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기자회견 12회 부산영화제를 결산하고 있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 결산 기자회견 12회 부산영화제를 결산하고 있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 성하훈


영화축제인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영화다. 거장 감독이나 발전가능성 많은 감독들이 공들여만든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먼저 감상할 수 있고, 정치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보기 힘든 영화를 있는 원본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영화제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수준높은 작품들을 초청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영화제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올해 1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성공한 영화제로 평가된다.약간의 차로  2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했지만 역대 최다 관객이 몰렸고, 주옥같은 작품들과 거장들이 부산에 왔으며, 영화가 고픈 관객들은 올해도 1시간 거리 상영관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히 오가며 영화 욕구를 채웠기 때문이다.

전작 9편 모두 모은 '에드워드 양 회고전' 돋보여

특히 김지석 수석 프래그래머가 많은 애정을 보인 '에드워드 양' 회고전은 부산을 사랑했던 한 영화인에 대한 추모와 아쉬움의 표현이었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산영화제의 위상은 다른 어떤 경쟁영화제들보다 돋보였다.

그의 영화는 판권이 각각 다른 곳에 있어 한꺼번에 상영하기 어려웠는데, 각고의 노력끝에 부산영화제가 전작 9편 모두를 상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쿄와 대만 등 회고전을 준비하는 다른 영화제들이 5편 정도만 상영할 뿐 전 작품을 온전히 상영하지 못하는 것에 비할 때, 부산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12년동안 부산영화제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프로그래머들이 오랜 시간 구축해 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했다. 검증된 영화제의 명성있는 프로그래머들에게 세계 영화인들이 아낌없이 호응한 것이다.

피프 파빌리온 부산영화제 기간동안 불을 밝혀온 영화제 본부

▲ 피프 파빌리온 부산영화제 기간동안 불을 밝혀온 영화제 본부 ⓒ 성하훈


외국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으며, 안팎으로 치솟은 위상은 "부산에 출품하고 싶으면 '월드 프리미어'로 가져오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번에 부산영화제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국제영화제들로부터 원망을 들었던 이유는 일부 감독들이 부산영화제의 '프리미어' 상영 요구에 다른 영화제의 초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부산을 우선시하는 감독들의 변화는 영화제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며, 한편으로 12년의 연륜속에 옥석을 가려내 부산으로 가져오는 프로그래머의 섬세한 손길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경쟁 부분인 뉴커런츠 작품들이 전부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것은 영화제의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역대 관객중 최다인원을 자랑하며 관객이 몰리는 영화제로서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0회 때 19만여명이 참석한 이래 20만명에 근접하는 제일 많은 수의 관객들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이다. 1회 때 18만이 찾으며 영화계를 놀라게 한 관객들의 부산행은 올해도 남포동과 해운대를 가득 메우며 영화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들에게 날씨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실효성 없는 셔틀버스 등 관객 배려 아쉬워

해운대 피프거리 피프 빌리지 옆 피프거리. 늦은 밤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오고가며 영화의 열정을 붙태웠다.

▲ 해운대 피프거리 피프 빌리지 옆 피프거리. 늦은 밤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오고가며 영화의 열정을 붙태웠다. ⓒ 성하훈


그러나, 이런 외형적 성과 이면으로 운영 측면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은 부산영화제가 앞으로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우선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에 대한 배려 문제다. 상영관이 남포동으로 몰려있던 이전에 비해 중심이 해운대로 옮겨가면서 관객들의 동선이 길어지는 것은 전용관이 마련돼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상영관으로 추가된 대연동 CGV는 관객들을 어렵게 만든 처사였다.

4회 때 주상영관 외에 민락동 MBC홀을 상영관으로 추가해 관객들의 동선을 어렵게 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CGV의 추가로 관객 동선이 남포동-대연동-해운대-장산-수영만 등으로 이어져 어려움을 안겨줬다. 관객의 지지로 성장한 영화제가 관객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내놓은 셔틀버스는 그저 형식적으로만 운영돼 관객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제공하지 못했다. 상영시간을 전혀 못 맞추고 남포동-대연동 구간, 대연동-해운대 구간만을 오가는 버스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관객숙소도 이용객이 줄면서 전년에 비해 축소됐으나 시설이 좋아 사람들이 몰리는 해운대 아르피나의 경우는 주로 자원봉사자들이나 일부 게스트들의 영화제 숙소로 우선 배정되며 관객 숙소란 명칭을 무색케 했다.

