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2월 극장가는 <검사외전>의 판이었다. 2월 한 달 동안 무려 14만회가 넘게 상영된 이 영화는 뚜렷한 경쟁작 없이 관객수, 예매율 1위를 독주했다. <캐롤>, <대니쉬 걸>, <자객 섭은낭>, <스포트라이트> 등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연이어 개봉했지만 <검사외전>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중순 이후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데드풀>,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 디즈니의 장점이 한껏 배어든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등이 개봉해 힘이 빠진 <검사외전>을 제치는데 성공했지만, 이미 황정민과 강동원이 900만 관객을 만난 뒤였다.

한국영화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 지난해 상반기와 달리 지난 두 달은 <히말라야>,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 <검사외전> 등 한국영화의 기세가 드높았다. 할리우드 대작은 3월부터 반격에 나설 조짐이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아카데미 시상식이 <스포트라이트>, <룸> 등 작지만 알찬 영화들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배트맨 대 수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흥행여부에 전 세계 영화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과연 3월 한국 극장가의 승자는 누가 될까? 지금부터 물오름달 기대작 10편을 뽑아본다.

① [설행_눈길을 걷다] 박소담, 이번엔 정순한 수녀 마리아

설행_눈 길을 걷다 포스터

▲ 설행_눈 길을 걷다 포스터 ⓒ 인디플러그


한예리, 김고은과 함께 3대 무쌍여배우로 이름 높은 박소담이 3월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해 <검은 사제들>, <베테랑>, <사도> 등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박소담이 드디어 장편영화 여주인공 자리를 꿰찬 것이다. 2007년작 <열세살, 수아>로 데뷔한 김희정 감독의 <설행_눈길을 걷다>를 통해서다.

<검은 사제들>에서 '악령이 씌운 여고생' 캐릭터를 연기한 박소담은 이번엔 정순한 수녀 마리아가 되어 스스로를 한없이 무너뜨려가는 알콜 중독자를 구원하려 한다.

박소담을 비롯해 김태우의 동생으로 알려진 김태훈, 택이 아부지 최무성 등 조금씩 관객들에 얼굴을 알려가고 있는 유망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3일 개봉.

② [룸] 모두가 탐냈던 실화

룸 포스터

▲ 룸 포스터 ⓒ (주)영화사 빅


7년 간의 감금생활을 이겨내고 탈출에 성공한 오스트리아 소녀 엘리자베스 프리츨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2008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사건이 알려진 후 수많은 소설가와 극작가, 영화감독이 이 이야기를 탐냈다. 소설가 엠마 도노휴가 실화를 각색해 쓴 소설 <룸>은 아마존에서 무려 36주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기도 했다. 엠마 도노휴는 영화의 각색에도 참여했다.

주연을 맡은 브리 라슨은 지난달 29일 치러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 한 편으로 골든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한 그녀의 연기가 어떠할지 몹시 기대된다. 3일 개봉한다.

③ [널 기다리며] 심은경의 행보가 수상하다

널 기다리며 포스터

▲ 널 기다리며 포스터 ⓒ NEW


한국영화계에 여배우가 맡을만한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근래 젊고 재능 있는 여배우 몇이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당당히 주역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전도연과 이영애, 김혜수, 전지현 정도가 그와 같은 배우들이지만, 이들조차 남자 톱배우에 비한다면 활동의 폭이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심은경의 행보는 매우 인상적이다. <써니>와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더니 <수상한 그녀>에선 찾아보기 힘든 여성 원톱으로 나서 영화를 흥행으로 이끌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번에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쫓는 스릴러 <널 기다리며>의 주연을 맡았다. 이제 겨우 만으로 스물 둘의 젊은 여배우, 동년배보다 훨씬 앞서 나아가는 그녀에게서 한국영화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도 같다.

<우리 동네>의 각본을 맡았던 모홍진 감독의 데뷔작인 <널 기다리며>는 10일 막을 올린다.

④ [산하고인] 중국 영화계의 기수 지아 장 커의 신작

산하고인 포스터

▲ 산하고인 포스터 ⓒ 에스와이코마드


중국 영화계를 떠받치는 6세대 기수 지아 장 커의 신작이 10일 개봉한다. <세계>, <스틸 라이프>, <천주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에게도 <산하고인>은 잊지 못할 작품이다. 그의 영화 가운데 중국 흥행 면에선 가장 성공적이었고,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으며, <천주정>에 이어 다시금 아내 지아 타오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지아 장 커의 영화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인 만큼 한국관객들도 무리없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부터 2025년에 이르는 장대한 세월을 관통하며 지아 장 커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했을까? 궁금하면 극장을 찾으면 된다.

⑤ [조이] 제니퍼 로렌스 + 브래들리 쿠퍼 + 로버트 드 니로

조이 포스터

▲ 조이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니퍼 로렌스, 브래들리 쿠퍼, 로버트 드 니로가 한 영화에 나온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아메리칸 허슬>의 감독 데이빗 O. 러셀이 연출을 맡았다.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싱글맘 조이 망가노가 미국 홈쇼핑 역사상 최대의 히트작을 발명하며 수십억 불 대의 기업가로 성장한 실화를 다뤘다. 주인공인 조이 역에 캐스팅된 제니퍼 로렌스는 실화에 유달리 후한 평가를 주는 것으로 유명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룸>의 브리 라슨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아쉽게 수상에 실패했지만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다.

