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군단' 독일은 월드컵 단골 우승후보다. 월드컵 우승만 세 번이나 차지했고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로는 무려 16회 연속 8강 진출이라는 진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독일은 조별리그를 무패로 통과했고 16강에서는 아프리카의 복병 알제리를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는 악전고투 끝에 신승해 다시 한 번 8강에 올랐다.

하지만 영원한 우승후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이번 대회에서 독일의 경기력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 하다는 평가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포르투갈을 4-0으로 대파한 것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답답한 경기내용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독일이 패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도 있었다. 4강에 올랐던 지난 대회에서 압도적인 공격축구로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등을 대파하며 승승장구했던 것과는 천지 차이다.

독일 최대 문제점, 수비와 기동력

현재 독일의 최대 문제점은 수비와 기동력에 있다. 독일 대표팀의 포백 라인은 전문 측면 수비수가 부족하여 중앙수비에 가까운 선수들을 측면으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 풀백들에 비하여 기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독일의 측면 수비수들은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가담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수비시에는 상대의 빠른 역습에 뒷공간을 내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번 월드컵의 트렌드 중 하나가 전방에서 한 번에 이어지는 정교한 패스에 이은 속공이다. 가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과 알제리와의 16강전은 독일의 취약점을 단적으로 증명했다. 가나전에서 2골을 내주는 동안 설리 문타리로부터 시작되는 스루패스 한방에 포백 라인이 한 번에 무너졌다. 발이 느린 독일 수비진은 앙드레 아유와 아시모아 기안 등 발이 빠른 가나 선수들의 침투 플레이에 대응하지 못 했다.

알제리전도 마찬가지였다. 페어 메르테자커-제롬 보아텡의 중앙수비라인은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알제리의 공격에 여러 차례 실수를 남발하며 아찔한 순간을 연출했다. 좌우 측면에 기용된 무스타피와 회베데스도 민첩성에서 문제점을 드러냈고 설상가상으로 무스타피는 부상까지 당했다.

전체적으로 수비수들의 활동폭이 좁다보니 그 부담은 고스란히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에게로 이어진다. 문전을 지키는 것보다 과감하게 앞으로 전진하여 상대의 패스가 아군진영으로 침투하기 전에 미리 태클로 걷어내는 등, 노이어가 사실상 최후방 스위퍼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선방 숫자는 많지 않아도 실질적인 수비에서의 공헌도는 그 이상이다. 노이어 골키퍼의 빠른 판단력과 위치선정이 아니었다면 독일은 더 많은 실점을 허용할 수도 있었다.

수비의 문제는 공격으로까지 이어진다. 포백라인의 커버플레이가 불안하다 보니 공수전환시에도 자신있게 앞으로 전진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 오버래핑의 지원을 받지 못한 공격진은 수적열세에 놓이고, 상대 수비에 고립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후반 조커로 활용하는 노장 클로제를 제외하면 정통 스트라이커 없는 제로톱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느린 경기템포와 공수전환으로 인하여 괴체, 외질, 뮐러로 이어지는 제로톱의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는 세계 최정상급 풀백 자원인 필립 람이 있다. 하지만 뢰브 감독은 최근 람을 중앙 미드필더로 고정 기용하고 있다.

멀티플레이어의 대표주자인 람은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대표팀에서 이미 여러 차례 중앙 미드필더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바 있지만 가장 최적의 포지션은 역시 측면 수비다. 오른쪽과 왼쪽이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뢰브 감독은 람의 전방위 압박과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을 독일 중원 운용의 키로 삼고 있다.

8강에서 만난 프랑스... 진검승부는 지금부터

본래 이 자리의 주전이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몸상태가 썩 좋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토니 크로스나 사미 케디라같은 뛰어난 미드필더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음에도 굳이 람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을 굽히지 않는 뢰브 감독의 고집에 <빌트><키커>지 등 독일의 대표적인 스포츠 언론들도 불만 어린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알제리전에서 시종일관 고전하던 독일이 그나마 경기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기동력이 좋은 측면 공격수로 발이 빠른 안드레 쉬를레를 투입하고, 부상 당한 무스타피를 대신해 필립 람이 오른쪽 측면 수비로 복귀하면서부터였다. 갑작스러운 포지션 변화에도 노련한 람은 무리없이 적응했고 안정된 수비와 오버래핑으로 독일의 플레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필립 람 시프트'가 독일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진검승부는 지금부터다. 8강에서 만나게 될 프랑스는 독일이 이번 대회 들어 지금까지 맞붙게 된 상대 중 가장 강한 팀이다. 정상급 측면 공격수인 프랑크 리베리나 사미르 나스리가 모두 이번 월드컵에서 빠졌음에도, 카림 벤제마, 마티유 발부에나, 올리비에 지루 등으로 구성된 공격진은 빠르고 폭발적이다. 프랑스는 16강까지 4경기에서 10골을 몰아넣는 화력을 과시했다.

독일은 알제리전에서 독감으로 결장했던 마츠 훔멜스가 프랑스전에서 복귀하면 보아텡이 다시 측면수비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높다. 람은 프랑스전에서도 일단 크로스나 슈바인슈타이거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할 전망이다.

뢰브 감독은 알제리전같이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람의 측면수비는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불안한 수비에 대한 위험 부담을 안고서 프랑스전을 넘어서야 하는 뢰브 감독의 뚝심이 이번에도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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