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독하게도 골이 터지지 않았다. 경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처럼 네덜란드의 일방적인 공격이 경기 내내 이어졌지만 상대 문지기 케일로르 나바스의 슈퍼 세이브도 모자라 골대 불운까지 세 차례나 겹쳤다. 정말 안 되는 날이었다. 아니, 뭐가 씐 날인 듯했다. 결국 이들은 11미터 앞에서 잔인한 마지막 승부를 펼쳐야 했다.

루이스 반 할 감독이 이끌고 있는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6일 새벽 5시 브라질 사우바도르에 있는 아레나 폰테 노바에서 열린 2014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8강 코스타리카와의 맞대결에서 연장전까지 득점 없이 승부차기를 펼쳤는데, 바꿔 들여보낸 문지기 팀 크룰의 선방 두 개로 4-3 승리를 거두고 아르헨티나와 4강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케일로르 나바스'의 슈퍼 세이브

네덜란드는 21분에 빠르고 정확한 역습 패스로 코스타리카 골문을 위협했다. 디르크 카윗이 오른쪽 측면에서 낮게 이어준 패스가 적절했는데 로빈 판 페르시의 왼발 슛이 아쉽게도 상대 문지기 케일로르 나바스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고 말았다. 역시 나바스는 이번 대회 최고의 문지기 중 하나였다.

케일로르 나바스의 슈퍼 세이브는 28분에도 이어졌다. 로빈 판 페르시의 역습 패스가 왼쪽 측면으로 돌아들어가는 멤피스 데파이에게 이어져 낮게 깔리는 왼발 슛이 터졌지만 각도를 침착하게 잡은 나바스가 오른발을 내뻗어 잘 막아냈다.

나바스의 슈퍼 세이브는 39분에 로번이 얻은 직접 프리킥 세트 피스에서 절정을 보였다. 스네이더르가 기습적으로 감아찬 공을 향해 오른쪽으로 날아오른 나바스가 멋지게 쳐낸 것이다. 3분 뒤 로빈 판 페르시의 벌칙구역 안 드리블 순간에도 과감하게 달려나와 공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이 경기도 이견 없이 MOM(맨 오브 더 매치)를 케일로르 나바스로 결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한 골 승부로 이어지는 후반전에도 나바스의 순발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84분, 판 페르시가 오른쪽에서 찬 회심의 슛까지도 각도를 기막히게 잡아내 막아낸 것이다.

그의 놀라운 방어 능력은 연장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94분, 아르연 로번이 왼발로 차 올린 오른쪽 코너킥을 수비수 론 블라르가 방향을 바꾸는 헤더로 골문 왼쪽 구석을 노렸는데 여기서도 나바스는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막아냈다. 이 정도라면 전설적인 문지기 야신의 재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경기였다.

골대 불운 이겨낸 네덜란드, 새 문지기 덕분에 4강

사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축구장에서 가장 찜찜한 일들 때문에 승부차기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었다. 그것은 '골대 불운'이었다. 한 번도 모자라 세 번이나 코스타리카 골문을 뒤흔들었으니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마의 시간대라 하는 80분 이후에 모두 벌어진 일이어서 네덜란드 팬들 입장에서는 더욱 기가막혔다. 그 중에 무려 두 차례나 스네이더르에게 집중되었으니 그는 더욱 마음을 가다듬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82분, 아르연 로번이 얻어낸 왼쪽 대각선 방향의 직접 프리킥 기회에서 26미터 짜리 직접 프리킥을 시도한 인물은 오른발 킥이 정확하기로 소문난 스네이더르였다. 하지만 그의 오른발 안쪽을 떠난 공은 케일로르 나바스가 지키고 있는 코스타리카 골문 왼쪽 기둥을 강하게 때리고 말았다.

스네이더르는 연장전 후반전도 거의 끝나 가는 119분에 또 한 번 오른발 감아차기 중거리슛으로 짜릿한 결승골을 노렸다. 하지만 이 공도 나바스를 넘어 크로스바를 때리고 말았다. 정말 운이 안 따르는 듯 보였다.

