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영화 <파이란> 포스터에 나오는 문구다. <파이란>의 경우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서 평이 좋다고 합니다. 저도 <파이란>을 본 후배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다가, 2004년 어느 날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당시 다이어리에 낙서처럼 적어놓은 것을 나중에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결혼하기 전, 지금의 아내의 존재가 마음속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속에서 <파이란>이라는 영화를 본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마음 상태가 지금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영화 [파이란] 포스터
ⓒ 네이버
2004년 6월 19일 "케이블티비에서 <파이란> 봄. 영화 내내 그냥 마음이 답답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죽을 때까지 이름만 불러보고 끝나는 사랑. 차라리 그걸 모르고 살아갔으면 더 좋았을 남자. 헤어진 다음에 후회하는 것. 그것이 어리석지만 사람들은 헤어지고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최민식의 연기가 일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최민식의 영화'라고 말하기도 하는 <파이란>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최민식의 연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최민식의 삶은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밑바닥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친구(용식)는 보스가 되고 그 친구 밑에서 나이트클럽의 삐끼를 하는 강재의 삶은 그야말로 한심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삼류 양아치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삼류 양아치로 보이는 주인공 강재는 어떤 사람(파이란)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바로 강재가 오래전에 서류를 위조해 주어서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된 조선족 여인이었습니다. 한번 스쳐가면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한 사람은 계속 세상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삼류 인생을 살아갑니다. 한 사람은 그런 삼류 인간을 동경하면서, 그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면서 외롭게 살아갑니다. 어느 날, 주인공 강재는 살인을 저지른 보스이자 친구인 용식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더 이상 한심할 수 없는 인생이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에 강재는 뒤를 돌봐주겠다는 보스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강재에게 오래 전 위장 결혼한 여인 파이란의 죽음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파이란과의 관계를 이어 준 고향 후배 경수(공형진)와 함께 형식적으로 죽은 사람의 남편임을 확인만 해주는 절차를 위해서 그녀의 주검을 찾아갑니다. 남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강재는 파이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다. 파이란을 만나러 가는 여행은 파이란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여정으로 그려집니다. 그 여정 속에서 한번 정도 스쳐지나간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남자'라고 믿어 준 파이란의 편지와 사진을 보고 점차 이미 세상에 없는 그녀의 존재가 점점 마음속에서 자라남을 느낍니다. "강재씨가 가장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영화의 마지막 부분, 파이란의 유해를 들고 울음을 터뜨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꼽은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파이란의 생전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면서 보스가 보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삶도 어딘지 모르게 바쁘게 움직이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것을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우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처럼 회한 속에서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파이란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살았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지만, 파이란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상당히 친절하고 상냥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에 주인공이 별다른 생각 없이 한 순간의 서류 위조를 통해서 위장 결혼을 해줬지만, 파이란에게 있어서는 결혼해준 자체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이후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강재라는 사람에 대해서) 항상 자신에게만큼은 소중한 존재로 키워가는 파이란의 순수함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계속 마음속에 맴도는 대사가 있습니다. "모두 친절하지만 강재씨가 가장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비록 하류인생처럼 살아가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한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친절한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친절함이란 것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절함이란 파이란이 항상 주인공 강재를 생각하면서 키워간 사랑의 감정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파이란에게 '친절한 강재씨'였던 주인공은 오히려 자신을 친절하게 여겼던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아팠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인간 말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한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다니….'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이란>의 경우에는 그렇게 생각해주던 존재가 이미 이 세상에는 없으며, 그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주인공 강재의 아쉬움이고 불행이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면에서 이 영화는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그리고 비디오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도 국내의 다른 영화들 중에서 수백만, 천만까지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보다 <파이란>을 최고의 걸작 대열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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