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 포스터

▲ 아메리칸 셰프 포스터 ⓒ 영화사 진진

2월 극장가는 한국영화가 장악하는 모양새다. 대형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지원을 등에 업은 <쎄시봉> <국제시장>은 물론이고 <강남 1970> <내 심장을 쏴라> <오늘의 연애> 등 여러 장르의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 10위(2월 9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방학 특수를 노리는 애니메이션의 강세도 두드러지는데 디즈니의 <빅 히어로>, 13년 만에 재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최강전사 미니특공대> 등도 10위 안에 들어있다. 한국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강세 가운데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관객을 모으는 할리우드 영화도 있다. 매우 미국스런 제목을 달고 10, 11위에 나란히 올라있는 <아메리칸 스나이퍼> <아메리칸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존 파브로의 <아메리칸 셰프>는 지난 1월 개봉해 어느덧 한 달여가 지났음에도 꾸준히 관객을 모으는 소리 없이 강한 작품이다. 감독 겸 배우로 알려진 두 영화인의 연출작이지만 존 파브로와 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출만을 맡았다.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집중력 있게 그려낸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제87회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그에 반해 존 파브로의 <아메리칸 셰프>는 다분히 힘을 빼고 초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촬영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가족 드라마와 성장 드라마가 요리와 여행이라는 소재 가운데 적절히 버무려진 이 영화는 철저한 오락 영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달리 제목에 들어간 '아메리칸'은 한국 개봉명일 뿐이며 원제는 'Chef'인데 우리말로 하면 요리사쯤이니 아무래도 심심해서 앞에 국적을 붙인 듯싶다.

요리사 칼 캐스퍼를 통해 영화인 존 파브로를 만나다

 마이애미에서 푸드트럭을 여는 칼 캐스퍼(존 파브로 분). 가장 싼 샌드위치가 7달러인데 손님이 줄을 서는 상황부터 다분히 판타지스럽다.

마이애미에서 푸드트럭을 여는 칼 캐스퍼(존 파브로 분). 가장 싼 샌드위치가 7달러인데 손님이 줄을 서는 상황부터 다분히 판타지스럽다. ⓒ 영화사 진진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존 파브로는 <아이언맨>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감독이다. <아이언맨>뿐만 아니라 <스윙 어즈> <러브 앤 섹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딥 임팩트> 등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직접 밝힌 바와 같이 커다란 성공 이후 초심을 찾기 위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가족과 성장, 요리와 여행이 함께 하는 영화야말로 그가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인으로서 존 파브로의 철학이 녹아든 것 같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늘 참신한 요리를 추구하고 투철한 장인정신을 가진 요리사 칼 캐스퍼의 모습이 그러한데 특히 그가 일을 통해 진정한 만족을 찾는 모습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를 찾아온 부주방장과의 우정 등에서는 존 파브로가 그의 삶 가운데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진정성이 엿보인다.

영화의 주인공은 일류 레스토랑의 주방장으로 일하는 칼 캐스퍼다.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생활하는 중년의 요리사 칼은 음식평론가로부터 혹독한 비평을 받자 홧김에 공격적인 트위터 메시지를 보낸다. 이들의 갈등은 곧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칼은 레스토랑을 그만둔다.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칼은 전 부인의 도움으로 푸드트럭을 시작하고 그를 통해 아들, 동료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며 진정한 만족에 이른다.

일과 가족 모두에서 불만족스런 삶을 살던 칼 캐스퍼가 푸드트럭을 시작하며 진정한 만족에 이른다는 이야기. 비록 멋들어진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푸드트럭에서나마 하고 싶은 요리를 즐겁게 하고 일상에 충실하며 행복한 삶에 이른다는 동화적인 이야기가 다분히 매력적으로 포장됐다. 칼의 주변인은 그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까지 한다. 더욱이 그 자신은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일류 요리사다. 그를 가로막는 것은 다만 현재의 불만족스런 상황, 즉 이혼한 남자이자 해고된 요리사라는 상황의 어려움뿐이다. 그의 앞엔 현재의 어려움을 해소할 기회가 연이어 주어지고 믿기 힘든 행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마침내 예정된 해피엔딩에 이른다. 그 과정이 동화처럼 느껴질 만큼 긍정적으로만 그려진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련된 연출이 이를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돕는다.

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보고 즐기며 이로부터 꿈과 용기를 얻게끔 하는 오락영화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요리처럼 이 영화가 가족 드라마와 성장 드라마, 요리와 음악, 여행이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점을 부인할 관객은 많지 않아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어여쁘고 요리는 맛깔스러우며 여행은 낭만적인데 어떻게 이 영화를 팔짱 끼고 볼 수 있겠는가. 이혼하고 실직당한 중년의 비만 남성에게 벌어지는 믿기 어려운 일을 보고 있자면 가히 이 영화를 중년 남성들의 <해리포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SNS를 바라보는 존 파브로의 긍정적 시선

 푸드트럭에서 즐겁게 일하는 주인공들

푸드트럭에서 즐겁게 일하는 주인공들 ⓒ 영화사 진진


영화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소재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지금껏 SNS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번 아카데미상에서 여러 부문 후보로 지명된 <보이후드> <버드맨> 같은 작품이 대표적일 것이다. 두 영화 모두 SNS의 부정적 측면을 블랙 코미디로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데, SNS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반면 <아메리칸 셰프>는 SNS를 다루는 과정에서 이보다 전면적이면서도 한 측면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초반부, SNS에 능숙하지 않은 칼이 평론가와 설전을 벌이고 그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다는 설정은 <버드맨>의 풍자와 맥을 같이 한다. 평론가와 작가의 관계뿐 아니라 SNS에 능숙한 젊은 세대와 이를 새로 배워가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유사하게 등장하며 주인공의 일탈행위가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모습도 그러하다. 극 중 인물이 SNS 등 온라인 매체를 대하는 모습에선 <보이후드>나 <나를 찾아줘>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메리칸 셰프>는 이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SNS를 통해 푸드트럭을 광고하고 마케팅에 활용하는 등 긍정적 측면을 끊임없이 내보인다. 물론 SNS는 철저한 수단에 머물며 주인공의 성공을 이루는 결정적 계기는 인물 사이의 유대감, 열정과 실력 등이다. SNS에 대한 수많은 비판적 의견에도 존 파브로 감독은 인간 사회의 본질이 바뀌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진정한 유대와 연대는 직접 피부를 맞대는 공동 경험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므로 극 중 아이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곧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는다고 하겠다.

존 파브로는 물론 엠제이 안소니와 존 레귀자모, 소피아 베르가라, 올리버 플랫 같은 배우들은 이제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였다. 육감적인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낸 소피아 베르가라와 조숙한 아들 역을 매력적으로 소화한 엠제이 안소니, 부자 전문 배우 올리버 플랫의 평론가 연기나 킬러 및 깡패 전문 배우 존 레귀자모의 의리있는 라틴계 요리사 연기는 영화를 한층 다채롭게 만든다. 더스틴 호프만, 스칼렛 요한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이름있는 배우들의 카메오 출연도 재미를 더했는데 배우 출신 연출자답게 배우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존 파브로의 역량이 빛났다고 하겠다.

전반적으로 두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다. 극장을 나서며 가끔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어른들의 동화를 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아메리칸 셰프 영화사 진진 존 파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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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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