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축구의 시대는 끝났는가. 한때 세계 축구의 최강을 자부하던 브라질에게 안방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은 황금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최악의 대회로 기억될 듯하다. 

브라질은 13일 오전 5시(한국시각)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데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3~4위전 경기에서 0-3으로 패했다.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1-7로 대패하며 우승이 좌절된 브라질은 마지막 경기에서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공수전반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하며 또 충격적인 완패를 당했다.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주장 티아구 실바가 복귀했지만 브라질은 여전히 지난 경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구세주로 믿었던 실바가 오히려 대패에 원흉이 됐다. 

주장 완장을 달고 선발 출장한 실바는 전반 1분 만에 네덜란드의 아르연 로번의 돌파를 저지하다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파울을 범하며 PK를 헌납했다. 네덜란드는 로빈 판 페르시가 침착하게 PK골을 성공시키며 일찌감치 앞서나갔다.

전반 17분에도 실바와 수비수들이 보이지 않는 실책성 플레이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공격 상황에서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다비드 루이스가 걷어냈으나, 공은 하필이면 후방에서 쇄도한 네덜란드 딜레이 블린트의 발 앞에 떨어졌다. 블린트가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완벽한 노마크로 슛을 때릴 동안 주변에서 블린트를 저지할 수 있는 브라질 선수들은 아무도 없었다. 수비라인과 미드필더 라인의 간격 유지와 커버플레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독일전에서 소나기골을 먹을 당시 보여준 엉성한 수비 조직력을 그대로 반복한 장면이었다.

사기가 완전히 꺾인 브라질은 사실상 추격 의지를 잃어버렸다. 후반들어 에르나네스와 헐크 등 공격 자원들을 투입하며 변화를 모색했지만 선수만 바뀌었을 뿐 경기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술적인 대처는 찾아볼 수 없었고 무리한 드리블과 의미없는 크로스는 네덜란드의 견고한 수비 앞에 번번이 막히기 일쑤였다.

공을 점유하는 시간만 길 뿐 영양가는 없었다. 특유의 스리백으로 두터운 방어벽을 세운 네덜란드 수비는 브라질의 전진패스를 한발 앞서 차단하며 침착하게 경기를 주도해 나갔다. 수비를 두텁게 하다가도 빈틈이 생기면 로번과 판 페르시를 앞세운 매서운 역습으로 여러 차례 브라질의 배후를 파고 들었다.

브라질은 결국 후반 추가 시간에 다시 한 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다릴 얀마트의 크로스를 조르지오 바이날둠이 3번째 골로 마무리하면서 쐐기를 박았다. 승리를 확신한 네덜란드는 이미 의욕을 잃어버린 브라질을 상대로 골키퍼까지 교체하는 여유를 선보이며 무너진 개최국의 자존심에대못을 박았다.

삼바축구, 더이상 세계 최강 아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2년만이자 통산 6번째 우승을 노렸던 브라질의 꿈은 단 두 경기만에 산산조각으로 무너졌다. 8강전에서 척추부상으로 아웃된 네이마르의 공백만을 탓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역부족임을 확인한 대회였다.

이는 브라질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와 무관하지않다. 그동안 삼바축구하면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떠올렸던 이미지는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스타군단이다. 펠레,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등 이름만으로 상대를 떨게하는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다. 각 포지션에서 세계축구 올스타 명단으로도 손색없는 두터운 선수층을 보유했고, 이들은 경기가 잘 안풀릴 때 개인능력만으로도 흐름을 충분히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전부터 브라질은 더 이상 이름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 스페인, 아르헨티나 같은 팀들이 선수구성면에서는 브라질보다 더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브라질 대표팀에서 다른 우승후보급 팀에 가도 주전을 장담할 만한 선수는 네이마르와 실바, 루이스 등 몇 명에 불과했다. 몇몇 선수들은 이미 전성기가 지났거나 자국에서도 월드컵 수준의 경쟁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브라질은 이번 대회 4강까지 올랐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온전히 우승후보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줬다고 보기 어렵다. 8강전까지 브라질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들을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조별리그 최종전인 카메룬전 대승을 제외하면 모두 종반까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승부를 펼쳤다.

