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포스터 두 영웅의 생각 차이에는 생각보다 '가정 환경'이 크게 좌우한다.

▲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포스터 두 영웅의 생각 차이에는 생각보다 '가정 환경'이 크게 좌우한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행복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근간이다. 가정은 개인이 경험하는 최초의 사회이며 개인은 가정을 통해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가정을 가리켜 사회의 요람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 블록버스터치곤 매우 느린 속도로 힘겹게 200만 관객을 넘어선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아래 <배트맨 대 슈퍼맨>)은 가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구 평화를 수호하는 슈퍼히어로들에게도 가정의 존재는 중요할 수밖에 없는 법. 영화 속 세 명의 주요 캐릭터, 그러니까 배트맨과 슈퍼맨, 악당인 렉스 루터의 극명하게 갈린 오늘이 그들의 각기 다른 가정사에서 비롯된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지 모른다.

왜 슈퍼맨만 사랑받는가

열광적인 반응 만인의 관심을 받는 슈퍼맨(헨리 카빌 분). 그가 정의에 대해 고민할 때, 그를 붙들어주는 건 살아 있는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이다.

▲ 열광적인 반응 만인의 관심을 받는 슈퍼맨(헨리 카빌 분). 그가 정의에 대해 고민할 때, 그를 붙들어주는 건 살아 있는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히어로 영화의 팬이라면 모두가 아는 것처럼 배트맨 브루스 웨인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연극을 보고 나오던 중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이 사고로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다. 막대한 유산과 집사 알프레도의 헌신적인 돌봄이 있었지만, 부모가 살해당했다는 트라우마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고담의 배트맨이 멀리 있는 법보다 가까이 있는 힘을 신뢰하는 밤의 파수꾼으로 성장한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슈퍼맨 클락 켄트는 배트맨과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모성인 크립톤을 떠나 지구에 정착한 슈퍼맨은 새로운 세계에서 가정적인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만나 더없이 단란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처럼 충만한 사랑을 받고 자란 슈퍼맨이 미국인들의 관심은 물론 애인인 로이스 레인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DC코믹스가 성장기에 겪게 되는 정서적인 충만감이 인간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의 오랜 믿음을 그대로 따르는 듯 보일 정도다.

<배트맨 대 슈퍼맨>이 보이는 이 같은 태도는 악당 렉스 루터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에서 수차례 아버지를 언급한 렉스 루터는 클라이막스 부분에 이르러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영화의 줄거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이 같은 설정을 영화가 굳이 내보이는 의도는 명백하다. 성장기 동안 부모가 부재했던 배트맨과 부모로부터 헌신적인 사랑을 받은 슈퍼맨, 그리고 학대당한 렉스 루터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통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만방에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목적한 바가 아닐까?

히어로에게도 가정은 필요하다

브루스 웨인과 다이애나 배트맨(벤 에플렉 분)과 원더우먼(갤 가돗 분)의 첫 만남. 배트맨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 브루스 웨인과 다이애나 배트맨(벤 에플렉 분)과 원더우먼(갤 가돗 분)의 첫 만남. 배트맨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부성과 모성은 다른 많은 할리우드 장르물이 그러하듯,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도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슈퍼히어로와 그들의 상대인 악당들은 역시 히어로에 가까운 부모의 자녀였거나 부성과 모성의 결핍을 겪었거나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곤 했다. 슈퍼맨과 배트맨, 렉스 루터 등 DC코믹스 캐릭터는 물론이고 토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앤트맨 등 마블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는 영향을 강조하는 부분을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그중에서도 노골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장기를 보내는 것이 곧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인이 되는 밑거름이란 점을 주요 캐릭터는 물론 수차례 에피소드를 통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은 내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순간 어머니를 찾아 위안을 구하고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영화는 슈퍼맨의 아버지(케빈 코스트너 분)를 환영으로 등장시키는 배려까지 잊지 않는데 이를 보다 보면 슈퍼맨이 이처럼 올곧게 자라게 된 바탕에 부모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배트맨은 부모의 부재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말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막상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 그에게선 어딘가 몸만 큰 아이 같은 분위기가 풍겨온다. 집사 알프레도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팀 버튼이 그린 전작들과 달리 배트맨에 대해 일정 부분 손을 놓은 직업인처럼 그려질 뿐이다. 배트맨은 시종일관 슈퍼맨의 이야기에 귀를 닫은 채 천방지축으로 날뛰는데 이 모두가 부모의 죽음 이후 내적 성장이 멈춰버린 캐릭터를 표현한 듯 느껴질 정도다.

배트맨이 슈퍼맨과의 싸움을 마무리하는 계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구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목적으로 슈퍼맨을 제거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세운 과정이야 슈퍼히어로물 특유의 막무가내 전개로 이해하더라도 단지 어머니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싸움을 마무리하는 배트맨의 태도엔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일관한 렉스 루터 역시 이러한 사고가 반영된 캐릭터다. 제시 아이젠버그의 강렬한 연기로 어찌어찌 캐릭터를 유지했지만, 렉스 루터의 광기 어린 태도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배트맨 대 슈퍼맨>이 남긴 교훈?

비뚤어진 캐릭터 사무치는 소외감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 분)

▲ 비뚤어진 캐릭터 사무치는 소외감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 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가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가정교육을 잘 받으면 슈퍼히어로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악당이 된다는 것.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배트맨조차 그 스스로 내면의 공백을 채우지는 못한다. 결국, 사랑받으며 자란 자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오랜 진실이 이 영화의 이면에 깔린 설정이다.

어쩌면 <배트맨 대 슈퍼맨>이 다루고 싶었던 주제는 이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홀리 헌터가 연기한 핀치 의원이 슈퍼맨을 의회에 세우려 시도한 전반부의 에피소드는 실상 영화의 줄거리와 동떨어진 것이었고 이는 영화가 집중한 다른 많은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얼기설기 엮어진 에피소드가 실상 주요 주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영화는 배트맨과 슈퍼맨의 갈등과 화합,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한다.

그 가운데서 뚜렷하게 떠오르는 사실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그렇듯 가족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 이 영화는 슈퍼맨과 배트맨, 렉스 루터라는 뚜렷한 개성을 가진 세 캐릭터를 통해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을 통한 성장기의 정서적 충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이 모두는 단 한 권의 육아서적보다도 못한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잭 스나이더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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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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