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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6일) 늦은 밤, 기가 막힌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구산초등학교 정상용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일제고사를 보지 않도록 유도하고, 체험학습을 권장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파면당한 구산초등학교 정 선생님. 어젯밤 9시가 넘어 드디어 그 '파면 통지서'를 집에서 받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는 분한테 그 이야기를 듣곤 깜짝 놀랐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방학 때까지는 기다려줄 줄 알았는데. 헌데 파면통지서를 왜 집으로 보낸 거지?' 답답하고 이상했습니다.

마침, 오늘(17일) 아침 정상용 선생님이 학교 앞에서 출근 투쟁을 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른 아침 구산초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2월 16일 늦은 밤, 집에서 파면 통지서를 받은 구산초 정상용 선생님은 17일 아침, 학교 앞에서 출근 투쟁을 했습니다.
▲ 정상용 선생님을 들여보내 주세요! 12월 16일 늦은 밤, 집에서 파면 통지서를 받은 구산초 정상용 선생님은 17일 아침, 학교 앞에서 출근 투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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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진입 막힌 정상용 선생님

학교 앞은 시끄러웠습니다.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달라는 정상용 선생님, 그 선생님을 막는 교감 선생님, 이 상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 어느새 경찰차까지 학교 가까이 와 있더군요.

"파면을 제가 당했지, 제 아내가 당했습니까? 제 아이가 당했습니까? 파면 통지서를 어떻게 집으로, 그것도 늦은 밤 보낼 수 있는 겁니까? 작은 아이는 아직 이 일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데, 그 아이가 받은 상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학교에서 줘도 됐잖아요. 제가 언제 안 받겠다고 했습니까?"

선생님의 애절한 항의에도 선생님 앞을 막고 있는 교감 선생님은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보다 못한 동료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던집니다.

"아니, 왜 말을 못해요? 할 말이 있으면 대답을 해보시란 말입니다. 이게 무슨 교육이에요? 이래 가지고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란 말입니까?"
"아무리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도 그렇지, 도리는 지켜야 하는 거잖아요. 이게 행정 처리하듯이 뚝딱 그렇게 치를 일인가요?"
"무슨 형사 처벌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건 아니죠. 남들도 다 들어가는 학교 안에 왜 선생님만 못 들어가게 하는 겁니까?"

"우리 선생님 잘 못 한 거 없어요. 아이들한테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단 말이에요. 아이들하고 인사는 하게 해주셔야 되는 거잖아요."
▲ 제발 선생님 학교에 들여보내주세요. "우리 선생님 잘 못 한 거 없어요. 아이들한테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단 말이에요. 아이들하고 인사는 하게 해주셔야 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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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뛰어와 숨도 채 돌리지 않은 채로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발 선생님 학교에 들여보내주세요. 우리 선생님 잘못한 거 없어요. 아이들한테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단 말이에요. 아이들하고 인사는 하게 해주셔야 되는 거잖아요." 주저앉듯이 말하며 기어이 눈물을 터트립니다.

강한 말투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옵니다. 

"교육은 학부모, 학생, 선생님. 이렇게 3자가 같이 만들어가는 거지, 교감 선생님이 뭔데 여기서 막고 있는 겁니까?"
"이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거야. 일제고사 안 본 아이들이 어디 여기뿐이냐고. 아니 성적은 중요하다면서 아이들 졸업은 안 시킬 건가요?"
"정상용 선생님이 파면을 당하면, 일제고사 안 본 아이들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 아이들도 죄인인가요? 우리 아이가 며칠째 밥도 잘 못 먹고 인터넷만 하면서 불안해 해요. 아이들이 받을 상처, 어떻게 하실 거냐구요."

동료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아무리 애원하고 간청해도 정상용 선생님을 가로막은 교감 선생님은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교감 선생님을 향해 정상용 선생님은 다시금 외칩니다.

"아이들 생활 평가는, 성적 정리는, 졸업 준비는 어떡할 건가요? 대안 있으면 말 좀 해주세요. 그거라도 하게 해주셔야죠. 아이들 처지에서, 그저 아이들 처지에서만 생각해 주시라니까요. 저를 생각하라는 게 아니고요. 아이들 졸업 제대로 치러낼 방법 있다면, 제가 순순히 물러갈게요. 그러니까 제발 대답 좀 해 주세요!"

