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김청기 감독과 <슈퍼 홍길동>

우리나라에서는 엉성함과 독특함이 두드러지는 B무비의 경향을 어린이 영화를 통해 열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어린이 영화는 어린이만 보는 영화라는 인식과 어린이 영화는 유치하다는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는 어린이를 주된 대상으로 제작된 영화에서 많은 제작비와 유명배우를 동원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굳이 그 예외를 찾자면 <우뢰매>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우뢰매> 시리즈의 4탄인 <썬더브이 출동>은 김수미, 남궁원 등의 호화출연진이 돋보이며,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은 박사 캐릭터가 등장한 영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런 결과, 우리나라의 어린이 영화는 철저하게 독특함과 더불어 몸으로 웃기는 유머로 승부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심형래, 김정식, 이창훈 등의 개그맨은 TV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어린이 영화에 출연한 이들이다. 이들이 TV에서 인기를 얻게 된 캐릭터들은 그대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변변한 어린이 영화가 제작되지 못했던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출연한 영화는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단적으로 심형래가 출연했고, 남기남 감독이 연출한 <영구와 땡칠이>는 270만의 어린이 관객을 동원한 전설적인 흥행작이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어린이 영화는 김청기 감독을 빼놓고는 그 존재를 말할 수 없다. 총 8편까지 제작된 <우뢰매>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태권V> 시리즈와 무명 시절의 박중훈이 출연했던 <바이오맨> 등은 모두 우리나라의 어린이 영화에 있어서 주목받을만한 걸작(?)들이다. 최근에는 할리우드의 어린이 영화들이 밀려오면서 이런 형식의 영화는 제작 자체가 힘든 환경이 됐지만, 적어도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이 영화들은 추억 그 자체가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억 속에 남아있는 영화는 바로 그 김청기 감독과 <깡패 법칙>의 조명화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했고, 김정식이 주연을 맡은 영화이며, 김정식과 이창훈이 한동안 '홍길동'이라는 공통의 캐릭터를 맡아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그 시절의 영화다. 이제는 제목조차 기억하기 힘든 영화인 <슈퍼 홍길동2-공초 도사와 슈퍼 홍길동>, 혹시 기억하시는 분 계실지 모르겠다.

김정식, 심형래로부터 '홍길동'을 이어받다

 김정식의 '홍길동'이 시작된 <슈퍼 홍길동2-공초 도사와 슈퍼 홍길동>
ⓒ 서울동화프로덕션

원래 <슈퍼 홍길동>의 주연을 맡은 이는 심형래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2번째 슈퍼 홍길동은 김정식이 맡게 되었으며, 심형래는 곧 자신의 '분신'인 '영구'로 돌아가 1993년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공룡 쮸쮸'의 탄생과 함께 <디-워>로 이어지게 된 괴수 시리즈를 직접 연출한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심형래의 분신이 '영구'라면, 김정식의 분신은 곧 '홍길동'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인기에 힘입어 <슈퍼 홍길동>은 무려 7편까지 제작되는 뚝심을 보인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6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7편이 완성됐다는 사실이 더욱 재미있는 영화다. 그렇듯 잦은 제작 횟수로 알 수 있듯이. 다시 보자면 엉성하기 그지 없는 <슈퍼 홍길동>, 하지만 나는 절대 이 시리즈를 잊지 못하고 있다.

돌아보면, '홍길동'이라는 캐릭터는 어린이들이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일단 '홍길동'은 어린이들이 전래동화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눈여겨보는 캐릭터이며, '홍길동'이 처한 특유의 비극적인 상황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친숙함을 한층 더 밀도있게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우치' 역시 그와 비슷한 전래동화 속의 영웅 캐릭터라 볼 수 있었지만, '홍길동'만한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로는 그에게는 동정심으로부터 시작돼서 연결되는 친숙함이 결여된 캐릭터라는 점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게다가 '홍길동'은 구름을 타고, 번개같이 날기도 하는 등,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마술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캐릭터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직은 환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며 깨우치는 아이들이 이런 홍길동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정식의 분신 '홍길동'은 그로 하여금 심형래 못지않은 어린이들의 영웅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왜 여장을 했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 서울동화프로덕션

이 영화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이유

내용으로 따지자면, 이 영화는 B무비의 경향이 짙은 그 당시의 흔한 어린이 영화일 뿐이다. 무과 시험을 보러 가던 홍길동(김정식)이 곱디 고운 아가씨(반드시 고와야 한다)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하지 못해 그녀를 도우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으로서, 그다지 새롭게 주목할 점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장면은 바로 딱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는 당시 유행하던 할리우드 영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를 차용한 장면이 두드러진다. 아마도 이 장면이라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20대 영화 관객이 지금도 많을지도 모른다.