반면 진정한 우승후보급 팀이었던 독일과 네덜란드를 상대로는 2경기에서만 10골을 내주는 극심한 부진 끝에 자멸했다. 네이마르와 실바의 공백을 감안해도 명백한 실력차에 가까웠다.

브라질은 최근 월드컵에서 유럽 강호를 상대로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12년간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고배를 안긴 것은 모두 유럽팀이었다. 이는 그만큼 유럽팀들이 브라질의 축구스타일과 선수들에 대한 공략법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팀이 된 브라질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단조로운 전술과 선수구성의 실패도 브라질의 몰락을 부채질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 대회 브라질의 공격진은 네이마르를 제외하면 역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대회 브라질은 11골을 뽑아냈지만 최전방 공격수가 기록한 득점은 고작 1골뿐이었다. 그나마 조별리그에서 크로아티아-카메룬에게 7골을 몰아넣었지만 이외에는 대회 내내 득점력 빈곤에 시달렸다.

측면 공격수에 가까운 네이마르만이 홀로 4골 2도움을 뽑으며 분전했을 뿐 헐크, 프레드, 조 등은 그야말로 무기력했다. 오스카, 하미레스, 파올리뉴, 구스타보, 페르난지뉴 등으로 구성된 미드필더진도 무게감이 크게 떨어졌다. 네이마르도 아직 완성형이 아닌 유망주에 가까운 선수임을 감안했을때 그의 부재나 부진을 대비한 플랜 B가 없다는 것은 브라질의 최대 불안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려한 대로 브라질은 네이마르가 빠진 준결승부터 가파르게 몰락했다.

스콜라리 감독은 이번 대회 줄곧 4-3-3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스페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브라질에게는 독이 됐다. 브라질의 선수구성과 전술은 당시 컨페드컵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던 반면, 이미 상대팀들은 강력한 우승 후보인 전력이 완전히 노출된 브라질을 상대로 충분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12년 전 브라질의 마지막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지만 그의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단조로운 선수 기용은 오히려 이번 대회에서는 독이 됐다. 호나우지뉴, 카카, 루카스, 모우라 등은 이번 대회 네이마르의 대체자 혹은 조커가 될 수 있는 자원들을 대거 제외했다. 주전 경쟁이 사라진 대표팀의 경기력은 단조로웠고,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은 탓에 경험이 부족한 일부 선수들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자연히 몇몇 스타들에게 의존도가 심화된 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스리백의 부활과 점유율 축구의 쇠락 등 이번 월드컵의 전술적 트렌드인 빠른 속공과 효율성에 대하여 브라질은 전혀 시대적 추세를 따라잡지 못한 낡은 팀이 되어있었다. 대형스타의 부재를 조직력으로 만회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브라질 고유의 색깔마저 잃어버린 이도저도 아닌 팀이 된 것이다.

정신력도 기대 이하였다. 브라질 축구는 1950년 마리카낭의 비극이 남긴 트라우마가 워낙 강한데다, 개막 전까지 월드컵 개최에 부정적인 자국내 여론으로 인하여 우승에 대한 부담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었다. 과거에 비하여 전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대표팀에 대한 높은 기대는 동기부여보다는 오히려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명목상의 주장(실바)과 에이스(네이마르)는 있었지만 어려울 때 그라운드에서 동료들을 다잡아 줄 정신적인 지주가 없었다. 정작 팀이 가장 위기였던 순간에 이들은 그라운드에 없었다. 결국 브라질 대표팀은 언제든 태풍이 한번만 몰아치면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모래성에 불과했다.

브라질 축구는 이번 대회의 실패를 계기로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대표팀의 초라한 몰락으로 월드컵 무용론을 둘러싼 사회 갈등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여서 이래저래 브라질에게는 아픔만 남긴 월드컵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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