동료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학교 안에 들어간 선생님. 어제만 해도 웃으며 들어갔을 교실 문을, 슬픈 얼굴로 들어갑니다.
▲ 마지막 수업 동료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학교 안에 들어간 선생님. 어제만 해도 웃으며 들어갔을 교실 문을, 슬픈 얼굴로 들어갑니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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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간 정도 정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동료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정상용 선생님은 교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운동장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기다리던 학생들은 순간 환히 웃으며 "선생님 오신다!"하며 즐거워합니다.

정상용 선생님이 정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아이들만 보이면 "어서 들어가, 너희들은 들어가"하며 애절하게 말렸건만 차마 교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리던 아이들이었습니다. 

누가 쫓아올 새라 급히 움직이던 정상용 선생님. 어제만 해도 웃으며 들어갔을 교실 문을, 슬픈 얼굴로 들어갑니다. 저 문을 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발 저 뒷모습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빌어 봅니다.

교실 문 앞을 굳게 막아선 학부모들 외침에 조금은 주눅이 들었는지 결국 교감 선생님도, 더는 말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정상용 선생님은 어쩌면 마지막 수업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 교실 문을 지킨 학부모들 교실 문 앞을 굳게 막아선 학부모들 외침에 조금은 주눅이 들었는지 결국 교감 선생님도, 더는 말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정상용 선생님은 어쩌면 마지막 수업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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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로 항의하던 선생님, 결국 통곡하다

교실 문을 사이에 두고도, 아이들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 중에도 실랑이는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을 교실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교감 선생님, 교감 선생님을 말리는 동료 선생님들, 학부모들. 목소리는 높아지고, 여기저기서 울음도 터져 나옵니다.

"여기는 교실 앞이에요.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요. 교감 선생님, 이러시면 안 돼요. 행정적인 이야기는 정상용 선생님이랑 교장 선생님이랑 학부모들이랑 따로 하자구요. 여기서까지 이러시면 어떡해요."

교실 문 앞을 굳게 막아선 학부모들 외침에 조금은 주눅이 들었는지 결국 교감 선생님도 더는 말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정상용 선생님의 어쩌면 마지막 수업이 될지도 모를 시간이 흘러갑니다. 1분이 한 시간처럼, 그렇게….

창문 너머로 수업 장면을 지켜보는 마음들, 얼마나 애달팠는지 모릅니다. 학부모가 아닌 나도 저절로 눈물이 터져 나오는데, 다른 분들 마음은 오죽 힘들고 아팠겠습니까. 정문 앞부터 쭉 이 장면을 지켜보며, "내년에 저 꼭 6학년 담임 신청할 거에요. 그때도 두고 봅시다. 나도 자르나 안 자르나"하면서 교감 선생님께 큰소리로 항의하던 한 선생님,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십니다. 

창문 너머로 바라 본 아이들 얼굴은 정말 어둡기만 합니다. 울고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정상용 선생님 얼굴은 오히려 밝아 보일 정도입니다.
▲ “선생님, 힘내세요. 꼭 돌아오세요." 창문 너머로 바라 본 아이들 얼굴은 정말 어둡기만 합니다. 울고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정상용 선생님 얼굴은 오히려 밝아 보일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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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지 마세요! 아이들한테 초상권 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바라본 아이들 얼굴은 정말 어둡기만 합니다. 울고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정상용 선생님 얼굴은 오히려 밝아 보일 정도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 얼굴에서, 한결같은 마음만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때론 큰 목소리로 들리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선생님이 무슨 잘못을 하신 거예요!"

한결같은 그 마음, 저 칠판에 써 있는 글자 그대로겠죠.

"선생님, 힘내세요. 꼭 돌아오세요."

정말 우스운 건 몇몇 기자들이 교실 안 풍경을 사진으로 찍자 여태껏 교실 문 앞을 지키던 교감 선생님이 갑자기 "사진 찍지 마세요! 아이들한테 초상권 있습니다" 하면서 급히 몸을 움직여 말리는 겁니다.

몇몇 분들, 하도 기가 막혀서 웃기까지 합니다.

"교육권도 다 망가진 마당에 초상권 운운하다니!"

