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혹은 시간에 대한 개념을 다루는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무엇이든 바꿔낼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SF와 현대 물리학 사이 이뤄진 수많은 관계맺음 사이에서 두 가지 개념은 각각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을 빚어내기도 하였다.
 
후자 중 꽤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이란 소설이 있다. 유명 SF작가 테드 창의 단편으로, 2007년 발표돼 네뷸러상과 휴고상을 받은 명작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한 상인이 칼리프를 알현해 자신이 만난 연금술사와 그가 개발한 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을 지나면 20년 전의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데, 출구격인 특정한 문으로만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시차로 이동하게 되는 이 설정이 곧 소설의 극적 장애가 된다.
 
듄: 파트2 포스터

▲ 듄: 파트2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미래를 알면 바꿔낼 수 있을까
 
소설에서 주인공은 연금술사의 문을 통해 과거로 간다. 20년 쯤 전, 정확하게는 20년에서 한 달 쯤 모자란 과거에 그는 아내를 잃었다. 행상인 그는 아내와 가볍게 다툰 뒤 집을 나섰는데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고 보니 아내가 죽어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로부터 그는 과거로 돌아가 아내를 구하기 위하여 연금술사의 문을 건너 20년 전 바그다드로 간다.
 
그러나 아내는 바그다드에 있지 않다. 출구인 바그다드에서 한참이나 여행해야 하는 카이로에 그녀가 있다. 상인은 아내가 죽기 전 카이로로 가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지만 일은 자꾸만 꼬여만 간다. 마침내 겨우 카이로에 도착한 상인,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아내를 죽인 사고는 일어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엇도 바꿔내지 못한다는 사실, 테드 창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킵 손 교수의 자문을 통해 이 소설의 구조를 얻었다고 말한다.
 
과거로 갈 수 있다 해도 무엇도 바꿀 수는 없다는 생각. 그러나 그에 반하는 이들이 세상엔 넘쳐난다. 덜 과학적이라 할지라도 더 낭만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창작자들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시간여행은 아니래도 <듄: 파트2>가 터 잡은 세계관은 전자에 가깝다. 말하자면 알기만 하면 무엇이든 바꿔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듄: 파트2 스틸컷

▲ 듄: 파트2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멸문 당한 가문의 후예, 다시 일어서다
 
전편에서 가문의 멸문으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폴 아트레이더스(티모시 샬라메 분)는 우여곡절 끝에 사막에 사는 원주민인 프레멘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레멘들에겐 오랫동안 전해져온 예언이 하나 있다. 메시아며 미륵불 등 여러 종교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구원자에 대한 것이다. 훗날 하늘에서 구원자가 내려와 저들을 구하고 행성을 나무와 물이 가득한 곳으로 바꾸어놓으리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마침 폴의 등장과 그 행동이 꼭 예언을 연상시켜서 어떤 이들은 그를 구원자로 여기고 신봉한다.
 
영화는 행성을 장악하려는 하코넨 가문과 그 배후에서 아트레이더스 가문을 멸문시킨 황제의 일파에게 폴이 복수하는 이야기로 꾸려진다. 베네 게세리트라 불리는 초능력자 집단의 일원인 엄마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 분)로부터 예지능력과 남을 조종하는 능력 등을 물려받은 폴이다. 그는 꿈과 환상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미래를 보고는 하는데, 전쟁을 일으킬 경우 너무나 큰 살상이 이어진단 걸 알고 자신이 숭배 받아 지도자로 추대되는 것을 걱정한다. 반면 제시카는 제 남편과 터전을 앗아간 이들에게 복수하겠단 일념으로 폴이 프레멘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게끔 온갖 노력을 다 해나간다. 마침내 폴은 제게 주어진 운명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코넨과 황제를 격파하고 대권을 쥘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명의 물이라고 불리는 액체를 폴이 들이키며 빚어진다. 모레벌레라 불리는 사막의 괴수로부터 뽑아낸 체액으로, 보통의 사람은 이를 조금만 마셔도 죽게 되는 독극물이다. 그러나 여자, 특히 초능력이 있는 이들은 이를 마시고도 숨이 끊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들을 프레멘은 대모라 칭하며 영적 지도자로 모시는 것이다. 생명의 물에는 또 다른 힘이 있는데, 그건 과거와 미래를 보게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넘어 진실을 인식하게 하는 이 강력한 힘을 제시카는 제 아들 폴에게 주고자 한다.
 
듄: 파트2 스틸컷

▲ 듄: 파트2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한 편 영화로부터 삶을 발견하다
 
영화는 위의 과정을 거쳐 대모가 된 제시카가 압력을 넣어 폴에게도 생명의 물을 삼킬 기회를 주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로부터 폴은 자신의 선택으로 갈라질 수많은 미래를, 또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과거들을 알아차린다. 그중에는 저와 제 어머니의 출생의 비밀이 있고, 또 저들보다 훨씬 강한 적들 사이로 살아남을 수 있는 좁고 위험한 길 또한 있다. 폴은 생명의 물이 아니었다면 감히 알지도, 가지도 못했을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며 단 하나의 길에만 허락된 승리를 향해 걸어가는 자, 그것이 <듄: 파트2>가 그리는 폴이다. 다른 수많은 선택이 패망과 고통을 가리키는 와중에서 승리에 이르는 희미한 길을 고르는 건 어떤 느낌일까. 답을 알고 내리는 결정은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영화를 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내린다. 당장 다음 끼니 먹을 것을 정하는 것도, 아침에 출근할 교통수단을 고르는 것도, 사무실에서 인사를 할지 여부라거나 그 인사말을 택하는 것도 모두가 선택이다. 직장과 애인, 학교, 입대할 부대를 고르는 선택은 삶의 여정을 완전히 바꾸어놓을지도 모른다. 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작은 결정이 인생 전체를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거다.
 
듄: 파트2 스틸컷

▲ 듄: 파트2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어쩌면 오늘이 최선일 수도 있을 일
 
또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지난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도 분명히는 알 수가 없다. 뿐만 아니다. 과거에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과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좋은 판단이었다 여긴 결정이 우리를 못하게 했고, 또 잘못했다 여긴 선택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폴이 그저 미래만이 아닌 과거까지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단 건 그래서 파격적이다.
 
폴은 제 앞에 놓인 수많은 길 가운데 승리에 이르는 길이 아주 좁다고 말한다. 수군을 해체하란 어명에도, 턱없이 열세라는 부하들의 고언에도, 명량해협 울돌목으로 나아가길 선택했던 이순신 장군은 오로지 그곳에만 길이 있다고 여겼던 것처럼. 폴과 같이 미래를 볼 수 없는 우리들은 선택의 순간마다 고심을 거듭한다. 또 과거의 결정들을 돌아보며 그것이 과연 좋은 판단이었는지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만히 지난 선택들을 돌아보다 문득 이런 판단에 이르렀다. 나의 오늘은 어쩌면 이미 좁은 길을 지나온 것이 아닐까, 또 과거로 돌아가 최상의 판단들을 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인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세상에 수많은 평행우주가 존재하든 아니하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모습은 과거 수많은 선택들이 이끌어낸 결과다. 그 결과가 꼭 최상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으나 켜켜이 쌓인 고민들과 선택 위에 우리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의 모습을 긍정하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어제의 나쁨이 오늘의 좋음일 수 있고, 오늘의 좋음이 내일의 나쁨일 수 있음을 우리는 역사와 문학과 삶을 통하여 일찍이 배우지 않았던가. 누구도 폴이 될 수 없다는 건 쉬이 좌절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과거 최선의 선택을 거듭해온 결과일지 모를 일이니.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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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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