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농협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사무실 앞에 나와서는 건물 앞에 심어둔 사과나무 주변을 맴돈다.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는 누가 보아도 아무나 따먹으라고 둔 것은 아닌데, 그녀는 한참 주변을 서성이다가 마침내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똑 떼어서는 자리를 뜬다. 씹으면 아삭- 소리가 나는 잘 익은 사과를 남몰래 썰어 한 조각 입에 넣는다. 도대체 왜 그녀는 하나로마트가 아닌 직장 앞에 심긴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 먹은 것일까.
 
31분짜리 다큐멘터리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는 농협 여직원이 사과를 따 먹은 이유를 담아낸다. 영화를 보고나면 사과는 그저 맛난 과일인 것만은 아니다. 그녀가 받아 마땅했던, 그러나 끝내 받을 수 없었던 사과, 무단으로 하나 따 먹어야만 조금이라도 성이 풀리는 그런 것이 된다.
 
영화를 찍은 이는 농협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는 김예랑이다. 농협에서 업무지원역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며 공채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업무지원이란 말하자면 잡일이다. 서류를 정리하고, 폐기하며 다른 사무직 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아 한다. 여기까지는 입사 전에도 예상하던 바다. 몰랐던 건 다음이다. 탁자를 닦고, 직원들이 사용한 식기며 컵을 설거지하는 것 같은 일. 정직원은 하지 않는 단순노동은 수시로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계약직 여직원만 유니폼을 입는 회사
 
더 거슬리는 일도 있다. 유니폼이다. 정직원은 아무도 입지 않는 유니폼을 계약직 직원들만 입는다. 변호사나 노무사 같은 전문계약직은 물론이고 같은 일반 계약직 중에서도 남자직원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반계약직 여직원만 유니폼을 입는다. 이쯤이면 유니폼이 낙인처럼 보이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정규직과 계약직, 전문계약직과 일반계약직, 다시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그중 못한 이를 드러내는 낙인 말이다.
 
일터에서 부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드는 일은 보통의 용기로는 되지 않는다. 심지어 유니폼을 입는 계약직 여직원에겐 더욱 그럴 테다. 그래서일까. 감독의 카메라는 좀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정면에서 잡지 못한다. 마치 탐사보도 프로그램 PD와 작가들이 불법을 자행하는 공간에 몰래 잠입한 것처럼, 혹은 그조차도 못하고 어정쩡한 시선으로 옷깃이며 몸통이며 다리를 잡아내는 것이 고작이다. 어쩌다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람들을 찍을 때에도 그 표정이며 몸짓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에서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는 일터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지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태블릿PC는 유독 일반계약직 직원들에게만 주어지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이가 없다. 사실 그 이유를 묻는 것도 가까이 지내는 이들에게가 고작, 관리자급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어떻겠느냐는 그녀를 마음 터놓고 지내는 정직원은 하지 말라며 만류할 뿐이다.
 
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직장 속 부조리, 카메라를 들었다
 
1년 계약직 직원의 처우는 좀처럼 나아질 줄 모른다. 다른 이들은 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을 돌아보면 낙인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서 다른 이가 쓴 식기를 닦고 모두에게 지급되는 선물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아닌가. 각종 공고며 메일에서도 직급이며 직책이 아닌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버젓이 표기되는 상황, 부조리가 부조리인 줄을 제 일이 아닌 이는 알지 못한다.
 
당사자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어느 누가 채 1년을 넘길 수 없는 계약직 신분에서 노조까지 만들어 싸우려 들겠는가. 정규직 노조는 계약직 노동자의 상황에 관심이 없고, 계약직 직원들은 노조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 사이 부조리는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감독의 시선은 어느새 저보다 못한 또 다른 계약직 직원에게로 옮겨간다. 다름 아닌 청소노동자들이다. 승객용 승강기 대신 화물용만 이용하라는 규정에 따라 직원이며 고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는 그들의 상황이 처연하다. 한 청소노동자는 감독의 인터뷰에 응한 뒤 저도 부탁이 있다며 그녀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달력 하나를 얻을 수가 있겠느냐 말한다. 달력, 제가 쓸고 닦는 직장의 판촉용 달력 하나를 그녀는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니폼 입는 일반계약직 직원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는 비단 농협만의 일일 수는 없다. 조금 더 고루하고 조금 덜 노골적이란 차이가 있다 뿐이지 사회 곳곳에서 사람을 구분해 차별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오늘의 한국이다. 너는 고졸이니까, 너는 비정규직이니까, 너는 남자 혹은 여자니까, 너는 어리거나 노인이니까, 너는 외국인이니까, 너는, 너는, 너는. 온갖 종류의 차이가 차별로 악화된다. 그중 많은 경우는 몰래 따 먹을 사과 하나조차 갖지 못한다.

22대 총선에서 실종된 목소리
 
영화 가운데 감독 김예랑은 끝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동료직원에게 농담처럼 건네 봤던 인권위 제소는 물론이고 책임자에게 문제를 이야기하는 일조차도 그녀는 감히 감행하지 못한다. 모든 부조리를 속으로 삭이면서 정규직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좁은 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그러나 문은 끝끝내 열리지 않고 변화 또한 이뤄지지 않는다. 사과 하나를 따서 먹는 것으로 답답한 속을 잠시 다스리는 게 고작이다.
 
많은 이들이 역사란 진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래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천하가 공물이라 이야기한 이가, 국가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던 이가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되던 세상이 어느덧 옛일이 되었으므로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로부터 노비제가 혁파되었고 백정까지도 동등한 시민이라는 형평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100년 전의 역사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는 동안 차별은 과연 철폐되었는가. 출신과 학력, 재산과 인종 따위로 사람과 사람을 나누어 가르는 행태가 얼마나 빈번하게 빚어지는가. 차이는 쉽게 차별로 악화되고 어떤 인간들은 비참함 가운데 넘어져서 일어날 줄 모른다. 더욱 참담한 것은 넘어지지 않은 이들이 넘어진 이들을 외면하며, 심지어는 조롱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약한 이들일수록 더 위험한 현장에 내몰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문제의식은 갈수록 약해져만 간다. 여느 때라면 큰 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터져 나왔을 비정규직 관련 공약도 22대 총선을 앞두고선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노동유연화를 정책기조로 삼은 정부의 영향으로 기업과 공공부문 모두에서 비정규직이 꾸준히 늘어나 역대 최고수준에 이르렀단 뉴스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짝다큐페스티발 반다페 그녀는왜사과를따먹었을까 김예랑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