽 보다가 몇몇 영화는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구입하기도 하는데 내가 가장 갖고 싶은 비디오는 바로 이 <금지된 사랑>이다. 우리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는 모두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어느 곳에는 목록에는 있는데 실물이 없었다.

해서 요즘도 고민이다. 어찌하면 이 비디오를 내손에 넣을 수 있을까. 아주 흥행한 영화였다면 디브이디로 새롭게 선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럴 희망은 없어 보인다. 오직 비디오를 입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일진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금지된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어느 네티즌이 가르쳐 주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꼭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남들에겐 졸작 내게는 걸작 응모기사

2006-01-24 20:2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남들에겐 졸작 내게는 걸작 응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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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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