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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한 고려대 학생이 던진 물음에 조용했던 대학가가 술렁입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종북몰이’ 광풍에도 조용하던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안녕하지 못하다'고 응답합니다. 더 이상 '안녕한 척' 하지 않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물결처럼 번지는 대자보 속 고민과 아픈 마음, <오마이뉴스>가 전합니다. [편집자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당연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명, 인권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저는 그게 생각만큼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평생 살아온 터전을 지키겠다는 어르신들의 소망은 무시당하고, 짓밟혀도 될만한 일이고, 자신들의 일터와 관련된 사항에 '옳지 않다'라는 가치판단을 내리고, 정부와 회사의 결정에 반대하는 것은 '불법'이라 매도당하고 해고당해도 될 만한 일입니다.

비단 밀양과 KTX뿐만이 아닙니다. 올 한 해에도 쌍용, 삼성 등등의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삶을 잃었지만 그것에 관해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반응이 더 '당연한'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안녕한 체 하고 사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저는 지금 최선을 다해 안녕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너무나도 안녕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안녕하지가 않습니다. 정대 후문을 지나칠 때 마다 늘어나는 대자보 앞에서 발이 멈추고, 괜히 타임라인의 수많은 '안녕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찾아 읽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고,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이 한숨과 같이 허공에 흩어지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의심과 불안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나는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은데 이상하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괜찮지가 않습니다.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금 안녕하지 못합니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안녕해야만 합니다. 저에게는 풀어야 할 녹음파일들이 있고, 정리 해야 할 필기가 있고, 읽어야 할 교재들과 1000장에 가까운 PPT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말고사를 봐야 하고, 좋은 학점을 받아 부모님이 내 주신 등록금 값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다음학기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부담을 줄여보려 장학금을 받을 길이 없나, 어디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나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비단 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벅차, 그 외의 일들에 대해서는 안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안녕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살아남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게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한국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습니다. 안녕한 체 하는 우리가 정말로 안녕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는 살아남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다 같이 진실로 안녕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애 첫 대자보를 씁니다. 뭘 할 수 있을지,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괜찮지 않다고, 안녕하지 못하다고 소리라도 질러보려고 합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들은 나에게 있어 남이 아니라고 고백하려 합니다. 안녕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저와 같은 이들에게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안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심리 12 예은


태그:#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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