주목할 만한 CEO의 이야기를 여성원톱으로 풀어낸 작품인 만큼 여러모로 기대가 크다. 10일 개봉한다.

⑥ [무스탕: 랄리의 여름] 가능성 충만한 신예의 작품

무스탕: 랄리의 여름 포스터

▲ 무스탕: 랄리의 여름 포스터 ⓒ (주)미로스페이스


이름난 명장의 작품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다면 그건 가능성 충만한 신예의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다. 터키 출신의 젊은 여성감독 데니즈 겜즈 에르구벤의 데뷔작 <무스탕>은 꼭 그와 같은 경험을 안겨줄 만한 작품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2016년 세자르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어린 나이에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 풍습이 있는 터키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한 명씩 곁을 떠나는 언니들을 바라보며 탈출을 꿈꾸는 다섯째 랄리의 이야기를 그렸다. 상당히 답답한 상황이지만 명랑함을 잃지 않는 영화를 보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17일 개봉.

⑦ [헝거] "내가 왜 죄수복을 입어야 하는가" IRA 조직원의 교도소 투쟁 실화

헝거 포스터

▲ 헝거 포스터 ⓒ 오드


<셰임>과 <노예 12년>의 감독 스티브 맥퀸의 구작이다. 구작이라 함은 <헝거>가 앞에 언급한 두 작품보다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02년 영국 문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훈장을 받았고 2년 전에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까지 수상한 스티브 맥퀸의 영화란 점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가렛 대처 수상 시절 교도소에서 죄수복 착용과 샤워를 거부하며 투쟁을 벌인 IRA 조직원들의 실화를 다뤘다. 마이클 패스벤더, 리암 커닝햄 등 존중받아 마땅한 배우들이 주연했다. 17일 개봉한다.

⑧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미래 가늠할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최근 마블 코믹스의 기세가 무섭긴 하지만 DC코믹스의 전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배트맨> 3부작을 리부트해 DC코믹스의 전성시대를 다시금 연 크리스토퍼 놀란이 직접 기획하고 <왓치맨>과 <맨 오브 스틸>로 기량을 닦은 잭 스나이더가 장기계약을 확정한 첫 작품이다. 마블 스튜디오를 비롯해 20세기 폭스와 유니버설 픽처스 등 여러 제작사가 캐릭터 판권을 나눠가진 마블에 비해 워너 브라더스 독점계약으로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배트맨과 수퍼맨이란 절대적 인지도의 두 캐릭터를 내세워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하는 DC코믹스의 출발에선 왠지 모를 장엄함까지 느껴진다. 헨리 카빌, 벤 에플렉, 에이미 아담스, 로렌스 피시번, 제시 아이젠버그, 제레미 아이언스, 홀리 헌터, 제프리 딘 모건으로 이어지는 출연진은 어벤져스의 호화 캐스팅에 맞불을 놓기에 충분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미래를 가늠할 이 영화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⑨ [헤일, 시저!] 유명 배우들이 코엔 형제의 이름 아래 모였다

헤일, 시저! 포스터

▲ 헤일, 시저!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코엔 형제의 신작. 할리우드 영화제작 시스템을 정면에서 풍자하는 코엔 형제의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몹시 매력적이다. 조지 클루니, 조슈 브롤린, 스칼렛 요한슨, 랄프 파인즈, 채닝 테이텀, 틸다 스윈튼이란 유명 배우들이 코엔 형제의 이름 아래 모였다. 내놓는 작품마다 평론가들의 관심을 사로잡아온 코엔 형제가 이번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24일 확인할 수 있다.

⑩ [대배우] 만년 조연 오달수의 첫 주연작

대배우 포스터

▲ 대배우 포스터 ⓒ (주)대명문화공장 , 리틀빅픽처스


3월 한 달 동안에는 평소 주연을 맡지 못했던 배우들이 주인공을 꿰찬 작품이 여럿 개봉한다. 박효주-배성우가 주연한 <섬. 사라진 사람들>, 김태훈-박소담의 <설행_눈길을 걷다>, 곽시양-신동미의 <방 안의 코끼리>, 안보현-박철민-호야가 주연한 <히야> 등이 모두 그런 영화다. 여러 매체에서 주목받는 규모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들 가운데 3월 극장가의 주인공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대배우> 역시 그와 같은 영화다. 주인공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오달수다. 천만요정이자 대한민국 대표 조연배우, 하지만 동시에 만년 조연이던 오달수에게 <대배우>는 첫 번째 주연작이다. 박찬욱, 김지운 등 명성 있는 연출자의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아온 석민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 <대배우>는 배우 오달수에게도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그는 과연 대배우로 거듭날 수 있을까? 3월 중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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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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