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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에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지체 없이 함흥으로 떠나라."

전령이 전해준 아버지 이성계의 지시는 간단했다. 전후사정 설명 없이 단순명료했다. 하지만 짧은 글 속에 긴박한 사연이 담겨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급하게 휘두르느라 엇나간 아버지의 수결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BRI@정벌에 나선 장군이 개선하거나 전사하여 유골이 돌아온 것도 아니고 가족을 피난시키고 있으니 변고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버지의 신변에 상서러운 일이 아니라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일이 발생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무렵 개경에 있던 이성계의 부인 한씨와 함흥에 있던 제2부인 강씨는 포천 전장(田莊)에 있었다.

그렇다고 제1부인 한씨와 제2부인 강씨가 한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씨는 재벽동(宰壁洞)에 있었고 강씨는 금현리 궁말의 철현(鐵峴)전장에 있었다.

"지체 없이 개경을 떠나라."

아버지의 서찰을 받아 든 방원은 난감했다. 개경에는 결혼 6년차에 접어든 어여쁜 색시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들처럼 보살펴 주는 장인 민제와 처가가 이웃에 있었다. 인사도 없이 떠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되었다.

"데리고 갈까?"

생각해봤지만 이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 한 필의 말에 두 사람이 타고 흐느적거렸다가는 왕군에게 붙잡힐 수 도 있었다. 냉정한 심정으로 단념했다. 아내의 얼굴을 보면 마음 약해질까봐 집에 들르지 않고 말에 올랐다. 순간의 결단이었다.

선죽교를 지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 태조 이성계의 수결(서명)
ⓒ 이정근
선지교(선죽교)를 지나 개경의 동쪽 관문 숭인문을 빠져나온 방원은 뒤돌아 봤다. 자신이 달려오며 피어오른 흙먼지만 뽀얄 뿐 추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말채찍을 감아쥐며 내달렸다. 앞만 보고 달렸다. 정신없이 얼마쯤 달렸을까? 강물이 앞을 가로 막았다. 임진강이다. 강을 건너지 못하면 포천 가는 길은 포기해야 한다.

나루터는 평온했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포졸 하나가 어슬렁거린다. 관군과 백성들이 이성계의 회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철릭 휘날리는 도승(渡丞)관은 보이지 않았다. 부보상 틈바구니에 끼어 거룻배에 올랐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장사꾼들을 살피던 포졸이 방원을 쳐다보더니만 시선을 내린다. 행색으로 보아 개경의 관리를 알아본 것이다.

사공의 콧노래가 강바람을 타고 흐른다. 때 맞춰 불어오는 순풍에 거룻배가 임진강을 미끄러져 갔다. 후덥지근한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강바람이 상쾌했지만 이방원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거룻배의 속도가 이렇게 느린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 때 얼마나 가슴 졸이고 애가 탔는지 훗날 이방원은 등극한 후에도 배타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행색은 선비임에 틀림없는데 땀과 먼지에 범벅이 된 몰골이 우스꽝스러운지 부보상들이 자꾸만 쳐다보며 수군거린다. 방원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스윽 문질렀다. 마음은 급하고 거룻배의 속도는 여의치 않으니 흘러내리는 것은 땀방울이었다. 강을 건널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빨리 건너편 파주 땅에 닿기만 바랄 뿐이다.

간신히 추격자 따돌리자 나타난 건 산적소굴

이윽고 거룻배가 파주 임진리에 닿았다. 부리나케 배에서 내려 말에 올라 채찍을 날렸다. 달리는 말에서 나루터 건너편 장단을 바라보니 개경에서 달려온 한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했다. 이쪽을 향하여 손을 휘두르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말과 이 말 사이에는 말이 통하지 않은 강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강을 건넜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다. 노고산에 다달았을 때 땅거미가 내리며 어둠이 짙어졌다. 정상 마루턱은 양주 산적들이 출몰한다는 여우고개가 아닌가. 그렇지만 지체 할 수 없었다. 추격하는 자들에게 잡히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아버지에게 누가 된다. 두려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밤을 새며 쉬지 않고 달렸다.

어떻게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온몸은 땀으로 후줄근했고 말도 지쳐 있었다. 회암사를 지날 무렵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둠을 뚫고 여명이 열리기 시작 한 것이다. 붉은 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포천 땅에 닿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받으며 달리는 마상(馬上)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달리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흥으로 가라는 지시를 따랐을 뿐 자기 생각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철저히 타의다. 약관을 갓 넘은 21살 젊은이는 아직 세파에 오염되지는 않았었다. 정치가 무엇이고 야망이 무엇인지 아직은 몰랐다. 이방원은 지금 이순간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달리지? 나라? 가족?"

자문해 보았지만 나라도 가족도 아니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고려 조정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정5품 전리정랑직에 충실해야 했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개경에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지 않은가.

"그럼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안 나왔다. 그렇지만 쉼 없이 계속 달렸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말 타고 달리는 이 사나이는 국가를 위해 달리는 것도 아니고 가족을 위해서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혈(血)이었다. 핏줄이 연결된 아버지의 명을 받아 자신과 핏줄이 연결된 어머니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방원에게는 어떤 정치적인 색깔이나 이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혈연이었다. 관직도 팽개치고 아내도 개경에 두고 말 달리는 방원에게는 국가도 가족도 핏줄의 하위개념이었다.

피 끓는 젊은이를 시대가 불러냈다

훗날 이복동생을 가차없이 처단했다. 등극 후에는 처남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베면서 같은 사건에 연루된 말썽꾸러기 세자 양녕대군은 죽이지 않았다. 이방원의 생애를 짚어보면 자신과 연결된 순혈(純血)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친정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것에 불만이 쌓인 원경왕후 민씨가 투기의 도가 넘어서자 폐비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도 진화에 나선 것이 이방원이다. 슬하에 양녕, 효령, 충녕, 성녕 등 아들을 생각해서이다.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을 때, 왕의 장인이며 자신의 사돈 심온을 명나라 사행 길에 의주에서 체포하여 처단한 일이 있다. 역적의 딸을 국모로 모실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세종비(妃) 소헌왕후의 폐비문제가 거론되자 소용돌이를 잠재운 것이 이방원이다. 소헌왕후 슬하에 세종의 왕위를 이어받을 향(문종)과 수양, 안평, 금성 등 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예외 상항은 있었다. 동복형 방간의 죽음이다. 제2왕자의 난 때 희생된 방간은 동모(同母)형제다. 기록은 이방원이 죽인 것으로 되어 있지만 과연 이방원이 자신의 동모형 방간을 죽였을까?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이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간 사나이, 그의 흔적이 우리의 역사가 되어버린 태종 이방원. 성리학을 공부했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던 그가 정치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 단초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사력을 다하여 포천으로 달려간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벌군이 순간에 반란군이 되는 혼란의 시대가 피 끓는 젊은이 21살 사나이를 불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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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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