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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12일)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 소식을 듣고, 어수선한 마음을 잠재우지 못해 씁니다. 고려대에서도, 한양대에서도, 중앙대에서도, 서울대에서도 안녕하지 못 하다는데 우리 숙명인들은 얼마나 안녕한지 궁금합니다. 안녕들... 하신가요?

저는 졸업을 앞둔 08학번입니다. 조용히 졸업이나 하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안녕하지 못해서, 라고 답하겠습니다. 조용히 기말고사 치고 토익 성적표 내고 학교를 떠나면 그만일 텐데, 뭐 하러 유난을 떠느냐. 그런데 '뭐 하러 유난을 떠느냐'는 문장에 생각이 미치자, 반드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이 '유난'이 된 세상. 재학생의 정당한 학내 언론활동에 정보과 형사가 개입하는 세상에도 안녕하게 지낼만큼 속 편한 성격은 아니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숙명여대 정보방송학 전공'이라고 찍혀 나올 제 졸업장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철도민영화에 반대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그저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나, 숭고한 '먹고사니즘' 앞에서 비굴하게 침묵했던 나, 하루하루 밥만 잘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한가로이 소설책도 읽으면서 안녕하게도 잘만 살고 있던 내가 미안해져서 쓰기로 했습니다. 내일은 차라리 안녕하지 않기를.

수상한 시절에 분노하기보다는 눈치를 보는데 익숙해진 우리, 안녕들 하신가요? 이것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철도민영화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7000여 명이 하루아침에 직위해제 당하는 게 당연하고 정당해지면, 청년실업 500만 시대에 오늘도 자소서를 쓰고 있는 우리의 친구, 선배 그리고 곧 나 자신이 88만 원짜리 비정규직 인생을 사는 것이 당연하고 정당해집니다.

이것은 일부 철도노동자와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고 방학 때면 '내일로' 여행도 떠나며 무엇보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우리 자신들의 문제입니다. 대학평가 순위가 떨어져 취업에 불리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그런 우리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오랜만에 마주친 친구에게 서로 안부 묻기조차 조심스러워진 우리의 문제입니다.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안녕들 하시느냐고. 정말 안녕들 하시냐고. 이 미친 세상에.
졸업을 앞두고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랫말이 유난히 와닿는 요즘.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곧 졸업하지만, 우리 모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고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정보방송학과 08학번 박솔희
wearenotokay2013@gmail.com
이메일, 댓글 등을 통한 자유로운 의견, 비판, 응원 등 환영합니다. 16일(월요일) 오전 학교 게시판에도 붙일 예정입니다.


태그:#대자보, #숙명여대, #철도민영화반대, #안녕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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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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