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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본관.
ⓒ 오마이뉴스 남소연
"나는 과거에 두 차례에 걸쳐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돼 교도소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검찰에서 나를 면접한 면접관들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5공 시절 당시 공안 담당 검사들이었다.

일반적인 경험에 의하면 본인과 같이 사법시험 성적, 사법연수원 성적, 지도교수의 평가, 검찰 지도관의 성적이 모두 훌륭한 경우에는 검사임용 적격자로 추정된다. 그러나 면접관들은 나의 면접점수에 낙제점을 줬다. 면접 당일 면접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은 지원자는 결국 검사에 임용하면서 어떻게 내게 면접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가 있나?"
(천낙붕 변호사, 사법연수원 25기)

"나는 99년 2월 신규 검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당시 대법원은 99년 신규법관 임용 신청을 한 사법연수원 28기 수료생 중 3명에 대해서, 법무부는 신규검사 임용신청자 중 나에 대해 임용거부 처분을 내렸다. 이들 4명은 이런 전력만 없었다면 모두 무난히 임용될 성적 등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국가공무원법이나 공무원임용령 어디에도 과거의 전과를 이유로, 그것도 복권이 된 사람의 공무담임권을 제한하라는 규정은 없다. 학생·노동운동이나 시국사건 관련자들의 임용 탈락 조치는 허용하기 힘든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한다."
(문광명 변호사, 사법연수원 28기)

지난 2000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 시국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는 예비판사 및 검사 지원자 6명이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에게 제출한 의견서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이들은 이 의견서에서 격한 어투로 자신들의 임용 탈락이 '국보법 위반 전력' 때문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그후 4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이 때문인지 현재 사법연수원에 있는 연수생들도 '학생운동 전력자'가 법관으로 임용이 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국보법 위반 전력자라면 당연히 임관되기 어렵겠죠."

사법연수원생 A씨는 지금도 역시 '국보법 전력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본다면서도 "국보법은 존폐 논란이 있는 법이고 국보법 전과자들인 전대협 의장들도 국회에 들어가게 됐는데 법관 임용에서 이들을 배제한다면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법관 및 검사 임용 시에 과거 전력이 문제가 되리란 걱정은 다른 연수생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사법연수생인 B씨도 "이전의 사례들을 보면 이미 임용시에 일종의 사상검증을 하는 것 같다"며 "성적 중심으로 판·검사를 뽑는 것도 문제지만 임용시에 과거 활동을 문제 삼는 사상검증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더욱이 올해 초 전 전국학생정치연합 정책국장으로 활동했던 이봉재(사법연수원 33기, 현 변호사)씨가 예비판사 임용에 지원했다가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자 연수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짙어졌다. 97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후 사면됐던 이씨는 당시 법원이 자신의 국보법 위반 전력을 문제삼아 탈락시켰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법원도 이씨의 과거 활동이 탈락의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음을 시인했다. 당시 손지호 대법원 공보관은 이씨의 탈락과 관련해 "국보법 위반 전력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밝히고는 "그러나 전력의 정도나 배경 등에 대해 심각하게 숙고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오마이뉴스> 2월26일자 보도)

B씨는 "당시 보도를 접하고 답답했다"며 "연수생들 사이에서도 국보법 전력이 아직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라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96년부터 6년간 예비판사 임용에서 21명 탈락... 이중 11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

사법연수생들의 이러한 '걱정'은 지난 몇 년 간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 법관 임용 탈락자 현황을 보면, 이 기간 중 법관 임용 지원자 중 총 17명이 탈락했다. 그런데 이중 과반수가 넘는 9명의 지원자가 소위 말하는 '시국사건 관련자'들이었다(송영길 의원이 2000년 11월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

2001년에도 마찬가지 상황이 이어졌다. 예비판사 임용에서 민주화운동 전력이 있던 3명의 지원자가 탈락했다. 전체 탈락자는 4명이었다. 우연이라고만 말하기엔 어려운 수치다. 예비판사 임용 탈락자 중 대다수가 국보법·집시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등의 형을 선고받은 이들이라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나타낸다.

