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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한 고려대 학생이 던진 물음에 조용했던 대학가가 술렁입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종북몰이' 광풍에도 조용하던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안녕하지 못하다'고 응답합니다. 더 이상 '안녕한 척' 하지 않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물결처럼 번지는 대자보 속 고민과 아픈 마음, <오마이뉴스>가 전합니다. [편집자말]
정치적인 공간의 복원을 염원하며.

안녕하신가요? 27대 국어국문학과 학생회장 08학번 표석입니다. 이제 연말이고,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기말고사가 코앞입니다. 저처럼 과제를 하지 않아 다급해진 사람도, 느긋하게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새내기 여러분들은 이제 헌내기가 된다는 상실감과 바람처럼 흘러간 대학생활의 허무함, 내년은 잘해봐야지 하는 다짐과 후배들을 맞는다는 두근거림. 만감이 교차하는 시기입니다.

이 공간을 빌어 자축적인 퇴임사를 겸하여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테고,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실 테지만, 저는 학내 커뮤니티에서 운동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학교 공인 운동권 중의 한 명이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2010년 당시 문과대학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학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올라가 고공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학교에서는 유기정학을, 검찰에서는 기소유예를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남은 임기를 마치고 도망치듯이 군대로 향했습니다.

군대에 가서는 운이 좋았는지 대한민국 1%만 간다는 GOP 근무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근무 투입 직전에 기무대에서 신원 상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바로 뒤에 있는 이른바 FEBA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 내 공식적인 전출 사유는 '우울증'으로 명시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우울증으로 대접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가끔 기무대에서 소대장과 분대장에게 '건강'하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고 후에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남들도 다 한다는 제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질문과 충고들을 들었습니다. '후회하지는 않느냐',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겠느냐', '앞으로는 너 자신도 생각하면서 적당히 해라'는 말들에서부터 '꼴통, 좌빨, 운동권, 학교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에 '중앙대 운동권을 회생 불가능하게 작살냈다'는 평까지 많은 말들을 들었습니다.

먼저,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저는 후회합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래에 타격을 미칠 줄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성찰하고, 반성하며, 발전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자신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세계의 전부인 사람이거나,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저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신을 농락하여 영원히 돌을 산에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는 올리는 행위의 결과를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돌을 다시 올렸습니다. 학교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앞에서, 저희들이 했던 행동은 청룡탕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에 불과했는지 모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조차 사라지는 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애초에 인류의 역사에 비한다면, 이 우주의 영원에 비한다면,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반짝임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순간, 찰나를 위해 우리들은 사람을 만나고, 행복을 기원하며, 조금씩 바동거리며, 인생을 지탱해갑니다.

'연대와 공존'이 아니라 '효율과 수익'이 유일한 진리로 작동하는 오늘날, 타인은 언제든지 발전을 위해 '희생'되어야할 객체로 존재합니다. 학점을 위해 타인이 희생되어야 하고, 대학을 위해 학과는 희생되어야 하고, 기업을 위해 노동자는 희생되어야 하고, 국가를 위해 국민은 희생되어야 합니다. 희생으로 쌓여진 바벨탑을 만들어낸 우리는 타인의 비명을 이해하는 방법을, 공감하는 언어를 잊어버렸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두고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나'에게 타인은 말을 할 수 없는, 박제된 인형으로서만 기능합니다. 안성 캠퍼스 학생들이 구조조정 되는 것은 불쌍하지만, 서울로 올라와서는 안 되고, 학교 청소노동자는 동정하지만, 노동조합 활동하는 것은 민폐가 되고, 제 3세계의 기아는 가여워하지만, 관광지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은 짜증이 납니다.

타인에 대한 무감증의 해법으로 강렬한 경험이 유효하던 시대는 지났을지 모릅니다. 기존의 운동권식 연대와 해법이 지금의 지향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33년 전 청계천에서 죽어간 한 노동자처럼, 죽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명씩 탄압받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무수한 '나'들은 서로의 죽음에, 서로의 배제에, 조금씩 천천히 눈을 감고 있습니다.

이제 2013년이 마무리되고, 2014년이 다가 옵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재에 발을 딛고 살아갑니다. 미래는 자연히 도래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기억의 대지 위에 매 순간 현재로서 새롭게 창조되어 갑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의 재구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유하는 타임라인이 아닌, 인식의 좌표와 실체적 지형 속에서, 다시금 '우리'의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정치적인 공간의 복원을 염원합니다.

제 27대 국어국문학과 학생회장 08학번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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