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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시대, 서민들은 갈수록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세금으로 굴러가는 고위 공직자들의 전용차는 갈수록 최고급차로 바뀌고 있습니다. 5만8천여 대에 육박하는 전국의 관용차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에 제안된 '관용차를 경차로'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녹색교통운동,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동 기획해 특집기사를 내보냅니다.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 간다'는 제목의 이번 기획을 통해 정부의 관용차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시민사회와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대안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기획기사가 연재되는 기간 동안 네티즌들의 제보를 받아 이를 기사화할 예정입니다. 또한 관용차를 타는 공직자들의 의견도 청취할 예정입니다. 부적절한 관용차 운용 실태를 목격한 네티즌들의 많은 제보와 이 사안에 대한 많은 의견 바랍니다. <편집자주>
검은색 대형 자동차가 멈춰 선다. 운전기사가 재빨리 내려서 뒷문을 연다. 이윽고 검정 양복 차림을 한 신사가 근엄한 표정의 얼굴을 내민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장관·차관·청장·총장·대법관·의원·도지사·시장 등 어김없이(?) '검은색 대형 자동차'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고위공직자들이다. 아, 또 있다. "형님"을 외치는 청년들 사이로 등장하는 조직폭력배 두목들도 똑같다.

차량만 놓고 보면 고위공직자와 조직폭력배는 가히 '동급최강'을 자랑한다. 고위공직자들은 왜 검은색의 대형차를 타야만 할까? 대형 자동차를 타지 않으면 공적 업무를 볼 수 없는 걸까?

이영순 의원 "3000cc 이상 관용차, 1년새 2배 늘었다"

▲ 심상정, 현애자 의원과 함께 소형차를 이용하고 있는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
ⓒ 오마이뉴스
평소 아반떼를 관용차량으로 이용하는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 소형차를 타니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 행사 주차장에서 주차요원들이 막길래 초청받은 국회의원 차라고 설명했는데도 들여 보내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다른 곳에 주차하고 걸어갔죠. 기가 막힌 건 같은 국회의원 차인데도 늦게 온 다른 검은색 대형 차량은 버젓이 주차하고 들어가더라고요. '의전 차량은 검은 색'이라는 의식이 뿌리깊은 것 같아요(웃음)."

기름값 적게 들고 주차비까지 저렴해서 이 의원은 소형차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 2005년말 2006년 예산계수조정소위에서 경상경비를 줄이는 데 앞장서기도 했던 그는 부처 장차관의 '대형차 사랑'에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양극화가 문제인데도 장차관들이 사용하는 3000cc 이상의 관용차량은 2004년 말 9대에서 지난해 말 18대로 2배나 늘어났어요. 관용차값에도 못 미치는 집에 살고 그런 집도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지도급 인사들이 앞다퉈 대형 관용차량을 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직자들은 왜 대형차를 선호하는 걸까?

"검은색 대형 차량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은 공직자들이 심은 잘못된 권위주의에서 비롯한 겁니다. 그 책임을 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합니다. 관용차량 선택에 자율성을 준 건 좋지만, 등급 낮추기 운동으로 지침과 규정을 강화해서라도 관용차량을 바꿔야 합니다. 특히 지금은 고유가 시대이기 때문에 IMF 때보다 더 위기감을 가져야 합니다."

김완주 전북지사 "시장 체면에 소형차가 웬 말이냐고?"

▲ 김완주 전북도지사(자료사진)
"몇 년 전 전국시장군수구청협의회 행사에 참석하려고 주차하려는데, 주차요원이 주차장이 좁아 단체장의 관용차만 입장을 허용한다며 제 차를 막았더군요. '설마 시장이 중소형차를 타고 다니랴'고 생각한 거예요.

'기관장은 당연히 대형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중소형차 이용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기관장들이 중소형차를 편하게 타려면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겠죠."

김완주 전북도지사는 전주시장 시절(1998~20
06년) 전용차량으로 아반떼(1498cc)를 사용했다. 시장 시절 소형차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을까?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당 기간 동안 '얼마나 가는지 두고보자' '정치적 쇼를 하고 있다'는 식의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재임 끝까지 소형 승용차를 고집하자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일부 시민들도 결국 진심을 알아주더군요."

사실 시장이 대형차를 타는 것이 규정상 어긋나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도지사는 무려 8년 동안이나 소형 전용차를 고수했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시장 체면이 있으니 차를 좀더 큰 것으로 바꾸라'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남들도 다 대형차를 타고 규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닌데, 왜 고집을 피우냐'는 거였죠. 그래도 대형차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어요. 차는 시장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교통수단일 뿐, 신분을 과시하는 장식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전북도지사 취임 이후 그는 소형차가 아닌 대형차 체어맨을 이용하고 있다. 시장보다 도지사 역할이 더 커서일까?

