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광양중학교 정문 앞을 가로막은 경찰차.
 서울 광양중학교 정문 앞을 가로막은 경찰차.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윤여강(49) 교사가 교문에 들어설 때만 해도 학교는 어두웠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17일 오전 8시 40분, 윤 교사가 서울 광진구에 있는 광양중 3학년 1반 교실 문을 열었다.

교실에 앉은 여학생 서너 명은 벌겋게 부어오른 눈을 비비고 있다. 이들은 일제고사 날 진행된 체험학습을 안내한 '죄목'으로 이날 자신의 담임에게 전달된 파면 통지서 소식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파면·해임을 당한 교사들 가운데 이들의 담임인 윤 교사는 유일한 중학교 교사다.

체험학습 안내죄 '파면'? 학생들은 알고 있었다

"교장·교감 선생님 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싶어요."

교실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학교 최아무개 교장이 교실에 따라 들어간 탓이다. 1교시 교과담당 교사까지 교실 안 교직원은 모두 3명. 복도 밖까지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 선생님! 우리 선생님이에요. 나가라고 하지 마세요."

교실 앞 복도에서는 학교 임원 등을 맡고 있는 학부모 4명이 유일하게 이곳에 온 기자인 나를 막고 나섰다. 복도 한켠에서는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한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곧바로 경찰 5명이 복도에 들이닥쳤다. 오전 9시 22분의 일이다.

이 학교 최 교장은 경찰에게 현장 상황을 다음처럼 설명했다.

"어제 밤 12시부로 파면이 되었으니 윤 교사는 오늘부터 공무원 신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가 끝까지 수업을 하겠다는 거예요. 민간인 신분인데 버티고 있는 것이죠."

굳게 잠긴 교문.
 굳게 잠긴 교문.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오전 9시 58분부터 이 학교 정문 앞 철문이 굳게 닫혔다.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개의 자물쇠가 정문에 걸려 있다. 정문으로부터 30cm 앞에 경찰차가 맞닿아 섰다. 학생들이 집단으로 뛰어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대비책으로 보였다.

광진경찰서 소속 경찰 12명이 교문 안팎을 오갔다.

한 시간 반가량의 시간의 흐른 뒤인 오전 11시 39분. 이 학교 김아무개 교감은 경찰에게 다음처럼 말했다.

"차로 아예 교문을 확실히 막아버리세요."

빗방울이 굵어졌다. 겨울 소낙비인 셈이다. 그 사이 경찰이 타고 온 차는 3대로 늘어 있었다. 김 교감과 대책을 궁리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하려면 여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또 여경을 불러와야 하고…."

교문을 사이에 두고 기자와 인터뷰하는 윤여강 교사.
 교문을 사이에 두고 기자와 인터뷰하는 윤여강 교사.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정오쯤 당초 4교시까지 단축수업 예정이었는데, 학생들이 하교하지 않았다. 이날 아침 학교 확성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오늘 단축수업은 하지 않고 6교시까지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교문 밖에서 한숨을 쉬었다. 한 학부모는 "오늘 오전수업만 하는 줄 알고 아이를 태워 지방을 가려고 했는데 왜 갑자기 하교 시간을 늦췄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차로 아예 교문을 막아버리세요"

낮 12시 25분쯤 한 방송사 카메라 차량이 도착했다. 정문을 가로막았던 경찰이 슬며시 뒷걸음질쳤다. 광진경찰서의 한 형사는 "신고받고 나왔으니까 정문을 막았다가 밥 먹으러 가기 위해 차를 뺐다"고 둘러댔다.

윤 교사와 기자들 사이에 닫힌 교문을 사이에 두고 인터뷰가 진행됐다. 윤 교사는 학생들에게 다음처럼 당부를 했다고 한다.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떳떳하고 책임 있게 행동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길 바라고, 선생님도 그렇게 하겠다."

동료교사의 배웅을 받으며 교문을 나서는 윤 교사(오른쪽).
 동료교사의 배웅을 받으며 교문을 나서는 윤 교사(오른쪽).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윤 교사는 오후 1시쯤 교문을 나섰다. 오후 2시부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진행되는 부당징계 철회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다음처럼 말했다.

"저는 아이들 안아주고 수업도 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교실에 가서 조회도 하고 아이들도 만날 겁니다."

하지만 교문 앞 경찰차가 사라지고 닫힌 교문이 열리지 않는 한, 이 같은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최근 주요기사]
☞ '파면' 교사의 마지막 출근... "아이들에 인사라도"
☞ '삼순이 아빠' 맹봉학씨, 경찰 출두
☞ 고양이 가면쓰고 명동에서 송년모임을!
☞ 믿었던 '내비' 아가씨, 가끔은 정신이상
☞ 머리아픈 국민 여러분, 약국에 두통약 갖다주세요
☞ 웰메이드 <그사세>, 왜 실패했을까
☞ [엄지뉴스] MB에 열받은 사람, 명동에 모여라
☞ [E노트] 동영상 - "미쳤어, MB가 미쳤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전교조, #서울시교육청, #파면교사, #윤여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