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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용차에서 공용차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정부의 큰 차 타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제 정부가 먼저 작은 차 타기에 나서야 한다. 사진은 고위공직자 전용차량 중 최고급 차량인 현대자동차 '에쿠스'
ⓒ 현대자동차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 간다' 캠페인에 대한 정부의 첫 공식 반응이 나왔습니다.

지난 주 행정자치부가 '공용차량의 관리·운영개선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는 전용차량 및 관용차량 현황에 대한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행자부가 공식적으로 의견을 밝혔다는 데 의미가 큽니다.

행자부가 '국정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대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2008년까지 관용차 중 업무용 승용차의 경차 비율을 20% 수준까지 확대(현재 0.68%)
▲ 경차 전환과 별도로 승용차량의 차형 축소 추진(예: 중형→소형, 1500cc→300cc)
▲ 전용차량 배기량 기준 설정(장관급 3300cc, 차관급 2800cc)
▲ 매년 초 전용차량 운용 현황을 인터넷과 언론 등에 공표
▲ 사용기한(5년) 경과한 전용차량 재활용
▲ 전용차량 최소 관리항목 운영(월별 유류비·수리내역, 세금·보험 등 유지 비용)
▲ 차량 임차 때도 전용차량 배기량 기준 준수 및 빈번한 차량 교체 자제를 통한 예산 절감


정부 먼저 '작은 차' 탄다... 배기량 기준 설정은 신중해야

공공영역의 관용차량부터 '작은 차를 타자'는 우리 캠페인의 취지에 비춰 보면, 업무용 승용차의 경차 비율을 2008년까지 20%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행자부 발표는 큰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경차 비율이 현재 6%대에 머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경차 보급에 앞장서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경차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관용차량 구입비 및 운용비도 대폭 줄어들 것이며, 대기오염과 에너지난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선도적' 의지가 일반 국민 생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경차 비율을 20% 확대하면서도 승용업무용 차량 중 경호·순찰·의전용 차량과 고위 공직자 전용 차량은 제외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지방정부가 '마티즈'를 관내 순찰차량으로 이용하는 사례에서 보듯이 경찰차량 중에서도 순찰차량은 경차를 이용하는 것도 검토할 만 하기 때문입니다. 또 고위공직자들 중에도 환경부장관이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등 일부 경차를 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행정부소속 고위공직자 전용차량 현황(2006.3.31기준)
전용차량 보유현황 (대) 평균배기량(CC)평균 구입가격(만원)
전체장관급차관급구입임차전체장관급차관급전체장관급차관급
210701401051052,6312,9922,4503,6404,1433,265
ⓒ 오마이뉴스 고정미

고위 공직자들의 전용차량 배기량 기준을 설정하고 매년 초 전용차량 운용 현황을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공표하겠다는 것도 고위 공직자들이 배기량 3500cc 이상의 초대형 차량으로 전용차량을 바꾸는 기류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3300cc, 2800cc라는 기준 역시 초대형 차량으로 너무 급수가 높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듭니다. 잘못하면 아직 3300·2800cc 미만의 차량을 사용하는 장·차관급 공무원들에게 배기량을 늘려 탈 수 있는 합법적인 '면죄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3년 말까지는 장관급은 2400cc 이상, 차관급은 2400cc 미만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규정이 변경되면서 장·차관 모두 중·소형차량도 이용할 수 있게 바뀌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차관급 공무원들의 차량 급수만 높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3300·2800cc라는 기준에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위 표에서 보는 것처럼 2006년 3월 31일 현재 장관급 전용차량의 평균 배기량은 2992cc, 차관급은 2450cc인데 행자부의 새 기준안(3300·2800cc)이 이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관용차? 공용차?... 이름 바꾸기에 그쳐서 안돼

정부는 지난 3월 29일 '관용차량'이 권위적인 표현이라며 법령을 통해 명칭을 '공용차량'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바뀌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겠죠.

'공용차량 관리규정'을 다시 개정해 배기량 기준을 더 낮추고, 고위공직자들이 중소형차량을 이용하도록 '권고'하는 게 더 나은 대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출범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장관급 이해동 위원장 1인, 그랜저 운용), 진실과화해위원회(장관급 송기인 위원장 1인, 상임위원 김동춘 등 차관급 3인, 소나타 운용) 등이 그랜저·소나타급 전용차량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또 사용 기한이 도래한 전용차량을 재활용하겠다는 것도 좋은 취지이지만 '최단 운행기한 5년'은 너무 짧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튼 행자부의 이번 대책은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건강하게 수용한 진일보한 개선안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또 시민사회의 캠페인에 대해 바로 '화답'한 점도 국민과 원활하게 소통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캠페인단은 조만간 정부 당국자들과의 정책 간담회를 정식으로 제안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건설적인 토론이 오갈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편, 이번 행자부의 대책이 행정부 보유 관용차량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현재 5만8천여 대의 관용차량 중 2만여 대를 제외한 3만8천여 대의 관용차량이 지방자치단체와 입법부·사법부 보유 차량입니다. 이번 행자부의 대책이 지자체와 입법부·사법부의 관용차량 정책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행정부뿐만 아니라 공공영역의 관용차량 전반을 규율하는 방향으로 '공용차량관리법규'가 제·개정되길 제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전국의 주요 국·사립대학 100곳의 총장 전용차량을 조사하는 일에 희망제작소 인턴 정기연님의 수고가 많았습니다. 안진걸 기자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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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시민입니다. 현재 참여연대(www.peoplepower21.org) 실무자로 '민생희망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대학생들과 다양한 강좌 프로그램도 종종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희망의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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