"작품으로만 관객들을 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피프 폐인의 말을 영화제는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운영 경험 살릴 수 있는 인력 양성 고민해야

 12회 부산국제영화제 휘장

12회 부산국제영화제 휘장 ⓒ 성하훈



갈라 프리젠테이션 <M>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소동이나 엔니오 모리꼬네 의전 문제는 영화제 측이 나름대로 해명하고 사과한 사안이지만 근본적인 시스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안목의 대처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베테랑 스태프의 말대로 "문제의 중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기 스태프와 자원봉사자 위주의 운영은 짧은 경륜 탓에 대처능력이 떨어지며, 임기응변조차 제대로 못하는 어설픈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10년 가까이 영화제에서 일해온 이 관계자는 "영화제 기간 내내 자원봉사자나 단기 스태프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나만 쳐다보는지라 꼼짝할 수 없었다"며 "경험을 통해 얻어진 노하우가 없으면 헤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소 5년 이상 영화제 일을 해봐야 상황 대처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 수준만큼 운영 수준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영화제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 경력자들에 대한 인력풀 관리, 다른 영화제에 파견을 통한 교육, 전임 스태프의 점차적 증대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자원봉사자 선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쟁률이 치열하기에 여러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해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선발하지만, 짧은 기간 3~4회의 교육으로는 깊이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경험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 같다. 해마다 지적되는 자원봉사자의 자질 문제 등은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시스템 구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해운대 상영관 임시매표소  현매표를 구하기 위해 긴줄을 형성하고 있는 관객들

▲ 해운대 상영관 임시매표소 현매표를 구하기 위해 긴줄을 형성하고 있는 관객들 ⓒ 성하훈


해마다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 예매시스템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안정되면서 최다 관객 동원의 원동력이 된 이면에는, 축적된 노하우로 문제점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 베테랑 스태프의 노력이 존재했다. 예매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CJ시스템즈나 네이버·부산은행·GS25 등이 나름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애썼지만, 관객의 요구사항을 명확히 알고 있던 스태프가 이를 조정해내며 7년 동안 관객을 고생시킨 예매시스템을 안정화시킨 것이다.

이는 경험있는 스태프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으로, 영화제 인력 양성을 위한 고민을 각각 개최시기가 차이나는 부천영화제나 전주영화제 등과 함께 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티켓예매의 경우  예매시스템이 안정됐으나 현매표가 늘어나며 줄서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는데, 22시간 동안 줄 서 있는 관객도 생겨나는 등 표 구하기 힘든 영화제의 전통은 올해도 이어졌다. 2회 때 야외상영장에서 추가 상영된 <하나비>처럼 인기작품에 대한 특별상영 형식의 추가 상영도 영화제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정치인 영화제 관여 '물 흐려'

한편,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느닷없이 등장한 대선후보들은 영화제의 정치적 독립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다.

영화나 영화제를 위해서 애쓴 공로가 있고 영상산업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화제의 귀빈으로서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지만, 영화제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단지 대선후보라는 이유만으로 개막식장과 개막파티 장소를 휘젓고 다닌 일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그것을 용인한 영화제 조직위의 행동탓에 대선후보들의 무례는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의전 실수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안팎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부산시와 영화제 조직위는 잘 나가던 부천영화제가 한 순간에 무너진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새겨봐야 할 것 같다. 시장의 지나친 간섭이 잘 나가던 영화제를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영화제 초창기 부산시와 영화제 조직위 간에 세워진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한다'는 기조가 흐려지면서 발생한 이번 문제는, 잘못된 흐름으로 이어질 경우 영화제의 위상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또다시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양쪽이 다시금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할 것 같다.

불청객 이명박 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마치고 '영화인의 밤' 행사에 나타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 불청객 이명박 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마치고 '영화인의 밤' 행사에 나타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 최윤석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을 찾은 관객들은 영화제 전반에 대해 아낌없는 비판과 조언의  목소리를 냈다.

▲영화제를 더 크게 만들기보다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아시아 영화 중심의 기존 색깔을 더욱 살려내며 ▲국제영화제에 걸맞게 외국인 관객들의 표 구하기를 배려해주고 ▲관객배려를 위해 더 노력해달라는 등, 그들의 목소리에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쓴소리를 많이 하는 관객일수록 부산국제영화제에 무한한 애정을 가진 일명 '피프폐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을 향한 영화제측의 관심이 커져야 할 것 같다. 1년에 한번뿐인 9일간의 명절을 보내며 던지는 한마디는 영화제 성장의 자양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4대 영화제의 밑거름은 관객

부산영화제 홈페이지 갈무리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치인들 행태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누리꾼의 글.