홍길동이 무과 시험을 보러 가던 중, 만나게 된 이들은 '공초 도사(임하룡)'와 곱단, 똘이 남매다. 하지만 곱단이의 아버지는 불행히도 모함으로 인해 억울하게 귀양을 가게 된 것이다. 홍길동은 곱단이의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하지만, 곱단이의 아버지를 모함한 장본인 '변부사'는 왜구까지 끌어들이는 만행을 저지르며, 홍길동 일행의 노력을 방해한다.

이 영화는 '왜구'의 출현이 주목할만한 장면이다. 이 당시의 왜구는 모두 조총을 주무기로 쓰고 있었다. 검술을 익히고, 도술에 밝은 홍길동조차도 이 조총은 대단히 당황스러운 무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홍길동과 공초 도사가 생각한 발상은 바로 미래로 가는 것. 미래로 가서 총을 구해온다는 것이다.

어쨌든 미래로 간 그들은 총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지만, 장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들의 눈에 번쩍 띄인 곳은 바로 완구점이다. 이곳에는 총들이 넘칠 정도로 쌓여 있었다. 왜구들의 조총보다 훨씬 멋져보이는 그 총들에 홍길동과 공초 도사가 푹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완구점 아가씨가 제시하는 가격 8000원(가격도 잊혀지지 않는다)을 8000냥으로 오인해 기절초풍한 홍길동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진 엽전꾸러미를 모두 내놓으며. 하소연해 어렵게 총을 구하게 된다. 그 당시의 8000냥이라면 집을 몇채 이상 살 수 있는 거금이다.

그리하여 다시 과거로 돌아간 그들은 왜구의 조총 공격 앞에 의기양양하게 총을 쏘지만, 총은 철저하게 그들을 배신한다. 나오라는 총알은 나오지 않고, '삐리리'라는 괴상한 소리만 시끄러울 정도로 울려대고, 황당하게 물만 발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쩔 수 있나? 엄연한 병법 중의 하나인 '36계 줄행랑'을 택할 수밖에.

 미래로 날아간 홍길동과 공초 도사. 이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다.
ⓒ 서울동화프로덕션

엉성함 속에 숨어있는 살아있는 재치

김정식이 출연한 일련의 <슈퍼 홍길동> 시리즈의 매력은 극단적인 엉성함 속에 숨어있는 확실한 재치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문화적 코드를 유감없이 이용하며, 엉성해보이면서도 웃음만은 확실하게 줄 수 있는 장면으로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백 투 더 퓨처>는 영화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대단히 유행했던 시리즈였다. <슈퍼 홍길동2>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와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백 투 더 퓨처>로 인해 화제가 된 문화적 코드였다.

게다가 이 당시의 또 한가지 유행 코드인 '몸으로 웃기는 개그'도 그 매력이 여전하다. <슈퍼 홍길동>의 첫 시리즈에 '몸으로 웃기는 개그'의 환상 콤비인 심형래와 임하룡이 출연한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임하룡은 '때리는 역'을 주로 맡았지만, 이 영화 속의 임하룡은 때리는 행동 이외에도 남루한 옷차림과 특유의 부분 염색만으로도 웃음을 주는 위력을 선보인다. 신승수 감독의 <얼굴>을 비롯해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임하룡의 배우로서의 진지한 역량은 이런 어린이 영화들을 통해서 단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해리 포터> 시리즈와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보며 자라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이런 영화는 더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 시절, 이런 어린이 영화를 보며 자라난 20대 관객들에게 있어 이런 영화들은 추억 그 자체이기 때문에 최근에도 주목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기개그맨 이경규의 주연작 <우주 전사 불의 사나이>나 서울 관객 130명을 동원한, 가수 김흥국 주연의 <앗싸! 호랑나비>도 그런 차원에서 인터넷을 통해 꾸준히 관심을 얻고 있다.

1960년대의 전설이 <황금박쥐>였다면, 1970년대의 전설은 <로보트 태권V>엿으며, 1980년대의 전설은 <우뢰매>였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대형 어린이 영화의 공세 앞에서 이런 영화들은 더 이상 제작되기 힘든 환경을 맞이했다.

어린이 영화의 '상징'인 김청기 감독은 아직 한창 활동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애니메이션 <의적 임꺽정>을 마지막으로 연출 활동을 중지했으며, 또다른 상징인 남기남 감독 역시 '갈갈이 콤비'를 앞세워 최근에도 <바리바리 짱>을 연출했지만, 달라진 관객의 눈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많은 어린이 영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만큼, 여전한 '전설'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추억 속의 그 영화들은 이제 TV에서도 방영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서글프게 느껴진다.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 속에서 묻혀진 그들을 이제는 언제 어디서 봐야 하는 것일까? 그 시절의 심형래와 김정식이 오늘은 유난히 보고 싶어진다.

덧붙이는 글 1.'남들에겐 졸작, 내게는 불후의 명작?' 응모기사입니다. 절대 '진지하게' 쓴 글입니다. 장난 아닙니다.

2.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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