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보카머스> 포스터

영화 <인보카머스>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여름이면 극장가를 공포영화가 접수하던 예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1500만 관객을 일찌감치 동원하고도 <명량>의 기세는 멈출 줄 모르고 유쾌한 어드벤처물인 <해적>도 꾸준히 관객수를 늘여 가고 있다.

<소녀괴담>, <유아 넥스트> 등이 연이어 개봉하긴 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어느덧 입추가 지난 시점에서 날마저 쌀쌀해지면 공포영화의 호기는 또 1년 뒤로 가버릴 것이기에, 아직 괜찮은 공포영화를 한 편도 건지지 못한 팬들의 마음은 적잖이 조급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편의 공포영화가 개봉했다. 다소 늦긴 했지만 블록버스터들에 빼앗긴 분위기의 반전을 시도하는 것이다. 스타덤에 오른 두 배우 정유미와 연우진을 내세운 한국공포영화 <터널 3D>와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의 헐리웃 공포물 <인보카머스>가 그 주인공이다.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블록버스터들에 눌려 상영관 확보조차 쉽지 않지만 앞서 나온 공포물들에 비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두 영화는 올 여름 마지막을 장식할 공포영화라는 점에서 공포영화 팬들에겐 주목받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공식을 따르다

<인보카머스>는 전형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헐리우드 공포물이다. 공포영화의 큰 갈래인 엑소시즘과 보는 이를 깜짝 놀래키는 장치를 적극 활용해 악령으로부터 시민과 가족들을 지켜내려는 형사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형사인 주인공이 신부와 함께 악령으로부터 가족을 지킨다는 설정은 그것만으로도 영화가 어떻게 풀려갈지를 가늠하게끔 한다. 공포영화에 형사와 신부는 단골로 등장하는 직업이고 악령으로부터 위협받는 순진한 어린아이 역시 엑소시즘 영화의 흔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세계로 나오려는 악마를 저지하는 형사와 신부의 이야기는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고 안정적이다. 이런 설정을 채택한 덕분에 영화는 장단이 확실한 작품이 되었다. 방향성이 뚜렷하고 안정적인 대신 참신함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영화는 중반까지는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보이며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후 클라이막스 부분부터는 퇴마 작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엑소시즘 영화로 전환된다. 이런 구성은 다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드라마적 짜임새보다 자극적인 공포를 선호하는 관객에겐 호소할 수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 <인보카머스> 스틸 컷. 의문의 기호 '인보카머스'를 발견한 서치(에릭 바나 분).

영화 <인보카머스> 스틸 컷. 의문의 기호 '인보카머스'를 발견한 서치(에릭 바나 분).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상업적 요소 적극 배합한 '친절한' 엑소시즘 공포영화

공포영화치고는 흔치 않게 헐리우드의 톱스타인 에릭 바나를 주연으로 내세웠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주연배우 한 명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가는 만큼, 에릭 바나의 노련한 연기는 이 영화가 가진 분명한 장점이다. 단순한 설정으로 넓이를 넓히지 못했기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배우의 기용은 적절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단순한 구성과 배우의 안정된 연기에도 연출은 미흡한 구석이 많다. 자극적이고 일회적인 장치들이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본질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연출은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더 깊고 어두운 공포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보러 온 관객에게 적절한 수준의 공포를 친절하게 전달하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상업적 공포영화'인 것이다.

영화에 액션과 코미디적 요소를 적절히 섞은 부분이 이를 증명한다. 주인공의 파트너인 버틀러가 악당들과 대결을 펼치는 장면들은 액션 영화의 그것이라 해도 될 만큼 힘주어 연출되었고 영화 막판 엑소시즘 행위를 지켜보던 흑인 형사의 모습은 에디 머피나 마틴 로렌스 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에겐 생소할 수 있는 엑소시즘의 단계를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도 기존 공포물과는 다른 독특하고 친절한 연출방식이다.

이런 장면들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이런 시도가 기존의 영화와는 다르다는 점은 의미있다. 공포의 강도를 줄인 대신 문턱도 낮춘 이런 영화는 마치 매장에 진열된 저지방 우유나 다이어트 콜라를 보는 듯하다. 정통 공포영화의 팬들에게는 어색할 수 있지만 한 해에 단 몇 편의 공포물을 접하는 일반 관객에게는 꽤나 괜찮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공포물의 만남은 전형적으로 보이면서도 뭔가 다른 영화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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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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