▲ 부산영화제 홈페이지 갈무리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치인들 행태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누리꾼의 글. ⓒ 성하훈



1회 때 어수룩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2회부터는 조금씩 성장의 기미를 보였고, 3회를 지나 5회·7회를 넘기며 '아시아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게 발전했다. 그리고 10회를 마칠 즈음 '아시아 최고 최대의 영화제'란 수식어는 당연한 말이 돼 버렸다.

12회가 끝나며 '세계 10대 영화제 중 하나'라는 수식어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부산국제영화제는 커 나가고 있다. 아시안필름마켓·아시아연기자네트워크·아시아 영화펀드·영화투자회사 발콘의 설립 등 '경계를 넘어서' 산업적인 측면을 강화하는 앞으로의 계획은 칸·베를린·베니스에 이은 세계 4대 영화제의 야심을 갖고 있는 부산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부산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영화제의 중심으로 성장한 바탕이 관객이라는 사실이다. 허름한 극장, 빈번한 상영사고, 엉성한 운영 등 초창기의 어설픈 영화제를 성장시킨 것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상영관을 가득 메우며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만든 젊은 관객들이었고, 그들은 부산영화제가 자랑하는 힘이었다.

전용관 문제를 비롯해 앞으로 부산영화제가 해결해 나가야 할 첩첩산중의 문제들. 그 해답이 '관객'에게 있다는 사실을 부산영화제가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뉴커런츠 상에 <궤도> <주머니 속의 꽃> <원더풀 타운>
12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 운영미숙 사과

결산 기자회견 뉴커런츠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이란의 다리우스 메흐르지 감독

▲ 결산 기자회견 뉴커런츠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이란의 다리우스 메흐르지 감독 ⓒ 성하훈


12회 부산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분인 뉴커런츠 상에 중국 김광호 감독의 <궤도>와 말레이시아 셍 탓 리우 감독 <주머니 속의 꽃>, 태국 아딧야 아사랏 감독 <원더풀 타운>이 각각 선정됐다. 아시아 신인감독들 중에서 선정하는 뉴커런츠 수상작에는 3만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12일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뉴커런츠를 비롯한 각 부문 수상자와 총 관객수 등 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결산내용을 발표했다. 전체 관객수는 19만8603명으로 역대 최다의 인원이 참가해 종전 최다관객수였던 10회 때 19만2970명을  넘어섰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비가 오는 악천후 속에서도 부산영화제에 대한 관객의 성원이 컸다"며 "좋은 프로그램과 티켓 시스템 개편 등"을 관객수가 증가한 주 요인으로 꼽았다. 아시안 필름마켓에 대해서도 "김기덕 감독의 <숨>, 왕 취엔안 감독의 <투야의 결혼>, 김지윤 감독의 <장화홍련>, 마이클 강 감독의 <웨스턴 32번가>가 판매되며, 전반적으로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논란이 됐던 엔니오 모리꼬네 의전 문제에 대해선 해명자료를 통해 "일부 언론의 보도만큼 의전이 소홀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으나 "어찌 됐든 개막식 의전에 문제가 있었음은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아울러 "<M> 기자회견 진행시의 준비 미숙과 우천으로 인한 행사 차질 및 파빌리온 누수 문제로 인해 관객들이 불편을 겪은 데 대해서도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번 부산영화제 주요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뉴 커런츠 상
- 부산은행 어워드  <궤도> 김광호 감독
- 빈폴 뉴 커런츠 어워드  <주머니 속의 꽃> 셍 탓 리우 감독, <원더풀 타운> 아딧야 아사랏 감독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FIPRESCI)
<빨간 콤바인> 차이 샹준 감독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NETPAC)
<처음 만난 사람들> 김동현 감독, <검은 땅의 소녀와> 전수일 감독

●KNN 영화상(관객상)
<주머니 속의 꽃> 셍 탓 리우 감독

●선재상
<웅이 이야기> 이하송 감독, <영향 아래 있는 남자> 정주리 감독

●운파상
<할매꽃> 문정현 감독

●한국영화공로상
사브리나 바라체티(우디네 극동영화제 집행위원장)
장 프랑수아 로제(프랑스 국립영화박물관 수석프로그래머)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故 에드워드 양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에드워드양 궤도 풍년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