스네이더르 말고도 후반전 추가 시간(90+3분)에는 판 페르시에게 결정적인 득점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왼발로 찬 공은 문지기도 없이 수비수 테헤다의 몸에 맞고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왔다. 코스타리카의 케일로르 나바스 말고도 네덜란드 선수들의 결정적인 슛을 세 차례나 골대가 막아낸 셈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벤치를 지킨 루이스 반 할 감독은 누구보다 냉정했다. 연장전도 거의 끝날 때까지 선수 교체 카드 한 장을 꼭꼭 숨겨놓았다가 후보 문지기 팀 크룰을 위해 쓴 것이다. 승부차기의 마지막 승부를 정말로 예상한 것처럼 그랬다.

연장전에서 코스타리카의 교체 선수 우레냐의 결정적인 오른발 돌려차기를 기막히게 막아낸 실러선 대신 들어와 11미터 룰렛 게임에 참가한 팀 크룰은 마치 준비한 것처럼 교묘한 신경전을 코스타리카 선수들 앞에서 펼칠 정도로 집요했다.

결국 팀 크룰은 코스타리카의 두 번째 키커 브라이언 루이스와 마지막 키커 우마냐의 킥을 모두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쳐냈다. 마치 미리 그 방향을 알고 있었다는 듯 특유의 긴 팔을 내뻗어 기막히게 막아낸 것이다. 반면에 1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서 네덜란드 특급 공격수들의 슛들을 다 막아냈던 케일로르 나바스는 승부차기에서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오는 10일 새벽 5시(우리 시각), 아레나 디 상 파울루에서 벨기에를 물리치고 준결승전에 올라온 아르헨티나와 결승전 진출권을 놓고 명승부를 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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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4 FIFA 월드컵 8강 결과(6일 새벽 5시, 아레나 폰테 노바-사우바도르)

★ 네덜란드 0-0(연장전 30분 후 승부차기 4-3) 코스타리카
- 승부차기 결과(왼쪽 코스타리카 먼저 킥)
1) 보르헤스 오른발 슛 골 / 판 페르시 왼발 슛 골
2) 브라이언 루이스 왼발 슛-팀 크룰 왼쪽으로 몸날려 선방 / 아르연 로번 왼발 슛 골
3) 곤살레스 오른발 슛 골 / 스네이더르 오른발 슛 골
4) 볼라뇨스 오른발 슛 골 / 디르크 카윗 오른발 슛 골
5) 우마냐 오른발 슛-팀 크룰 왼쪽으로 몸날려 선방, 경기 종료

◎ 네덜란드 선수들
FW : 멤피스 데파이(76분↔제레마인 렌스), 로빈 판 페르시, 아르연 로번
MF : 블린트, 스네이더르, 바이날덤, 디르크 카윗
DF : 마르틴스 인디(106분↔클라스 얀 훈텔라르), 블라르, 데 브라이
GK : 야스퍼 실러선(120+1분↔팀 크룰)

◎ 코스타리카 선수들
FW : 크리스티안 볼라뇨스, 호엘 캠벨(66분↔마르코 우레냐), 브라이언 루이스
MF : 디아스, 보르헤스, 테헤다(97분↔호세 쿠베로), 크리스티안 감보아(79분↔데이브 미라이)
DF : 우마냐, 곤살레스, 아코스타
GK : 케일로르 나바스

- 관중 : 51,179명 / 주심 : 라브샨 이르마토프(우즈베키스탄)
- 경고 : 후니오르 디아스(37분), 우마냐(51분), 마르틴스 인디(64분), 곤잘레스(81분), 아코스타(107분), 얀 훈텔라르(111분)

◇ 준결승 일정
☆ 아르헨티나 - 네덜란드(10일 새벽 5시, 아레나 디 상 파울루)
☆ 브라질 - 독일(9일 새벽 5시, 에스타디우 미네이랑)
축구 월드컵 네덜란드 코스타리카 케일로르 나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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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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