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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조종을 울리자

국가보안법은 반세기 동안 한반도 남단을 옥죄어왔습니다. 그러나 헌법에도 명시된 사상의 자유를 자의적인 법의 잣대로 재단하는 '야만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더욱 높아진 국보법 폐지 여론에 귀기울이며, 목요특별기획으로 [야만의 시대, 조종(弔鐘)을 울리자]를 마련했습니다.

15회 안팎의 이번 기획을 통해 <오마이뉴스>는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그로 인한 폐지 당위성을 집중 탐구할 예정입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그간 국보법 폐지를 위해 노력해온 관련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전문가 릴레이 기고, 국보법 피해사례 발굴 등 다양한 형태의 관련기사를 내보낼 예정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 서울 동대문구 장안3동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보안분실. 간판이나 문패조차 없어 외관상으로는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알 수 없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장안 3동 보안분실의 높은 철문을 사이에 두고 <오마이뉴스> 기자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문 안쪽에서는 보안분실 소속 직원이 거울을 이용해 바깥을 살펴 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70년대나 주로 쓰였을 법한 초인종. 벨을 누르니 2.5m 높이의 거대한 철대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린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성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 어떻게 오셨어요?
"(보안)계장님, 계신가요?"

의아스럽다는 눈치다.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답했다. 철문은 다시 닫혔다. 5분쯤 지났을까.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경찰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과 계급조차 알리길 꺼려한 그는 기자와의 대화 내내 '모르쇠'로 일관했다.

지난 11일 오전 기자가 찾아간 곳은 동대문구 장안3동에 자리한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의 보안분실. 보안수사2대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3m 높이의 담과 닿기만 해도 피가 맺힐 듯한 철사줄, 그리고 용도가 불분명한 전선으로 겹겹이 가리워져 있었다.

간판도 문패도 없다. 진회색 벽돌의 이 건물은 외관상으론 도대체 몇 층인지, 용도는 무엇인지 좀처럼 알 수 없다. 맨 윗층의 돌출 창문은 외부에서도 검은 장막으로 가려놔 비밀스런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이 '비밀의 집'에서 걸어나온 남성은 자신의 신분조차 보안사항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몇 명의 경찰관이 근무를 하는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조사를 받는지도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서울경찰청 소속 보안분실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보안분실 안으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며 대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도 그는 "들어오지는 마시고"라며 얼른 문 밖으로 나섰다. '보안'이 몸에 배인 듯했다.

- 계장님 계신가요?
"지금 안계십니다."

- 안쪽에서 인터뷰할 수 없을까요?
"안됩니다. 보안사항입니다."

- 직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 이곳에서 몇 명이 근무합니까.
"기밀입니다."

과연 보안 수사경찰이었다. 이는 보안과 경찰들의 전형적 특징이기도 하다.

▲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의 한 보안분실 소재지인 동대문구 장안3동 439-1번지는 상세지도에 '경동산업'이라는 '위장 상호'로 표기돼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산업, △△상사 - 보안분실의 또 다른 이름

보안과 경찰들은 흔히 자신을 '상무'나 '전무'라고 밝힌다. 이는 업무상 자신의 소속이나 계급을 알리기 꺼린 데서 나온 습성이라는 게 공공연한 이유다. '상무'는 경사, '전무'는 경위, '사장'은 (보안) 계장을 가리킨다.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들에 대해서는 같은 경찰끼리도 서로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일종의 관례다.

경찰청과 각 지방경찰청 외근 보안계 직원들이 속해 있는 보안분실도 각각 위장 명칭을 갖고 있다. ○○상사, △△산업 등의 형식이다.

이와 같이 주택가나 도심 곳곳에 은밀히 자리잡은 보안분실은 서울에만 5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2년 국회 행정자치위 국정감사에서 경찰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서울의 남영동, 홍제동 등에, 서울경찰청은 옥인동, 장안동, 구로동에 각각 보안분실을 두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장안동 보안분실은 '경동산업'이란 유령 명칭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경동산업의 한 관계자'는 "보통 분실을 그렇게 일컫는다는 사실조차 처음 들어보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오히려 기자가 갸우뚱할 일이다. 분실이 자리한 장안3동 439-1번지는 이미 지도에도 '경동산업'이란 이름으로 표시돼 있다. 뿐만 아니다. 이는 장안3동에 사는 웬만한 주민도 다 아는 사실이다.

10년째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40대의 K씨는 그 건물을 가리키자 "경동산업을 말하는 것이냐"며 "가끔 식사 배달을 시킨다"고 답했다. 이어 K씨는 "7∼8년 전에는 학생들이 데모해서 최루탄도 터지는 일이 있었다"며 "요즘에도 아주 가끔 학생들이 와서 데모를 하는데 우리는 그냥 '무서운 곳'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장안동 보안분실이 있는 장안3동 일대는 전형적인 주택가다. 인근 주민들은 "지역발전에 저해가 된다", "시대 변화를 따르지 못한 은밀한 수사 기관은 없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장안동 보안분실 인근의 부동산 중개업소(사진 위)와 식당에서 만난 주민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보안분실은 '국보법 위반자 검거전담반'
영장발부율은 51%..."보안수사대의 과도한 체포 막아야"

대공관련 수사기관으로서 출발한 보안분실(옛 대공분실)은 사실상 국가보안법 전담 수사기관이다. 남-북관계가 유연화하면서 보안분실의 주된 활동은 학생운동 관련자 검거에 집중돼있다.