"대형차는 '움직이는 집무실'이라는, 주위 분의 설득력있는 권유를 듣고, 심사숙고 끝에 전임지사가 사용하던 체어맨을 타게 됐어요. (기존의) 대형차를 매각하고 소형차를 구입하는 게 오히려 낭비라는 지적도 감안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대형차를 사용하는 대신 더 많은 국가예산을 확보하고 외지기업을 전북에 대거 유치하라'고 주문한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최민희 권한대행 "사용연한 해결되면 차량 등급 낮출 것"

▲ 최민희 방송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
ⓒ 오마이뉴스
최민희 제3기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겸 위원장 직무대행은 전용차량으로 체어맨을 지급받았다. 최 직무대행은 부임 초기 출퇴근은 세라토 자가용을 이용하고 공적 업무를 볼 때만 관용차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업무량이 많아 출퇴근 구분이 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지금은 출퇴근할 때도 관용차를 이용하고 있다.

최 직무대행은 고위공직자들의 대형 관용차에 대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5%가 넘는다고 하지만, 기름값 상승에 따른 달러 가치 절하를 감안하면 실질 성장률은 1.5% 수준에 머문다"며 "국민경제를 생각할 때 고위공직자들의 차량이 너무 크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관용차의 중소형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경제수지 악화를 조금이라도 막는다면, 많든 적든 국민의 혈세를 절약해야 한다는 데 적극 동의한다"며 "현재 타고 있는 전용차량의 사용연한 등의 문제가 해결되면 차량 등급을 낮추는 데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안전 등을 이유로 차량 등급을 낮추는 데 부정적인 공직자들이 많다는 말에는 "지금 타는 차량을 바로 경차로 바꾸자는 것도 아닌데,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모르겠다, 운동이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되지만 않는다면 많은 공직자들이 참여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아반떼 타는 국회의원? 심상정, 현애자, 이영순!

현재 '공용차량관리규정'에 따르면 차관급 이상 공직자에게는 운전기사가 배정되고 모든 비용이 세금으로 충당되는 전용차량이 주어진다. 규정은 전용차량 형태로 대형(2000cc 이상), 중형(1500~1999cc), 소형(800~1499cc), 경차(799cc 미만)로 구분해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위 공직자들은 '획일적'으로 2000cc 이상의 대형차량을 이용하고 있다. 2003년 11월 직급에 따른 차량 배기량 차등규정이 자율화되고 난 후에는 최단사용연한인 5년이 만료되지 않았는데도 초대형차량(3500cc 이상)으로 바꾸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관용차의 대형화 추세를 막으려면 공직자들에게도 중소형차를 타라고 요구함과 동시에 '단체장과 국회의원은 검은색 대형 차량을 타야 품위가 있다'는 잘못된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국회의원회관 지하1층에 의원 전용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카드를 소지해야만 들어갈 수 있죠. 그런데 카드를 대고 통과했는데도 몇 번씩이나 주차요원들에게 제지 당했어요. '아무렴 아반떼가 국회의원 차량일까'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걸 극복하는 데 2년이 걸리더라고요. 참, 국회의원 중에 아반떼 타는 사람이 3명 있는 거 아세요? 심상정·현애자·이영순, 이렇게 셋이요(웃음)." -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

"이게 대법원장 차지, 대법원장 손자 차인가"
전용차량은 전용(專用)... 전용(轉用)하면 안 돼

공직자들의 대형 관용차 선호 못지않게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건 바로 관용차량의 잘못된 사용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고위공직자의 전용차량은 말 그대로 공직자 '전용(專用)'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용(轉用)'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올 초 허남식 부산시장의 부인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부인이 시장의 전용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해 구설수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6월 27일 청렴위 관계자는 "허 시장의 부인이 관용차를 사용했다는 신고 내용을 조사한 결과 행동강령 제13조 공용물 사적 사용금지조항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지난 6월 27일 이모(63) 전 주택산업연구원장에게 관용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하며 440만 원 상당의 유류비를 소비한 데 대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관용차량 사적 이용은 '업무상 배임죄'

반면 전용차량을 철저하게 전용(專用)한 공직자들도 많다.

지난해 심장마비로 46세에 타계한 고 한기택 판사의 일화.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로서 관용차를 배정받은 뒤로 한 번도 타지 못한 부인이 "동네 한 바퀴만 돌아보자"고 청하자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부인은 장례식 때 동료 판사가 장지로 가는 길에 관용차를 타도록 권했으나 "남편이 원하지 않을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지난 7월 5일 지병으로 별세한 대구가톨릭대 최한선 총장은 재임 시절 대형 관용차와 호화 관사를 거부하는 청빈한 생활로 주위의 귀감이 됐다. 당시 그의 시신은 장례 뒤, 생전 약속에 따라 대학의과병원에 기증되기도 했다.

부인은 시내버스타고 입원... 깐깐한 공직자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엄격한 공사 구분도 유명하다. 9년 4개월의 대법원장 재임시 가족들은 그의 관용차를 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초등학교 2학년인 손자에게 전용차를 태워준 운전기사는 "이 차가 대법원장 차지, 대법원장 손자 차인가"라는 나무람을 들었다. 비서관이 대법원장의 며느리 부탁으로 손자의 성적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에 다녀왔을 때는 "자네는 대법원장 비서관인가, 내 며느리 비서관인가"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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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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