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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시작된 2014 브라질월드컵. 벌써 조별예선이 끝나고 16강 토너먼트가 한창이다. 잠 못 드는 밤 덕분에 내 몸에 쌓인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 매일 무거운 몸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만약 우리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했다면 어땠을까. 경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그런 맛을 느낄 수는 없다. 이번 월드컵에서 러시아, 벨기에, 알제리와 H조에 속했던 한국은 본선 첫 경기인 러시아전에서 이근호의 선제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많은 사람들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원정 16강 진출을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본선 첫 승리 재물로 생각했던 알제리에 4-2로 참패를 당했고,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는 상대가 한 명이 퇴장 당해 수적 우위를 점하고도 1-0으로 패했다.

 

4년을 기다린 월드컵. 하지만 우리의 월드컵은 이렇게 초라하게 막을 내렸고 이제는 남의 나라 골 잔치를 구경하는 신세가 됐다. 새로운 재미가 없을까? 그래서 매일 점심을 같이 먹는 직장 선후배 넷이 머리를 짰다. 내기를 하기로. 우승팀을 맞추는 게임? 너무 식상하다. 그래서 바꿨다. 결승 진출 팀을 예측하는 것으로.

 

스포츠 토토도 아니고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판돈이 오가는 불법도박도 아니다. 건전하다.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는 날, 한국의 16강 탈락을 안주 삼아 시원하게 맥주나 한잔 하자는 목적이다. 앗! 그런데 이걸 어쩌나, 지갑에 돈이 없다.

 

용기를 내 말했다... "여보, 나 2만 원만"

 

퇴근 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도와주는 척하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든 내기 돈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내에게 그냥 달라고 하면 결과는 뻔하다. 지금 우리 형편에 당신이 돈을 그렇게 허투루 쓸 수 있겠느냐며 푸념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내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여보! 나 2만 원만 주면 안 될까?"
"2만 원은 어디에 쓰시려고요?"

"그냥…."

 

나는 초라한 직장인이다. 고등학생·대학생도 아니고 지갑에 2만 원이 없어 아내에게 구걸하는 신세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비자금이라도 만들어 놨다면 집안일을 도울 필요도 없고, 아내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을 텐데…. 아내는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잠시 고민하다 피시 웃으며 흔쾌히 2만 원을 내주며 묻는다.

 

"어느 팀에 걸었어? 당신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지 내기에는 약하잖아."

"음…. 글쎄…. 남들이 다 브라질을 응원해서 난 프랑스하고 아르헨티나에 걸었어."

"왜 하필 프랑스랑 아르헨티나야?"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이왕 할 거면 아무도 안 거는 쪽을 걸어서 크게 먹어야지!"

 

내 선택이 어이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전혀 불가능한 도박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내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그냥 웃는다.

 

"에휴~. 더 이상 내기 그만 하시고 그 돈으로 당신 좋아하는 맥주나 잘 드세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마나 포커와 같이 돈이 오가는 도박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간혹 내기를 한다고 해도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만 원짜리 한 장 거는 게 전부였던 나다. 이번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16강이 시작되자 아내가 변했다

 

그냥 월드컵이 주는 묘미를 즐기고 싶고, 복잡한 일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 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휴식시간을 갖는 게 좋을 뿐이다. 그런데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된 첫날부터 아내가 달라졌다.

 

아침 출근 준비로 인해 부산을 떠는 내게 아내는 새벽에 있었던 경기 결과와 아침 경기 상황을 중계해준다. 16강 토너먼트 첫 경기부터 우승 후보인 브라질과 네덜란드, 독일 등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우승 후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탓에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보, 이번 내기에서 이기면 꼭 나에게 배당금 줘야 해요!"
"엥? 무슨 배당금?"
"내가 당신에게 2만 원을 투자했으니 내기에서 이기면 당연히 배당금을 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뿔싸!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 아침부터 그렇게 경기 상황을 중계해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기에서 이긴다고 해도 아내에게 돌아갈 배당금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비롯한 선후배들이 내기를 한 목적이 뜨거운 여름날 퇴근길에 시원한 맥주 한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보, 배당금 못 줘서 미안해! 그래도 이기면 좋겠지?"


태그:#월드컵, #결승진출팀, #직장인, #생활일기, #배당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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