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었다. 베이비블루란 말을.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일곱 번째 세션 프로그램 노트와 모더레이터를 맡아달란 청탁을 받았다. 영화 상영 뒤 감독이며 배우들과의 대담을 진행하는 모더레이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화평론가란 이름으로 공동체상영이며 강연, 모임진행을 해본 적은 있었으나 정식 상영관에서 틀이 잡힌 진행을 해달란 것이 약간은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프로그램 노트는 자신 있는 분야였다. 본래 글을 쓰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기도 했고 크고 작은 영화제와 기관들에 평이며 프로그램 노트 따위를 써 보내는 일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노트란 영화제를 찾는 이들에게 상영작이 어떤 작품인지를 미리 소개하는 짤막한 글이다. 이번에 청탁받은 건 1000자 가량의 글로, 평보다는 짧다지만 프로그램 노트 성격의 글 가운데선 제법 분량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베에비블루 스틸컷

▲ 베에비블루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답을 찾아 떠나는 감독의 여정
 
구구절절 내용을 다 풀자면 도리어 감상을 해칠 수가 있고, 아예 해설로 돌입하면 읽는 이의 흥미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프로그램 노트는 소개팅 주선자들이 하는 것처럼 본론에 앞서 기대를 심고, 정보를 주는 글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말이야 쉽다지만 쓰는 건 어려워서 어떤 영화는 1000자를 꼭 채워 쓰는 일이 상당한 고역일 수도 있다. 내용을 죄다 적지도 의미를 줄줄이 풀이하지도 않으면서 읽는 이의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그리 쉬운 작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베이비블루>가 내게는 그러해서 이 영화의 프로그램 노트를 도대체 어떻게 써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대체로 글을 쓸 때 막힘이 없는 내가 작정하고 수차례나 돌려봤을 만큼,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베이비블루가 14분짜리 짤막한 다큐멘터리를 찍도록 한 문제다. 삶을 침체시키는 우울감 앞에 좀체 어울리지 않는 베이비란 단어가 붙었다. 바로 그 문제가 제 삶을 침식시킨다고 여긴 감독은 그 타개책을 찾아 여정을 떠난다.
 
베이비블루 스틸컷

▲ 베이비블루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나이에 맞는 삶, 진짜로 있는 걸까?
 
영화의 초입, 이제 스물다섯 된 이나현 감독이 친구들을 모아두고 말한다. 이십대 중반이 되었으니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외면하고 싶다고. 때로는 자신을 차갑게 보는 눈빛과 태도가 서럽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생긴 것이 베이비블루, 아직 아이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생긴 우울한 감정이랄까.
 
말하자면 <베이비블루>는 스물다섯 이나현이 저를 둘러싼 불쾌한 감정, 베이비블루와 맞서는 이야기다. 보다 정확하게는 카메라를 들고서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담은 다큐다. 그 길에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 어린 시절을 함께 난 혈육이 있고, 일을 하며 만난 지인이며 학창시절 은사들도 있다. 감독은 그들 앞에 제가 느끼는 혼란을 털어놓고 그들이 내놓는 답을 경청한다.
 
나이에 맞는 삶이 있다는 믿음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공자께선 사람 나이 열다섯이면 학문을 알고 서른이면 자립하며 마흔이면 치우치지 않는다 하셨다. 세간에서도 열여섯이면 혼기라 했고 일단 혼인을 하면 머리를 묶어 올렸다. 나이가 차고도 머리를 땋고 다니는 이는 안쓰럽게, 또는 한심하게 여겼다. 약관이라 하여 사내 나이 스물부터는 갓을 쓰라 하였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혼인을 않고 머리를 땋고 다니는 이가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눈에 훤하다.
 
성인식의 문화 또한 세계 어디서나 쉽게 발견된다. 생산력이 발달할수록 성년의 나이가 늦춰지게 마련, 원시 부족사회 가운데선 나이 채 열이 지나지 않아 성인식을 치르는 곳도 있다. 더는 놀고먹지 말고 제 밥그릇은 제가 알아서 채우란 뜻이겠다.
 
베이비블루 스틸컷

▲ 베이비블루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성장하는 성년, 방황하는 어른... 시대의 초상
 
사회학은 생산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에서 해방된 현대 인류가 성년 뒤 십여 년 이상이나 내적 성장을 지속하는 세대를 키워냈음을 알린다. 이른바 성장하는 성년기가 인류 앞에 펼쳐진 것이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난 틈에 제 자아를 찾고 꿈을 찾고 짝을 찾겠다는 세대, 누가 그를 일러 잘못됐다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넓어진 기회가 만족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불안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몸은 컸는데 마음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끝내 당하지 못할 불안 앞에 아이이고 싶다고 투정한다. 영화 중 감독은 죽마고우라 해도 좋을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제가 느끼는 감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털어놓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 어느 순간 삶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같은 것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이십대 청춘에만 찾아오는 것일까. 마흔을 코앞에 둔 내게도 불안과 공포 앞에 스스로를 추스르기 버거운 순간이 수시로 찾아든다. 마흔을 넘어 쉰, 예순이 되었다 하여 달라질 수 있을까.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응원하게 되는 마음
 
영화가 상영된 날, 예고 없이 극장을 찾은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곱 번째 섹션에서 상영된 세 편의 영화 가운데 유독 <베이비블루>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에게 여러 질문을 하고 싶었다는 사람부터, 지금은 불안해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감독을 보니 반드시 잘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는 이도 있었다. 일면식 없는 이들에게도 공감과 궁금증, 응원의 마음을 들게끔 한 이라면 아마도 베이비블루 쯤은 거뜬히 고서 뚜벅뚜벅 나아가리라 기대하게 된다.
 
다큐는 놀이터에서 힘차게 그네를 타는 감독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할머니를 찾아 위안 받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아이들 노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그네를 탈 용기가 있고, 한없이 어리광을 부릴 할머니까지 계시니 제 아무리 베이비블루래도 하나 무서울 것 없겠다.
 
잎사귀 한 장도 나무 전체의 이해 없이는 노랗게 물들지 못한다 했다. 베이비블루 또한 마찬가지, 어느 잎사귀 한 장만의 고민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름처럼 푸르른 봄일 수만은 없는 이 시대 청춘들은 이 영화로부터 약간의 위안을 찾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럼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승하시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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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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