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일본군 위안부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막판 독일, 이탈리아와 삼각동맹을 체결하며 추축국으로 2차대전과 태평양전쟁을 소화한 일본이 식민지에서 강제로 동원한 성착취 피해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현지 주둔부대에 붙들려 군인들의 성욕을 푸는 도구로 소모됐던 정신대 위안부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분노케 했다. 심지어 그중 대다수가 자신이 향후 겪을 일을 알지 못한 채로 속아서, 혹은 강제로 붙들려 위안부가 되었단 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생존자들이 제가 겪은 일을 외부로 알리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야 했던 세월은 얼마나 길었는가. 그 사실을 알린 뒤 이들이 겪어야 했던 문제들은 또 얼마나 지난한 것이었나.
 
그럼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저 숨죽이고 물러나 있지만은 않았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공식석상에 나와 최초로 피해증언을 했고, 활동가며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시위가 이뤄지기도 했다. 전 세계로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알린 김복동 할머니의 평화활동은 영화로 만들어져 큰 파급을 일으켰고, 나눔의 집과 평화의 소녀상 등 관련된 활동들이 시민들의 지지와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피해자가 앞장서고 활동가가 꾸리며 시민들이 지지해온 이 같은 활동은 그 자체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제의 만행에 분연히 맞서는 한국인의 결기를 알도록 했다.
 
할머니를 만나는 날 스틸컷

▲ 할머니를 만나는 날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끝나지 않는 싸움, 위안부 피해 투쟁의 현실
 
이 같은 투쟁의 결과일까. 피해자 일부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고등법원은 지난해 말 원심을 뒤집고 원고 청구금액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외국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하는 게 부당하다고 판결해 논란이 된 원심을 뒤집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여론과 재판 등 다방면에서 일본정부를 압박해왔던 피해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수요시위가 1600차를 돌파할 당시 10명이던 생존자는 단 몇 개월 만에 또 줄어 8명밖에 남지 않았다. 일본의 피해보상이며 진심 어린 사과가 요원한 가운데 피해자 없는 투쟁의 시기가 코앞에 닥쳐온 것이다.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폐막식에 상영된 두 편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할머니를 만나는 날>이다. 피해자 없는 투쟁의 시기, 새로이 열릴 이 같은 국면을 19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소개한다. 최예린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온 두 활동가'를 카메라 앞에 세워 '할머니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하는 모습을 내보인다.
 
할머니를 만나는 날 스틸컷

▲ 할머니를 만나는 날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남은 이가 얼마 없다... 피해자 없는 시대
 
'포카'와 '행'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를 보살피고 이들의 활동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온 활동가다. 생존한 할머니들께 연락을 돌리고 이따금 방문하는 일부터, 수요시위며 각종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이 죄다 이들의 역할이다. 우스갯소리처럼 수렁에 빠졌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 없이는 감히 당해낼 수 없는 활동들이다.
 
가해자는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외면하고, 우리 정부조차 이를 방관해온 시간은 얼마나 길었던가. 피해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직접 나서 버티고 알린 끝에 겨우 오늘에 이르렀다. 국민적 지지라 해도 좋을 여론이 생겼고, 정부는 움직이지 않아도 나서주는 활동가며 지지하는 시민들이 있다. 영화 속 등장하는 것처럼 자라나는 세대에게 문제를 알게 하는 교육활동도 꾸준히 이어왔다. 법과 제도를 바꾸고 사회적 인식을 길러내며 상대를 압박하여 의로움을 세우는 일, 이들이 해내고자 한 것이 이와 같은 일이다.
 
그동안 240명에 이르렀던 등록 피해자 대부분은 고령과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포카가 처음 활동가가 되었을 때 생존자는 130명이었다고 했다. 그보다 늦게 합류한 행이 발을 담갔을 때는 43명의 생존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작 8명, 올해가 지나면 또 몇 명이 남을지 모를 일이다.
 
할머니를 만나는 날 스틸컷

▲ 할머니를 만나는 날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정부가 외면한 외로운 싸움
 
불행히도 지난 정부들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의욕을 보여주지 않아 왔다. 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그로부터 비롯된 수출규제 등 한일 간 외교갈등은 집권 후 가뜩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지난 문재인 정부가 역사문제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피해자를 배제한 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임을 못 박은 박근혜 정권 당시 한일 위안부 합의가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공식 확인까지 했다.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사회가 나서 지난 대선에서 지지했던 정권을 배신자라 규탄했을 만큼 충격적 사건이었다.
 
윤석열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집권 직후 퇴행적 역사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생존해 있던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 노력하겠다고 했던 약속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꼭 1년 전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던 발언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제는 온 국민이 알고 있다.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지금보다 많은 시선이 닿기를 바라며
 
피해자가 사라지고 정부가 방관한다 해서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100년 전 일은 이미 지났으니 이대로 일본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박근혜 정권이 합의하고 문재인 정권이 공인했으며 윤석열 정권은 다시 돌아보지 않으려는 이 싸움을 여기서 중단해야만 하는가. 가능성을 비추거나 앎을 확장하지는 못하였으나 현장의 목소리만큼은 담아내고 있는 다큐다. 이를 보다보면 각자가 저마다의 답 가까이로 다가서게 되지 않을까.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은 사회적 참사에 주목했다. 세월호 침몰참사를 비롯하여 이태원 참사 등과 관련한 담론이 포럼과 영화 섹션을 통해 비친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일, 전쟁과 그 안의 또 다른 폭력들, 이를 외면해온 국가와 제도까지가 그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낀다.
 
수준과 품격의 측면에서 예술과 영화에 다가서온 평론가의 비좁은 시각으론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제와 출품작들이었음을 기록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제가 소개한 여러 작품에 대하여 여타 영화제에 비해 많은 글을 남기려 하는 것은 이 영화제가 해내고자 하는 것이, 또 소개된 작고 독특한 작품들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주목을 받아야만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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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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