법원 행정처장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도 벌어졌다. 2001년 예비판시 임용에서 떨어진 정지석(한겨레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2001년 예비판사 임용 관련 서류 중 자신에 관련된 부분을 공개하라며 법원 행정처장을 상대로 정보비공개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또한 정 변호사는 참여연대와 함께 헌법재판소에도 헌법소원을 냈다. 당시 참여연대는 "민주화운동 전력 등을 이유로 예비판사 임용을 거부한 대법원장의 처분은 위헌"이라며 헌재에 임용 거부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1989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가 1993년 특별복권된 정 변호사는 당시 법관 임용 성적에서 111명 중 14등으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아직도 탈락 이유가 자신의 민주화운동 전력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정 변호사는 "(떨어뜨린) 다른 이유가 없다"며 "그간 법원이 성적 이외에 다른 이유로 탈락시킨 사례는 국보법 전력자 이외에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자신의 탈락 이유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속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2001년 서울행정법원은 정 변호사가 낸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법관임용심사위원회 회의록과 국가정보원의 원고에 대한 존안자료, 면접과 평가내용 등이 공개될 경우 추상적 평가기준을 둘러싸고 시시비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보공개 청구를 기각했다.

1996년~2001년까지 예비판사 임용 탈락자 현황

구분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예비 판사 임용자

134

137

128

146

166

109

예비 판사 임용 탈락자

1

3

4

3

6

4

탈락자 중 민주화운동 관련자

0

1

3

3

2

3

ⓒ (참고: 2000년 송영길 의원 국감자료)


사법연수원 28기로 지난 99년 예비판사 임용에서 탈락한 황인상 변호사는 과거 학생운동으로 집행유예 이상의 처벌을 받은 지원자는 사실상 법원이 임용을 거부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 변호사는 송영길 의원실에 전달한 의견서를 통해 "학생운동으로 집행유예 전력이 있는 사법연수생이 판사임용에서 탈락한 최초의 사례는 27기에서 나타났다"며 "동종 사건으로 다른 재판부에서 실형과 집행유예를 받은 두 명의 연수생에 대해 법원이 형평성을 이유로 판사임용에 모두 탈락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황 변호사는 "이 일을 계기로 28기부터는 학생운동 관련자 중 집행유예 전력자는 판사 임용에서 불허하는 등 (임용) 기준이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00년과 2002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연수원생의 임용을 허가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국보법 위반혐의로 집행유예 이상의 선고를 받은 지원자에 대해서는 임용에 인색하다. 사실상 임용기준의 '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은 민주화운동에 몸 담았다가 국보법 위반 혐의까지 뒤집어쓰게 됐던 판·검사 지망생들에게는 '이중의 굴레'다.

다른 경험 다른 생각 가진 이들이 재판부를 진보적으로 바꿀 수 있어

이러한 지적에 대해 대법원과 법무부는 고개를 내두른다. 안정호 대법원 인사담당관(판사)은 "판사 임용 여부는 사법시험 및 연수원 성적, 담당 교수들과 시보 실습을 지도한 부장 판사들의 평가, 면접 등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며 "국보법 전력이 있다고 해서 임용이 안된다고 보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검사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 검찰1과의 조상철 검사도 "최근에는 국보법 위반 전력이 있다고 탈락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검찰이 법 집행 기관이다 보니 다른 기관에 비해 보수적이고 체제수호적이지만 70년대 이후 변화한 사회환경에 따라 신규 검사 임용도 열린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다르다. 조국(서울대 법학) 교수는 "판검사 임용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민주화운동 전력자들을 보면 사면 복권된 이들로 공무원 임용에 하자가 없는 이들이었다"며 "존폐 및 위헌 논란이 있는 국보법을 과거에 위반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준 것은 전과에 기초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특히 대법원에 대해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국보법 위반 전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오히려 법관의 구성을 진보적으로 바꾸는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른 경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충원될 때 소수자의 목소리도 법원에 반영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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