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메인 포스터

▲ 인터스텔라 메인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기사에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아마도 전 세계 가장 많은 관객에게 2014년 최고의 기대작이었을 <인터스텔라>가 지난 6일 개봉했다. 미국에선 디즈니와 마블의 야심찬 프로젝트 <빅 히어로 6>로 인해 박스오피스 2위로 밀려났으나 한국에선 압도적인 1위로 흥행몰이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일주일차인 12일 기준으로 268만 관객을 동원해 먼저 개봉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나를 찾아줘>의 누적 관람객 수를 가볍게 제쳤다. 다음 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헝거게임>과 <퓨리>가 개봉할 때까지는 별다른 대항마도 눈에 띄지 않는다. 걸출한 데뷔작 <메멘토>부터 <배트맨>시리즈와 <인셉션>을 거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이 적어도 2014년 최고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흥행 면에선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름값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만 <인터스텔라>에 대한 평은 엇갈리고 있다. 영상 그 자체가 압도적이고 경이롭다는 찬사에서부터 놀란의 야심이 무리한 시도를 빚어냈다는 평까지 극단적인 감상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가족영화다. 169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황폐한 지구를 떠나 살 만한 이주지를 발견하려는 탐험가들의 모험이 그려지고, 그로부터 사랑, 그 중에서도 가족애가 강조되는 장대한 작품이다.

블랙홀과 웜홀, 상대성이론 등 물리학적 개념들을 필름 위에 형상화하려는 노력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이래 몇몇 영화들이 그러했듯 더없이 야심찬 시도로까지 여겨진다. <인셉션>을 통해 시공간의 비틀림을 영상을 통해 표현한 바 있는 놀란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거대한 파도와 우주정거장의 거주지 등을 비슷한 수법으로 연출하는 등 영상을 매만지는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인터스텔라>에서 엿보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흔적들

지난해 개봉해 화제를 모았던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가 있는 그대로의 우주공간을 스크린에 재현하기 위해 공들였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이 재현한 우주는 기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비티>가 이룩한 적막한 서스펜스보다는 한스 짐머의 웅장한 사운드를 통해 공간을 압도하는 방식이 <아마겟돈>이나 <아폴로 13>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방법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웜홀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고 그 안에서 가족애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과학의 극단에서 초현실적 상상으로 이어간 점 등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만큼 주제에 있어서나 방법론의 차원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역에서 전형적인 이야기를 시도했다.

영화에서 현재의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미래, 20세기의 풍요는 오간데 없고 인류는 전 세계적인 식량난에 허덕인다. NASA의 과학자들은 더이상 지구에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류가 이주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서는 나사로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주인공인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는 엔지니어 출신의 농부로 딸과 아들을 키우는 중년의 남자다. 과학과 기술이 무너진 시대에 엔지니어로 살아갈 수 없었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나사로 프로젝트에 발탁되고, 웜홀을 통해 새로운 은하로 나아가 인류의 정착지를 찾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이후 인류를 구하기 위해, 다시 딸과 만나기 위해 반드시 임무를 성공시켜야 하는 쿠퍼의 간절한 가족드라마가 펼쳐지고, 웜홀과 블랙홀이 빚어낸 시공간의 비틀림이 SF적 매력을 선사한다. <인터스텔라>에서 눈여겨 볼 두 가지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는 흥미로운 이론에 상상력을 버무려 우주의 신비를 표현한 공상과학적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신비롭고 거대한 우주 속에서도 쿠퍼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인 가족애, 즉 사랑이다.

하지만 이는 형식과 내용의 측면 모두에서 기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우주의 표현은 기술적인 향상 이외에는 기존 작품들과 근본적인 차별점이 없고 주제의식 역시도 그 완성도를 논외로 치더라도 흔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기승전사랑'의 전개, 사랑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리라?

인터스텔라 우주공간을 날아가는 인듀어런스호

▲ 인터스텔라 우주공간을 날아가는 인듀어런스호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물론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차원의 시공간을 2차원의 스크린 위에 옮기려 한 놀란의 시도는 비록 무모했을지라도 용감하다 할 만하다. 또한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이 도달하지 못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우려 한 시도 역시 창의적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와 맞물려 초현실적 상상쯤으로 귀결되는 부분이 몹시 아쉽다. 엄청난 능력을 지닌 로봇을 블랙홀에 집어넣어 양자역학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정보를 얻고 이를 이진법의 기호로 바꿔 초현실적 방식으로 지구에 전달한다는 설정은,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한 것이 아버지와 딸의 진실한 사랑이라는 점은 SF영화로 이끌어 온 러닝타임이 무색할 만큼 유치찬란하게 다가온다.

어디 그 뿐인가. 영화가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었을 그 신비하고 위대한 정보는 마침내 딸이 인류를 구하는 과학적 성취로 이어지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급진전되기에 이른다. 분노한 오빠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포옹하고, 중력방정식을 풀고 '유레카'를 외치며 하늘로 종이를 흩뿌리고는 뒤따르던 남성과 키스하는 딸의 모습, 비틀린 시공간에 의해 왜곡된 모습으로 아버지와 딸이 만나고 다시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은하를 가로지르는 결말까지.

영화는 후반 30분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할 수 있는 전형성을 거의 모두 보여주려 작정한 듯하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를 힘있게 끌어온 긴장감도 결국엔 '사랑이 답이더라'는 마스터키적 결론 앞에 희석될 뿐이고, 이 신파 아닌 신파적 이야기 속에서 우주와 모험, 과학은 그저 들러리로 뻘쭘하게 서있을 뿐이다.

물론 <인터스텔라> 만의 독창적인 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단 몇 시간의 임무를 수행하고 모선으로 돌아온 쿠퍼가 지난 20여 년간 자식들이 지구에서 보내온 영상을 보며 고뇌하고 절망하는 모습은 이제껏 스크린을 통해 경험한 적 없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파격적인 생김새는 물론, 능력 역시 엄청났던 로봇들과 <인셉션>에서 보여진 바 있지만 여전히 압도적이었던 파도치는 영상 등도 신선했다.

하지만 웜홀과 블랙홀에 대한 표현 역시 제한적이었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전면을 인식하기 어렵도록 빠르게 지나갔다는 점은 적잖이 아쉬웠다. 더욱이 만 박사(맷 데이먼 분)의 행성에 도달한 이후부터 결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전까지의 장점을 단번에 뒤집을 만큼 전형적이고 그래서 실망스러웠다.

'기승전사랑'의 서사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서사에 강점이 있는 연출자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단순했고, 많은 부분에서 칼을 댄 듯한 거친 편집과 구성이 더해지며 실망을 남겼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이기에 조금은 더 짜임새 있는 작품이기를 기대한 게 지나쳤던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짊어지고 팬들의 기대와 대면해야 하는 것이 유명 감독의 숙명 아니겠는가.

오래도록 기대했던 <인터스텔라>는 내겐 기대에 걸맞지 않는 아쉬운 영화였다.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려 했다는 감독의 인터뷰는 더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재능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려 한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 게재하였습니다
인터스텔라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크리스토퍼 놀란 매튜 매커너히 앤 해서웨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