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천국 국내 재개봉 포스터

▲ 시네마천국 국내 재개봉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했다. 여자가 물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남자는 상심하여 말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겠소?"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쌀쌀맞게 대답했다. "백일 동안 매일 밤 내 창가에 와서 나를 지켜본다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겠어요."

남자는 그날 저녁부터 의자를 들고 와 그녀의 창문이 바라보이는 곳에 앉았다. 별이 떠오르고 밤이슬이 내리고 아침이 되면 남자는 지친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때로 비가 내리는 밤이 있었다. 때로 바람이 부는 밤이 있었다. 때로 살을 에는 듯 추위가 엄습해오는 밤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느 밤에는 여자의 방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어느 밤엔 일찍 불이 꺼지고, 어느 밤엔 새벽이 될 때까지 무도회가 열렸다. 때로 여자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다 무심코 커튼을 젖히고 내려다본 창밖에 남자는 있었다. 때로 깊은 밤 어지러운 꿈에 쫓겨 잠이 깼을 때도 남자는 그곳에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여자는 생각했다. 저러다 곧 그만둘 것이라고. 한 달이 지나자 여자는 생각했다.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두 달이 지나자 여자는 생각했다. 당장 달려 나가 남자의 지친 어깨를 감싸주어야 한다고. 석 달이 지나자 여자는 다짐했다. 남자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겠노라고.

아흔아홉 번째 밤이 깊었다. 남자는 여전히 여자의 창을 올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백 번째 밤이 찾아왔다. 여자는 설레는 가슴으로 창을 열었다. 그러나 그곳에 남자는 없었다. 빈 의자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시네마천국 "말해줘요, 알프레도. 병사는 왜 나타나지 않았죠?"

▲ 시네마천국 "말해줘요, 알프레도. 병사는 왜 나타나지 않았죠?" ⓒ 그린나래미디어(주)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1988년 작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공주와 병사의 이야기다. 어째서 백 일째 되던 날 병사가 오지 않은 것이냐는 어린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 분)의 질문에 알프레도(필립 느와레 분)는 끝끝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았던 이 질문은 곧 <시네마 천국>의 주제와 통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네마 천국>은 향수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토토와 알프레도가 이루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낡은 영사기와 오려진 필름, 광장과 사람들, 무너진 시네마 파라디소, 토토와 알프레도의 추억, 그리고 첫사랑.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향수가 짙은 회한과 함께 러닝타임 내내 펼쳐진다.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애증의 대상이다. 친구이자 스승이며 부재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어른이었으나 동시에 자신과 애인인 엘레나를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 알프레도는 토토를 로마로 떠나보내며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을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로부터 토토는 무려 30년 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다.

영화는 알프레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중년의 토토(자끄 페렝 분)가 고향을 찾으며 시작된다. 그리고 토토가 알프레도를 이해하고 진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마쳐진다. 알프레도의 유품, 그가 남긴 짧은 작품을 보며 토토는 비로소 알프레도를 이해한다. 그가 영사기를 돌리며 남몰래 품었던 꿈, 자신에게 투영한 간절한 열망을 이해한 토토는 뒤늦은 울음을 서럽게 울었더랬다. 키스신이 짜깁기된 영상을 보며 백발이 성성한 토토가 울음을 우는 이 엔딩을 통해 <시네마 천국>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가 욕망과 엇갈림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마침내는 예술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이야기로 화한다.

모든 오해는 토토가 고향을 찾으며 일거에 해소된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의 털실은 끝없이 풀려나갔고 가슴 깊이 맺혀있던 응어리도 깨져 나갔다. 감독이 이로부터 말하고 싶었던 건 명확하다. 마주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고 행동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 토토가 로마로 떠나서도 도망치지 못했던 과거의 아픔은 그가 고향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부서져 나갔으니.

자, 그럼 생각해 보자. 백일 째 되던 날, 왜 병사는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와 빅이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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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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