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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의 한 장면.
 <그들이 사는 세상>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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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가 16일 끝났다. 1회부터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해 온 시청자의 입장에선 아쉽기 그지없다. 그런데 마지막회 시청률을 보니 아쉬운 마음에 서글프기까지 하다. 문득 <그사세>에서 자주 나왔던 장면 하나가 오버랩 된다. 드라마 방영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드라마국 사무실 유리벽 게시판에 붙여지는 시청률 표, 그걸 보고 희희낙락하는 손규호(엄기준)와 침울해하는 정지오(현빈)의 희비가 엇갈린 모습, <그사세> 제작진은 드라마 방영기간 내내 정지오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그사세>는 방영 전부터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방송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된, 그들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될 정도인 표민수 PD·노희경 작가 콤비의 작품이라는 점, 언제나 대중의 관심과 선망의 대상인 연예계와 드라마 제작현장을 다뤘다는 점, 그리고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송혜교와 미남스타 현빈이 주연배우라는 점 등등…. <그사세>가 가진 화제성은 여느 드라마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그에 따른 언론과 시청자의 관심도 대단했다.

<그사세> 첫 회 시청률은 7.1%.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치욕을 기록했던 전작 <연애결혼>의 3.5%대보다 높게 출발했다. 뜨거운 관심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이었지만 나쁜 시작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이후 8주, 16회가 방송되는 동안 <그사세>의 시청률은 마지막 회(7.7%, TNS미디어코리아)를 제외하면 한 번도 첫 회 시청률을 넘지 못했다. 경쟁작인 <에덴의 동쪽>이 25%대의 안정감 있는 시청률로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타짜> 역시 12~15%대의 시청률로 꾸준히 2위 수성에 성공한 가운데 <그사세>는 내내 꼴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청률 외면 속 노희경·표민수 <그사세> 종영

<그들이 사는 세상> 제작발표회
 <그들이 사는 세상> 제작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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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드라마, 소위 '웰메이드'라 칭송받는 잘 만든 드라마들이 '마니아용'으로 전락해 한 자릿수 시청률에 허덕이며 큰 반향 없이 조용하게 퇴장하는 모습은 종종 있어 왔다. 지금까지 표민수 PD와 노희경 작가의 작품들, 예컨대 <거짓말>이나 <바보같은 사랑> 등도 작품성 면에서는 극찬을 받았지만 시청률로는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니, 달랐어야 했다. 전에 없이 "스타 배우를 캐스팅했고, 누구보다 잘 아는 세계를 그린만큼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겠냐"며 욕심을 내비친 노희경 작가였기에, <그사세>는 잘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또 실패다. 것도 아주 처참하게. 대체 왜일까?

일단 익숙지 않은 극의 짜임새가 한몫했다. <그사세>는 회마다 소제목이 붙는 옴니버스 식 구성으로 이뤄졌다. 시즌제인 미국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기법으로 시트콤이 아닌 미니시리즈에선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보기 드문 경우이다. 옴니버스 식 드라마는 좋게 얘기하면 전편을 보지 않아도 당장 극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극의 긴장감이 떨어져 몰입이 어렵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시청자가 극에 빠져들지 못하니 채널 고정이 어렵고, 그러니 시청률이 오를 까닭이 없는 것이다.

지나친 리얼리티 강조도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데 일조했다. <그사세>는 그야말로 리얼리티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며 방송가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감탄했다고 하니 그 수준이 짐작 간다. 그런데 이건 바꿔 말하면 '아는 사람만 보는' 드라마란 소리가 된다. 일반 시청자들로선 재미가 없다. 판타지가 없기 때문이다. 똑같이 연예계와 드라마 제작을 다룬 <온에어>에는 판타지가 있었다. 톱스타 '오승아'가 시청자의 판타지를 자극했다. 사람들은 드라마 속 오승아를 보며 그녀가 실존인물인 것처럼 열광했고, 이는 곧 '오승아 신드롬'으로 발전했다.