눈물을 흘리던 저마저도 그 말에 기가 막혀 웃음이 다 나오더군요. 오히려 그 교감선생님이 안타깝기까지 했죠. 저렇게라도 해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그 선생님이 맞닥뜨린 이 교육 현실도.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합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너희들한테까지 이런 모습, 이런 이야기 들려주어야 하다니.
▲ 피켓 시위를 바라보는 아이들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합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너희들한테까지 이런 모습, 이런 이야기 들려주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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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용 선생님 파면이 부당함을 알리는 피켓시위 장면입니다. 구산초등학교 정문과 후문으로 등교하던 아이들이 물끄러미 저 피켓을 들여다봅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아이들한테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너희들한테까지 이런 모습, 이런 이야기 들려주어야 하다니, 피켓시위를 말리고픈 마음까지 들 만큼 지켜보는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저 문구들을 읽어가는 아이들 마음은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우리 학교 왜 이래! 씨~"하고 짜증부리던 아이의 마음,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달래주고, 풀어줄 수 있을까요.

하긴 뒤늦게 나타난 교장 선생님, “학부모님들은 아래로 내려가시고, 외부 분들은 모두 나가세요! 이건 교장으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하고 경찰까지 동원해가며 외치더군요.
▲ 닫힌 교문 하긴 뒤늦게 나타난 교장 선생님, “학부모님들은 아래로 내려가시고, 외부 분들은 모두 나가세요! 이건 교장으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하고 경찰까지 동원해가며 외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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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넘게 마음 아픈 일들을 지켜보자니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생전 안 아프던 허리까지 여기저기 쑤십니다. 정상용 선생님이 아이들이랑 마주하고 있는 모습,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데 힘든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학교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긴 뒤늦게 나타난 교장 선생님, "학부모님들은 아래로 내려가시고, 외부 분들은 모두 나가세요! 이건 교장으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하고 경찰까지 동원해가며 외치는 꼴을 보면, 제 발로 걸어 나오지 않았어도 경찰들 손에 끌려 나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학부모가 아닌 건 맞지만 구산초등학교 근처에 살면서 구산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여럿 알고 있는 내가 외부인인 게 맞는지 좀 헷갈리긴 하지만요.

나오면서 보니 외부인, 아니 학부모들마저도 못 들어오게 저렇게 교문을 닫아 놓았더군요. 참지 못한 몇몇 학부모님들이 저렇게 교문을 지키며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영화 제목이 갑자기 떠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높으신 분들께 탄원합니다

정상용 선생님이 평소에 얼마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펼쳐왔는지, 그런 선생님들을 학부모들이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급히 만든 탄원서 문구 하나하나에서 잘 엿보입니다.
▲ 학부모 탄원서 정상용 선생님이 평소에 얼마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펼쳐왔는지, 그런 선생님들을 학부모들이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급히 만든 탄원서 문구 하나하나에서 잘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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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부모가 나눠준 탄원서입니다. 정상용 선생님이 평소에 얼마나 아이들을 위해 성실한 교육을 펼쳐왔는지, 그리고 그런 선생님들을 학부모들이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급히 만든 탄원서 문구 하나하나에서 잘 엿보입니다. 이리저리 연락받고 학교로 찾아 온 학부모들만 이십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구산초등학교 학부모가 아닙니다. 하지만 정문 앞에서, 교실 앞에서 아이들을 걱정하며 애태웠던 마음만은 학부모님들과 똑같았습니다. 파면당한 정상용 선생님보다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자꾸만 눈물이 나왔으니까요. 

비록 학부모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이 나라 교육의 앞날을 걱정하는 은평구 주민으로서, 파행을 저지른 서울시교육청에, 공정택 교육감한테, 그리고 이런 교육 현실을 방관하고 있는, 아니 오히려 권장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님께 감히 탄원해도 괜찮을까요?

"정상용 선생님은 시험 거부를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않았고,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준 것뿐입니다. 따라서 교육과정 이외에 실시하는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의 선택권을 안내한 일이 결코 정상용 선생님을 파면시킬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정상용 선생님이 다시금 교실에서 아이들과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파면 결정을 철회해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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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제고사, #교육청, #파면, #체험학습 , #공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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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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