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한국 시각) 오전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7-1로 완패한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스콜라리 감독이 실망해 머리를 감싸고 있는 오스카를 위로하고 있다.

9일(한국 시각) 오전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7-1로 완패한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스콜라리 감독이 실망해 머리를 감싸고 있는 오스카를 위로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월드컵 역사에 남을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개최국이자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안방에서 믿기 힘든 참패를 당했다. 브라질은 9일(한국시간)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펼쳐진 2014년 브라질월드컵 준결승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무려 1-7로 대패하며 무너졌다. 8골은 역대 4강전 사상 최다점수 신기록이다.

자타공인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팀(최다 우승 5회)이자 '축구의 나라'로 손꼽히는 브라질이 그것도 안방에서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게 치욕에 가까운 완패를 당했으니, 브라질 팬들이 받았을 충격은 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 월드컵은 물론이고 브라질의 역대 A매치를 통틀어도 사상 최악의 경기였다. 전반 11분 토마스 뮐러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흔들린 브라질은 이후 전반전에만 미로슬라프 클로제-토니 크로스-사미 케디라에세 연달아 골을 더 허용하며 5-0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브라질은 후반전에 선수교체로 반격에 나섰지만 전반전에 벌어진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오히려 교체투입된 쉬얼레게 2골을 더 허용했다. 브라질의 종료직전 오스카의 만회골로 영패를 면한데 만족해야 했다.

브라질 대패... 네이마르 공백 말고 또 있다

대패의 첫 번째 원인은 역시 공수의 핵이던 네이마르와 티아구 실바의 공백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브라질 선수들의 정신적 붕괴와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판단착오에 있다.

브라질은 콜롬비아와의 8강전에서 에이스 네이마르를 부상으로 잃었다. 이번 대회 홀로 4골 2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하던 네이마르는 콜롬비아전 도중 상대수비수 수니가의 거친 플레이로 척추 부상을 당하며 월드컵의 꿈을 접었다. 실바역시 불필요한 플레이로 옐로카드를 받으며 경고누적으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 불참했다.

헐크-프레드-조 등으로 이어지는 브라질의 공격진은 이번 대회 네이마르를 제외하면 극도의 부진을 거듭했다. 자국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만큼 불필요한 드리블과 부정확한 패스로 공격흐름을 끊기 일쑤였다. 주장 실바의 공백은 단테가 메웠지만 전체적으로 수비라인을 지휘해줄 리더가 없었다.

이날 독일에 허용한 7실점의 공통점은 모두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독일 선수들이 문전에서 자유롭게 패스와 슈팅을 시도할수있는 공간을 너무 쉽게 허용했기 때문이다. 역대 최강이라던 브라질 수비진은 상대 공격수보다 수적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대인방어나 상호 약속된 커버플레이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첫 실점 이후 심리적으로 조급해진 브라질 선수들은 자기 포지션을 이탈하여 개인플레이를 펼치거나 동료를 활용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아군 진영에서 잇단 패스실수를 저지르며 자멸했다.

스콜라리 감독은 이번 최종엔트리 명단을 발표할 때부터 논란을 자아낸 바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주축 선수들의 공백을 대비한 플랜 B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은 브라질은 베스트 라인업이 1~2년전부터 고정되어 큰 변화가 없었다.

스콜라리 감독은 우승에 대한 압박이 큰 이번 대회에서 경험 많은 베테랑 스타가 부족하다는 자국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호나우지뉴, 카카, 루카스 모우라 같은 선수들을 외면했다. 브라질 대표팀이 A매치에서 네이마르와 실바를 모두 제외하고 경기에 나선 경우는 처음이었다. 우려한 대로 대안이 없었던 브라질은 독일을 상대로 그동안 누적되었던 불안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침몰했다. 사실상 두 에이스가 빠진 브라질은 평범한 팀에 불과했다.

7실점과 6골차 패배는 모두 브라질의 역대 A매치 최다 기록을 경신한 숫자다. 브라질은 지금으로부터 94년전인 1920년 남미챔피언십(지금의 코파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에 0-6으로 대패한 바 있으나 당시는 지금처럼 세계축구의 강자로 자리잡기 전이었다. 월드컵 한 경기 최다실점은 종전 월드컵 초창기였던 1938년 프랑스대회 당시 조별리그 폴란드에 5골을 내준 바 있으나 당시는 브라질이 6-5로 승리한 경기였다. 가장 큰 점수차 패배도 1998년 프랑스월드컵 결승전에서 개최국 프랑스에 3골차(0-3)으로 진 것이었다.

독일이 브라질에 남긴 상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일의 베테랑 공격수 클로제는  1-0으로 앞선 전반 23분 토마스 뮐러의 패스를 이어받아 쐐기골이자 이날의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 골은 클로제의 월드컵 통산 16번째 골이자 역대 월드컵 개인 최다득점 신기록을 알리는 골이기도 했다. 종전 기록은 브라질의 레전드 호나우두가 보유하고 있던 15골이었다.

클로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5골을 시작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5골, 2010년 남아공 월드컵 4골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 다시 2골을 추가하며 통산 득점 1위의 자리에 올랐다. 하필이면 호나우두의 모국인 브라질에서 그것도 홈팀을 상대로 대기록을 달성했다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호나우두는 이날 방송해설자로 현장 중계석에서 클로제의 대기록 경신을 지켜봤다.

독일은 지금으로부터 12년전인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2로 패했다. 양팀이 종전 월드컵 본선에서 유일한 만남이었다. 호나우두가 홀로 2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우승을 싹쓸이했고 당시 사령탑이 지금의 스콜라리 감독이었다. 12년 전 당시의 체험했던 멤버들중 지금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은 스콜라리 감독과 클로제 둘뿐이었다. 독일로서는 12년 전의 빚까지 이자를 듬뿍쳐서 제대로 되갚아준 셈이었다.

설욕 꿈꿨던 스콜라리 감독, 흠집을 남기다

스콜라리 감독은 한일월드컵에서 독일을 제물로 브라질의 5번째 우승을 완성하며 축구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후로는 독일을 상대로 재미를 본 기억이 없다.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었던 2006년 독일월드컵과 유로 2008에서 모두 독일의 벽을 넘지 못하고 토너먼트에서 무너졌다. 12년만에 다시 자국대표팀을 맞아 설욕을 꿈꿨던 이번 월드컵에서마저 역사에 남을 참패의 주인공이 되며 이제껏 쌓아온 자신의 화려한 커리어에마저 돌이킬수없는 흠집을 남겼다.

브라질 국민들에게는 1950년 '마라카낭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데자뷔다. 당시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결선리그 최종전에서 우루과이에게 1-2 역전패를 당하며 우승의 꿈이 좌절됐다. 당시 브라질이 받은 국민적 충격은 어마어마하여, 패배에 격분한 팬들이 곳곳에서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당시 경기에 출전했던 브라질 대표선수들은 죄인 취급을 받는 등 극심한 비난여론에 시달렸다. 마라카낭의 비극은 단지 축구를 넘어서 브라질에 엄청난 사회적 후유증을 남긴 트라우마로 회자되고 있다.

이런 속사정 때문에 브라질은 64년만에 다시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 더욱 우승강박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월드컵 개최를 놓고 어려운 경제사정 등으로 인하여 자국내에서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대표팀이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악화된 여론을 무마해왔지만 준결승에서 당한 치욕적인 참패로 브라질 국민들은 오히려 더 큰 상처와 박탈감만을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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