'그들만의 세상' <하얀거탑>이 성공한 이유

<그들이 사는 세상>의 한 장면.
 <그들이 사는 세상>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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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사세>는 포장할 줄 몰랐다. 있는 그대로의 방송가 현실을 아무 꾸밈없이 소소하게 풀어냈기에 그 안에는 환상도, 자극도 없었다. 송혜교는 비록 인형같은 외모로 예쁘게 나왔지만, 오승아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잔뜩 기대한 시청자 입장에선 맥이 빠지게 된다. 또 있다. 리얼리티를 지나치게 표방한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는 사람만 보는, 소위 '관계자용 드라마'가 됐다. 방송가 현실을 잘 모르는 시청자 입장에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공감이 안 되는 것이다.

2007년 초 숱한 화제를 불렀던 의학 드라마 <하얀거탑>의 경우를 보자. <하얀거탑>도 리얼리티를 잘 살린 드라마였다. 심지어 그 흔한 멜로 라인 하나 없는, 순도 100%의 전문 드라마였다. 그런데 <하얀거탑>은 성공했다. 주말드라마였음에도 마지막 회에서 23.2%의 높은 시청률을 올렸고, 주인공 장준혁은 악역이었지만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청자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왜일까?

그것은 <하얀거탑>이 다름 아닌 '직장인의 애환'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내의 권력 암투, 외과 과장직을 손에 넣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장준혁의 모습은 곧 직장이라는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사회 직장인의 다름 아니었다. 바로 그 점이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내게 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공감 키워드',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필수조건인 이것을 <하얀거탑>은 갖고 있었지만, <그사세>는 갖지 못했다. 바로 그 점이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것이다.

잘못된 마케팅, <그사세> 실패 불렀다

<그들이 사는 세상> 촬영현장.
 <그들이 사는 세상>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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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마케팅도 문제였다. <그사세>는 여러모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온에어>와 방송 전부터 비교당하면서 언론에 오르내렸다. 충분히 시청자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였다. '화려한 연예계와 드라마 제작현장을 <온에어>와는 어떻게 다르게 담아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가 방영 이후 시청률이 좋지 않자 노선은 급변했다. '노희경 마케팅'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노희경 작가 인터뷰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시청률 상승에 아무 도움이 못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희경'이라는 브랜드는 '잘 만들긴 하지만 시청률은 보장이 안 되는 드라마'의 대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온에어>의 마케팅은 꽤 훌륭했다. 극 초반 톱스타 '오승아'에 집중해 언론에 기사를 띄워 관심을 집중시키더니, 이후 매 회 등장하는 새로운 카메오에 이목을 집중시켜 '카메오 마케팅'을 펼쳤다. 극의 중·후반부터는 '오승아 비디오'로 시청률 상승을 노렸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는 시청자들 덕분에 <온에어>의 시청률이 오른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주연배우 송혜교의 연기력 논란도 있었다. <그사세> 이전까지 송혜교는 자타공인 시청률 보증 수표였다. <가을동화> <올인> <풀하우스> 등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는 언제나 대박을 쳤고, <그사세> 제작진도 그녀의 시청률 파워에 일정 부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극 초반부터 송혜교 효과는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그녀가 말하는 대사의 톤, 발음이 불분명하여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평이 쏟아졌다. 물론 주연배우가 연기를 못해도 시청률이 잘 나오는 드라마는 많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사세>에서는 아니었다.

<그사세>는 노희경 작가에게 있어 상업적으로 실패한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로 남게 되었다. 그의 팬이자 그의 작품의 열렬한 시청자로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사실 대진운만 좋았더라면 이 정도로 푸대접 받을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드라마는 끝났고, 남은 일은 패인을 분석해 타산지석 삼아 차기작에선 이런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될 거다. <그사세>는 끝났지만, 노희경의 작품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명품 드라마, 다음엔 꼭 그런 작품을 만들길 바라본다.


태그:#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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