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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6명 중 1명꼴로 봤다는 영화 <왕의 남자>. 소위 잘나가는 것은 일부러 피했다가 잠잠해지면 읽고 보는 습관이 있는지라 <왕의 남자>는 나중에 비디오가 나오면 봐야겠다고 미뤄뒀는데, 이번엔 피할 수 없는 동행이 생겨 나만의 약속을 깼다.

요즘 사람들이 모였다하면 영화 <왕의 남자>와 그 속의 주인공 공길 역을 맡았던 배우 이준기 이야기뿐이니, 궁금증 때문에 내심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나름의 영화 보는 습관을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포기하고 설날 오후를 나른하게 보내고 있는데, 형수가 극장에 가자며 분위기를 잡는다.

▲ 40년 만에 어머니와 처음 영화관에 가서 <왕의 남자>를 봤다.
ⓒ 유성호
해마다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며느리들이 잠시 고단함을 잊고 간만에 동서끼리 영화 한편 보고 싶다는 것이다. 문제는 달랑 동서끼리만 가면 뒤 꼭지가 편안하지 못하니 이 참에 아이들까지 포함해 온 가족이 모두 가자는 제안이었다.

설날에는 어머니와 형님 내외, 조카 셋, 그리고 우리 네 식구 등 모두 열명이 형님 집에 모인다. 삼대가 모이다보니 함께 볼 영화를 고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행이 아이들은 집에서 놀겠다고 하니 어른 입맛에만 맞추면 됐는데,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좋지 않은 또 하나의 습관인데, 명절에는 집안에서 옴짝달싹하지 않는 것이다. 명절에 놀이공원이며 극장, 고궁 등을 가는 것에 대해 극심한 편견을 갖고 있다. 명절날은 집안에서 가족들과 복작거리는 것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명절날 그런 곳에 가는 것을 '촌사람'이나 하는 것이라며 애써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게으름을 정당화시키곤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꼼짝없이 극장 갈 행장을 주섬주섬 꾸려야 했다. 집안의 '왕초'이신 어머니께서 친히 '관람' 의지를 보이시며 비상을 걸었기 때문이다. 전 같았으면 다녀오라시며 당신께서는 곧 있으면 들이닥칠 사위들을 맞을 준비를 하셨을 텐데, 뜻밖에도 함께 가자시니 동행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와 함께 극장을 가 본적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극장은 먹고살기 만만한 사람들의 호사였고 영화 자체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없었다기보다는 오남매를 홀로 키우는 고된 삶 속에 그것을 가슴 한켠 깊숙한 곳에 묻어버렸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이번 동행이 주는 의미가 새삼스럽다.

그러고 보니 40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본 것이다. 함께 간 두 며느리는 <왕의 남자>를 이미 본지라 <투사부일체>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모자만 오붓하게 앉아 요즘 최고로 잘나가는 영화 <왕의 남자>를 봤다.

40년이란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사느라 어머니와 영화 한편 같이 볼 수 없었는지 짧은 생각을 하려할 즘, 한 무리의 광대패가 살판을 벌이면서 영화가 시작됐다. 인터넷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뒤적이며 접했던 재인들의 삶을 엿보면서 앞으로 전개될 영화 이야기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어머니 역시 꼿꼿이 앉아서 영화에 몰입하고 계신 듯했다.

영화 전편을 휘감고 도는 오방색은 현란하지도, 천하지도 않게 스크린을 수놓았고 여장남자 공길의 요염함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장생(감우성 분)의 탄탄한 연기내공에 간간이 심장이 고동쳤다. 어머니는 시선을 스크린에 꽂고 아무런 미동도 없다. 영화에 한참 몰입하신 모양이었다.

중국의 경극을 끌어들여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는 상황을 재연하면서 피비린내를 예고하는 장면 속에는 신분이 천양지차인 광대들과 왕족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져 있어 보는 이의 감정도 함께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반정의 시각에 마지막 줄타기를 하면서 부채를 던져버리는 장생과 공길을 정지화면으로 잡은 마지막 장면은 동양화의 여백의 미처럼 긴 여운을 남겼다. 한마디로 소금기 어린 눈물만큼 짭짤하게 잘 만든 수작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감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영화의 크레디트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서둘러 일어나자고 했다. 다소 뚱뚱하신 어머니는 한 쪽 다리마저 대퇴골 골절의 후유증으로 불편하신 터라 남들보다 서둘러 움직여 보조를 맞추고자 하신 것이다. 여기서는 서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키고 영화가 어땠냐고 여쭤봤다.

뜻밖에도 어머니는 "뭐, 애들 영화를 평할 게 있겠냐"시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앞장서 계단을 오르셨다. 어머니의 한쪽 팔을 받치고 극장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여쭤봤지만 어머니에게는 <왕의 남자>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나보다. 여전히 애들 영화라신다. 일흔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 가슴에는 옛날 신파의 감흥이 시간이 정지된 채 머물고 있는 듯했다.

<왕의 남자>는 우리 모자에게 극과 극의 평을 받았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40년 만에 처음 모자가 오붓하게 관람한 그 자체로 우리 가족 영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다. 언제 또다시 모자만의 조붓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참 고마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가 명작이면 어떻고 졸작이면 어떻겠는가. 어차피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니 명작과 졸작은 같은 운명인 것을. 중요한 것은 일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와 아름다운 동행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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