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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내기' 그림의 프린트 물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가위표를 그린 작품 <국가보안법 2> 앞에 선 신학철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표현의 자유가 불온한가, 빨간딱지를 남발한 국가보안법이 불온한가.

통일그림 '모내기'의 작가 신학철(61)씨에게 지원군단이 생겼다. '모내기' 그림의 반환을 요구하는 작가 23명이 모여 전시를 열게된 것.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에 '빨간딱지'를 붙인 국가와 국가보안법에 대한 항의 시위이기도 하다.

전시 개막을 6시간 여 앞둔 2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시장에서 열린 '모내기 그림 반환 촉구 기자회견'에 모인 비평가와 작가들은 예술의 원천인 상상력을 규제한 국가와 국보법의 '불온함'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전시 '금지된 상상력', 불온한 국보법을 고발한다

지난 98년 '모내기' 그림을 평론한 비평가인 류제홍(문화연대 공간환경위 부위원장)씨는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은 누구나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검찰은 국보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예술가와 관람자의 시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류씨는 비평가의 입장에서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지난 89년 '모내기' 그림을 압수할 당시 검·경은 신씨가 그림 위쪽(북쪽)의 평화로운 농민들의 잔치 모습은 북한을, 써레질로 군사독재정권과 외세문물 등을 쓸어내리고 있는 아래쪽(남쪽)은 남한을 상징해 북한을 이상향으로 그린 '이적표현물'로 규정했다.

검경의 주장에 대해 류씨는 "그림 위쪽에 있는 농부나 어린이들의 모습은 80년대 당시 발간된 <새마을>이라는 화보집의 사진을 따서 그린 것"이라며 "검찰은 위쪽의 풍경을 북한으로 봤지만 이는 공간적 배치라기 보다 이상적 시점을 원거리에 설정한 상징적 의미가 담긴 구도"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림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복숭아 열매와 줄기, 비둘기에 대해서도 류씨는 "일종의 이상사회를 그렸음을 나타내는 틀"이라며 "서양미술사에서 나타나는 '알레고리적 기법'을 사용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 2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시 참여 작가들 "불온한 국보법, 내 그림도 처단하라"

▲ 노순택씨의 작품.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시 '금지된 상상력'에 참여한 23명의 작가들은 신학철씨의 모내기 그림과 그에 대한 탄압을 모티브로 그들의 작품을 통해 국보법이 현존하는 현실을 조롱한다.

전시에 참여한 사진가 노순택씨는 "사진이나 이미지는 다의적이기 때문에 가치있고 재미가 있는 것"이라며 "이를 두고 국보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해석하고 규정하면 작품활동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노씨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사진을 통해 '그러면 나도 한번 잡아가보라'는 일종의 조롱을 담았다"며 "국보법이 없는 아름다운 사회를 고무·찬양하기 위해 전시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씨는 이번 전시에서 북한의 하늘을 배경으로 장군 동상의 뒷모습을 찍은 <"아, 북녘의 하늘이 참 곱다"라고 말하면 나 잡아가는 거니?>,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를 담은 <"고 녀석 참 똘똘하게 생겼네"라고 말하면 나 잡아가는 거니?>, 미군 훈련장이 담긴 <"빌어먹을 미군놈아, 전쟁책동 집어쳐"라고 말하면 나 잡아가는 거니?> 등의 사진을 통해 국보법이 부당하게 규제하는 현실을 냉소했다.

화가인 박은태씨는 그림 <갇혀진 적색>을 출품했다. 수갑이 규정하는 두 개 원 안에 한쪽에는 엷은 붉은색을 바탕으로 사람의 발바닥을, 좀더 짙은 붉은색으로 채워진 또하나의 원 안에는 질경이를 넣었다.

▲ 막걸리 보안법을 풍자한 작품.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씨는 "국보법이 채우는 수갑은 땅과 인간의 진실에 채우는 수갑"이라며 "정부가 그림의 원상복구와 반환을 담은 유엔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라는 촉구의 의미에서 전시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학철씨 "국보법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법"

이번 작품전에는 '모내기' 그림의 원작자인 신학철씨의 작품도 전시된다. 신씨는 '모내기' 그림의 프린트 물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가위표를 그린 작품 <국가보안법 2>를 냈다.

신씨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준 선·후배·동료 작가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라며 "국보법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예술가와 관련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엔(UN)권고안 수용을 위한 신학철 '모내기' 문화예술인 비상대책위'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중구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시장에서 열린다(문의: 738-0764, 3709-7500).

신학철씨 '모내기' 그림 사건이란?

▲ 신학철씨의 '모내기'(캔버스에 유채, 162.2×112.1cm, 1987)
그림 '모내기'는 신학철씨가 지난 1987년 8월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가 주최한 제1회 통일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100호(112.1×162.2cm) 크기의 대작이다. 89년 한 지역청년단체가 이 그림을 새겨 넣은 부채를 배포하면서 수사기관이 원작자인 신씨를 수소문해 국가보안법을 적용, 기소하고 그림까지 압수하기에 이른다.

신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새벽 5시30분께 신씨의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은 그림 '모내기'를 액자틀에서 떼어내 둘둘 말아 압수해갔다. 이후 재판 때마다 재판정에는 그림이 내걸렸고, 그때마다 검찰은 그림을 말거나 접어서 들고 나왔다.

신씨는 1·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은 지난 99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로써 징역 10월형 선고유예와 그림 몰수 등의 판결이 확정된 것.

이 사건은 지난 4월18일 유엔(UN) 인권위원회가 '모내기' 사건에 대해 그림을 작가에게 돌려 줄 것과 유죄 판결에 대한 보상 등을 권고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으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이재원)가 신씨의 그림 열람등사 신청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해 다시한번 논란이 일고 있다.

신씨는 "현재 내 그림은 A4 크기로 접혀진 채 서류봉투 안에 넣어져 검찰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안다, 유화로 물감이 두껍게 발라졌으니 접힌 자국도 나고 물감이 떨어져 나가기도 해 아마 원상회복은 불가능 한 상태일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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