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시>의 한 장면.

영화 <루시>의 한 장면. ⓒ UPI코리아


<그랑블루> <니키타> <레옹> <제5원소> <잔 다르크> 등 수많은 히트작들을 양산한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뤽 베송의 최신작 <루시>가 지난 3일 국내에 개봉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자리를 빼앗기기 전까지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이 영화에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최민식이 엔딩크레딧에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릴 만큼 큰 배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일각에서는 뤽 베송을 탐탁치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그의 마지막 작품은 이미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이후 나온 영화들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2000년대 들어 감독보다 제작자와 각본가로 활발히 활동했고 지나치게 상업성에 치중한 나머지 작가로서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평을 받아왔다.

지난해 나온 <위험한 패밀리>도 마찬가지였다. 로버트 드니로와 미셸 파이퍼 같은 이름난 배우들을 내세웠음에도 특별한 매력이 없는 범작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 때는 누벨이마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또한 헐리웃에 대항하는 프랑스 영화계의 기수로 꼽힌 바 있는 뤽 베송에겐 민망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21세기 관객들에게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뤽 베송

이런 상황에서 <루시>는 뤽 베송이 현재 관객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야만 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장르에서 승부하길 선택한 것 같다. 지난 2004년에 초고를 완성하고 수차례에 걸쳐 보완한 <루시>는 SF와 판타지가 적절히 버무려지고 주인공과 개성강한 악당이 전면적으로 부딪힌다는 점에서 <제5원소>와 닮아있다.

뿐만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시키는 오프닝과 후반 15분의 연출은 이 시도가 그 자신의 영화적 세계관 안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는 듯하다. 유인원이 처음으로 도구를 집어들고 하늘로 던지자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 그 뼈다귀가 우주 공간에서 빙글빙글 돌던 우주선으로 대치되던 그 유명한 장면은 이 영화에서 루시가 내민 손가락과 우주로의 확장을 통해 반복되는 듯하다.

루시 확장된 뇌의 능력을 통해 미스터 장(최민식 분)의 기억을 읽는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

▲ 루시 확장된 뇌의 능력을 통해 미스터 장(최민식 분)의 기억을 읽는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영화의 주인공은 루시라는 평범한 여자다. 그녀는 우연치 않은 계기로 국제적인 범죄조직의 수장인 미스터 장에게 납치되어 몸 속에 강력한 합성 약물을 넣은 채 운반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범죄조직에 의해 끌려가던 그녀가 조직원에게 폭행을 당하고 몸 속 약물이 체내에 퍼지게 되며 영화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강력한 힘을 지닌 약물이 그녀의 뇌를 깨우고 그로인해 활성화된 뇌는 100%의 사용량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루시가 인간이 단 한 차례도 도달한 적 없는 뇌사용량을 넘어서면서부터 영화 역시 판타지의 경계를 넘어간다.

인간이 뇌를 100% 활용하게 된다면?

영화는 인간이 뇌의 더욱 많은 부분을 사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루시가 뇌를 점차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보이는 변화는 감독이 뇌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 루시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체를 조절하는 능력을 발휘하고 뛰어난 감각을 갖게 되며 온갖 대역의 주파수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넘나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뇌의 활성화는 단순히 능력치의 향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 중반부터 기계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장면과 기억하기 위해 남성 형사를 데리고 다닌다고 말하는 루시의 모습은 뇌사용량의 증가가 곧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다시말해 우리는 뇌를 10%만 사용하기에 지금의 인간인 것이며 뇌를 사용하면 할 수록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신이다.

 모든 주파수대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

모든 주파수대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 ⓒ UPI코리아


의식적으로 관객의 뇌를 깨우는 영화

<루시>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는 편집이다. 초반부 루시와 리처드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쥐가 덫 앞에서 주저하는 장면과 교차편집되었고 루시를 향해 다가서는 조직원들의 모습은 영양을 사냥하는 치타의 모습과 교차편집되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의도적으로 깨는 이와 같은 편집은 관객의 의식을 깨우는 장치로 기능한다.

나아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가운데 '아담의 창조'가 교차편집되고 곧이어 주인공 루시와 유인원 루시를 통해 오마쥬되는데 이는 뇌의 100% 사용이 곧 신의 영역에 다가서는 것임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사라진 루시가 어느곳에나 존재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건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의 영역에 다가선다는 영화의 결말이다. 동시에 우주가 담긴 유에스비의 형태로 지적유산을 남기는 건 영화가 말하는 삶의 목적인 동시에 영화의 주제다.

영화는 후반부의 전개를 통해 이를 드러내는데 그 방식이 꽤나 난해하고 파격적이다. 특히 시간을 초월해 과거로 향한 루시가 유인원 루시를 만나 손가락을 뻗고 곧이어 우주로 확장되는 영화의 마지막 10여 분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후반부를 연상시킬 만큼 독특한데 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가 되었다.

뚜껑을 연 뤽 베송의 야심작은 예상한 것처럼 화끈한 액션영화는 아니었다. 뇌와 시간에 관한 독특한 SF에 가까웠다. 요즘 극장가에서 보기 드문 전개방식과 상징의 사용이 기존의 영화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지만 충분히 영화에 녹여내지 못한 주제가 난해하게도 느껴졌다. 뤽 베송의 새로운 영화는 그를 다시금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연출자의 반열로 이끌 만큼 훌륭하진 않았으나 적어도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한편 지난 3일 개봉한 <루시>는 개봉 4일 만에 69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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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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