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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에서 압록강을 건너온 이성계는 언덕에 올라 군사들의 도강을 독려했다. 등에 활을 메고 백마에 올라있는 모습이 결연한 의지에 차있었다. 똑같은 거리이지만 건너 갈 때보다도 돌아오는 길이 신속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압록강을 건너온 것을 확인한 이성계는 군사를 모아놓고 명령했다.

"말 머리를 개경으로 돌려라"

@BRI@반란군이 된 정벌군이 개경을 향하여 출발했다. 기이한 것은 정벌군이었을 때보다도 반란군이 된 이후에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사기가 넘치는 것도 화를 부른다는 것을 간파한 이성계는 명을 내렸다.

"백성의 오이 한 개만 빼앗아도 마땅히 처벌하겠다."

들떠있는 군사들의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 추상같은 명령이었다.

위화도로 진군할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백성들이 웃음을 머금은 채 손을 흔들었다.오뉴월 삼복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행군하는 군사들에게 마실 물도 내다 주었다. 농사짓고 사는 백성들은 전쟁이 터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전화(戰禍)에 휩쓸리면 죽고 다치고 남부여대하여 피난 가는 것은 애꿎은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군사들보다 먼저 압록강을 건넌 한필의 검은 말은 쏜살같이 달렸다. 오뉴월 뙤약볕에 목이 마르지만 물 마실 시간도 없이 계속 달렸다. 개경에 있는 방원에게 화급하게 전하라는 서찰을 품에 넣은 전령은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흙먼지 일으키며 쉴 새 없이 달렸다.

방원에게 '회군'을 전하라

가는 길목 성주에 들러 우왕의 처소를 찾았다. 이성계의 두 아들 방우와 방과가 우왕을 호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왕 진영은 아직 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성계의 아들 방우를 찾아 "아버지가 회군 하였으니 빨리 몸을 피하라" 는 말을 전하고 개경으로 내달렸다.

화들짝 놀란 방우와 방과는 몸을 피하려다 말고 화상(和尙)이 생각났다. 목숨이 위급한 이 상황에서 화상 혼자만 남겨두고 두 사람이 빠져 나간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화상은 이성계와 호형호제하는 이지란의 아들이다. 이지란은 여진족 추장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이성계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수많은 무공을 세운 이성계의 막역한 전우이다.

이성계가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최영이 개경에서부터 데리고 온 세 사람은 살며시 군막을 빠져나와 산속으로 몸을 숨겨 북행길에 올랐다. 아버지 이성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한참을 산속을 헤매다 마을로 내려와 역참에 메어놓은 말을 빼앗아 타고 북으로 달렸다.

개경으로 향하는 이성계의 전령이 대동문을 빠져나갈 무렵, 의주목사가 보낸 역참마가 도착했다. 진중에서 골라 낸 흑마가 분명 준마였나 보다. 이성계의 정벌군이 회군하여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한 왕군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전사(漕轉使) 최유경의 보고를 받은 우왕과 최영은 아연 실색했다. 하지만 수습할 방책이 없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고 체념했다.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었다. 모종의 목적으로 데리고 온 방우와 방과를 찾아 볼 겨를도 없이 서둘러 평양을 빠져나갔다.

반란군의 남행은 계속되었다. 저항하는 세력도 길을 가로막는 군사도 없었다. 반란군이 왕성을 향하여 진군해도 목숨 걸고 막아서는 사람 하나 없었다. 덕을 잃은 군주에 백성의 마음이 돌아선 것인지 반란군의 위압감에 두려움을 느껴서인지 알 수 없다. 군대가 안주에 이르렀을 무렵 앞서가던 척후병들이 되돌아와 이성계에게 보고했다.

"우왕과 최영이 황급히 서경(평양)을 빠져나가 개경으로 향했다 합니다. 추격하여 사로잡아야 옳을 줄 압니다."

이에 이성계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너희들이 만약 승여(乘輿-임금)를 범한다면 나는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태조실록>

정벌군이 반란군이 되어 개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군사들이 지나는 길목을 관장하는 수령들이 먹을 음식을 마련하여 이성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백성을 수탈한 죄가 많아 목을 늘어뜨린 것일까? 아니면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 일까? 휘하 장수들이 행군 속도를 높여 빨리 개경에 도착하자고 건의 했다.

"속히 행진하면 반드시 싸우게 되므로 사람을 많이 죽이게 될 것이다. 천천히 행군 하도록 하라"<태조실록>

우왕과 최영, 서경을 떠나 개경으로

이때부터 행군 속도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시냇물을 만나면 군사들 목욕도 시키고 사냥터가 나오면 사냥도 하고 천천히 행군했다. 이성계는 정벌군 도통사로서 어느 순간 명을 어긴 반란군 수괴가 되었지만 왕군과 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임금과 최고 사령관 최영장군이 자신의 회군 진정성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진정성. 이거 함부로 차용해서는 아니 될 말이다.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바른 것이라 예단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동의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지금 이성계는 진정성의 함정을 지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평양을 통과하면서도 저항을 받지 않았다. 고려국 제2의 아성 서경을 무혈통과 한 셈이다. 이성계의 반란군이 평양을 떠나 개경으로 향했다. 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접한 동북면 군사들이 몰려왔다. 이성계를 따르는 친병들이다. 여진인을 포함한 1000여명이었다. 그밖에 고을 수령들이 비록 오합지졸이지만 군사를 이끌고 대열에 합류했다.

한편, 과거에 급제하여 정5품 전리정랑직에 봉직하던 이방원은 이성계의 요동 출정 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의 무운을 빌었다. 그리고 평범한 관리의 입장에서 관직에 충실하며 어여쁜 새색시와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러던 퇴청 길에 급하게 자신을 찾는 사람을 만났다. 아버지가 보낸 전령이었다. 밤을 새며 달려온 전령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두 눈만 휑한 모습이 북방의 야만족 같았다. 아버지께서 환란을 당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전령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령으로부터 서찰을 받아든 방원의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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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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