그러나 국보법 위반 사건이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고 보안수사대에 의한 무리한 체포율도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어 보안수사 인력의 폐지 또는 축소 요구가 일고 있다.

지난 2002년 경찰청이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서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같은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93년부터 2001년까지 9년간 국보법 위반 구속자 중 보안분실 등 보안수사대에서 붙잡은 비율이 평균 80%를 웃돈다. 보안수사대가 국보법 위반자 검거를 전담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보법 위반 사건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국보법 위반자 검거율은 93년 81.4%에서 2001년에는 71.6%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무리한 검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국보법 위반자 검거인원 47명 중 약 57.4%인 27명에 대해서만 구속 영장이 발부됐고, 이듬해인 2001년에는 영장 발부율이 51.8%로 줄어들었다(전체 구속인원 56명 중 29명에 대해서 발부).

이에 대해 송소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는 "이는 보안수사대의 무리하고 과도한 체포 관행의 한 단면"이라며 "보안분실 등 국보법 전담 수사기관에 대한 전면적 개편을 통해 인신 체포의 남발을 막고 국보법 구속 수사율 저하 등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근 주민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곳이"

특히 주민들은 이제는 보안분실로 명칭을 바꾼 그곳을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부속기관'으로 알고 있었다. 특유의 폐쇄적 분위기 때문이다.

인근의 회사에 다닌다는 한 남성은 "처음엔 '경동산업'이라고 하길래 일반 회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동안 오가면서 보니 드나드는 사람이 없더라, 담도 높고 철문은 항상 꼭꼭 잠겨 있고… 나중에야 (보안분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도 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21세기에도 대공분실의 후신인 보안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것도 인근에 그런 시설이 존재한다는 점을 꺼리고 있었다.

장안3동의 한 제과점에서 만난 주민은 "시대에 맞지 않는 음침한 곳 아니냐"며 "여러가지 이유로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H씨도 "떳떳한 수사라면 경찰서도 있지 않느냐"며 "이렇게 은밀한 곳에서 수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민들은 보안분실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로 '지역발전 저해'를 꼽기도 했다. 특히 인근의 부동산중개업자들은 보안분실이 들어선 땅을 무척 아까워했다. 약 70m 인근에 장평 중학교와 안평 초등학교가 자리한 이곳은 전형적인 주택가다. 장안동 보안분실과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에서도 빌라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연립주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H 부동산의 한정훈(47)·하태랑(43)씨는 "집을 알아보다가도 보안분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무래도 꺼려한다"며 "일대가 전형적 주택가인데 집값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런 탓에 지난 17대 총선에서 이 지역(동대문구을)의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던 허인회(열린우리당)씨는 '보안분실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지역발전을 위해 보안분실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보안수사대, 자신만의 밀실에서 나와라

'이름 없는 경찰관'과 '위장 명칭'으로 포장된 보안분실. 진보법률인들과 인권운동가들은 보안분실은 '밀실수사의 전형'이라며 '폐지'에 입을 모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장주영(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는 "보안분실에서 모든 조사가 비공개로 이뤄지는 과정에서 위법 수사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게 된다"며 "인권침해와 무리한 보안사건 양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안분실에서 조사를 받을 경우 피의자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수사관은 피의자의 혐의를 과학적 수사를 통해 입증해야 하지만 보안분실 등의 밀실에서는 자백 위주의 수사가 가능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박씨는 "간판도 없는 분실로 끌려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신원조차 모르는 수사관들에게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의자에게는 커다란 심리적 압박을 준다"며 "보안분실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 밀실수사의 잔재"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 경찰의 변명은 궁색하다. 서울경찰청 보안부의 한 관계자는 "보안분실도 일반 경찰서의 수사과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라"며 "열린 세상에서 (보안분실에 대해) 너무 폐쇄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우리도 법대로 한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쏟아냈다.

전기고문·물고문 등 인권탄압의 산실
각종 고문수사로 얼룩진 '보안분실' 역사

▲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수사를 받다 숨진 고 박종철군 14주기 위령제가 2001년 1월 12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보안분실에서 진행됐다. 박군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위령제를 하기에 앞서 착잡한 표정으로 서있다.
ⓒ연합뉴스

인권·시민단체의 폐지 요구에도 경찰이 줄기차게 운영해온 보안분실(옛 대공분실)은 각종 인권침해와 고문수사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고문수사의 피해자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투사 등 민주화운동 전력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박종철씨 고문 치사사건'이다. 지난 87년 서울대 3학년생이던 박씨가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수사를 받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훗날 경찰의 물고문에 의한 사망이었음이 드러나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도 보안분실 고문수사의 피해자다. 김 의원은 지난 85년 민추위에서 배포한 유인물인 '깃발'에 대한 수사인 '깃발 사건'으로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보름간 혹독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지난 96년 12월에는 보안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한 대학생이 '구타 수사'를 호소하며 자해, 하반신에 3도의 화상을 입는 일도 일어났다. 당시 경기도 수원에 자리한 경기지방경찰청 보안분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던 김아무개(26)씨는 석유난로를 이용해 분신을 기도했다.

김씨는 이후 변호사와의 접견에서 "경찰에 연행되면서 심하게 구타 당해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분신을 기도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당시 경희대생 30여명이 경기도경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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